32년전, 지미 카터도 버락 오바마 못지않은 ‘변화의 기수’였다. 부패한 기성 정계를 바꾸겠다는 ‘워싱턴 아웃사이더’는 그의 캠페인 주제이자 통치의 기본 방향이었다. 변화 실현의 사명감을 안고 조지아를 떠난 그는 자신의 아웃사이더 팀을 대동하고 백악관에 입성했다. 미 정치사상 가장 뛰어난 캠페인의 하나로 꼽히는 1976년 카터 캠페인 팀이었다.
‘조지아 마피아’로 불린 이들은 청바지 차림에 장발을 휘날리며 ‘지미’에 대한 절대 충성을 구심점으로 뭉쳐진 매우 끈끈하고 매우 배타적인, 카터의 조지아 사단이었다. 행정부의 주요직책은 대부분 카터와 연관있는 조지아 출신들로 메워졌지만 중앙정계와의 인맥도, 행정 경험도 없이 워싱턴을 휘젓는데다 건방지기까지 한 젊은이들이 당시 민주당의 원로 팁 오닐 하원의장이 이끄는 연방의회와 공감대를 이룰 턱이 없었다.
연방의회를 낭비와 부패의 상징쯤으로 본 카터는 의원들 지역구의 선심성 프로젝트 예산안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분노한 의회는 이를 번복시켰다. 백악관과 의회의 적대감은 좀체 풀리지 못했고 상원 61석의 막강 민주당 의회를 당연히 자신의 기반으로 여겼던 카터는 세제개혁과 균형예산 등 야심차게 내놓았던 수많은 어젠다 중 어느 하나도 변변히 실현시키지 못한 채 결국 재선에도 실패했다.
16년전, 백악관을 점령한 것은 ‘아칸소 사단’이었다. FOB(Friends of Bill 빌의 친구들)로 불린 이들은 빌과 힐러리 클린턴의 베스트 프렌드와 로펌 파트너들로 이루어졌었다. ‘백악관 속 백악관’을 자부한 소수의 황금그룹으로 군림했지만 여러모로 미숙해 일은 엉성하게 하면서 오만방자하기는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 경선 때의 내편 네편을 들먹이며 중진의원들에 대한 모욕적 언사도 서슴치 않았던 아칸소 사단의 전횡은 클린턴행정부 초기 실패의 요인중 하나로 꼽힌다. “그들의 백악관은 경험부족, 능력부족, 이해부족을 야단스럽게 드러내고 있다”고 당시 한 공화당 인사는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비아냥댔다.
조지아 마피아의 방벽에 둘러싸인 채 1기로 단명한 카터와는 달리 스마트한 클린턴은 곧 실책을 깨닫고 아칸소 사단 대신 워싱턴 주류의 파워 엘리트 그룹을 등용, 재선에 성공한 후 2기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어느 대통령이나 자신만의 독특한 인맥을 가지고 백악관에 도착한다. 대부분 선거운동을 함께 한 출신지역 인사들이다. 논공행상도 해야 하고 믿을 수도 있으니 백악관과 내각의 요직에 등용한다. 공화당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에드 미즈 법무장관을 비롯한 레이건의 캘리포니아 사단도 적지않은 부작용을 낳았고 칼 로브와 앨버토 곤잘레스 전 법무장관 등 부시의 사단, 텍사스 측근들(Texas Cronies) 역시 정실인사의 대표적 사례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행정부의 초기 승패는 이들의 능력과 자세에 달렸다. 마피아로 불리든, 프렌즈나 크로니로 불리든 대통령 사단의 특징은 절대 충성이다. 무능한 데다 충성의 대상이 보스 개인을 넘어 국가로 확대되지 못하는 사단은 곧 신선함을 잃고 미숙한 아마추어로 낙인찍히고 말지만 유능하고 성숙한 사단은 대통령과 코드가 맞아 국정 수행에도 효과적이고 새 대통령을 시험하려는 워싱턴의 텃세를 꺾을 힘이 되어 줄 수도 있다.
물론 오바마도 예외는 아니다. 그에겐 ‘시카고 사단’이 있다.
16년만에 다시 등장한 민주당 대통령 오바마의 시카고 사단은 아직 조용하다. 시카고의 정치명문 리처드 데일리가와 한가닥씩 연결된 시카고 사단에선 백악관 비서실장에 내정된 램 이매뉴얼과 정권인수위 공동위원장 발레리 재럿 등만 전면에 나섰을 뿐 행보가 신중하다. 47세 젊은 대통령의 에너제틱한 캠페인 팀의 당선후 행보치고는 설쳐대는 치기도 없지만 술렁대는 활기도 느껴지지 않아 미디어들이 답답해 할 만큼 잠잠하기만 하다.
오히려 확정된 인수팀과 거론되는 각료 명단은 클린턴 시절의 ‘옛 얼굴’들로 도배되고 있다. 힐러리 행정부냐는 조크가 나돌 정도다. 카터와 클린턴의 미숙한 측근정치의 과오를 피해가야 하는 역사의 교훈도 조심스럽고 오바마의 신중함도 한몫을 했겠지만 더 큰 요인은 경제위기라는 거대한 산과 마주 선 비상사태 때문일 것이다. 민주당내의 경험 풍부한 베테란들은 거의가 다 클린턴 행정부를 거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경제 살리기’라는 중대과제 앞에서 지금은 모두 언행을 삼가고 있다. 그러나 ‘인사가 만사다’는 동서고금 불변의 진리다. 아무리 엄청난 난제도 결국 사람이 풀어야 한다. 경제위기 해결의 첫 걸음도 인사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오바마 내각의 인선은 12월초부터 드러날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아웃사이더’를 강조한 오바마의 행정부에 뉴와 올드가 어떻게 배합될지 전국의 눈길이 지켜보고 있는 요즘 뉴욕타임스가 독자들에게 서베이를 실시하고 있다 - “만약 당신이 대통령이라면…” 누구를 등용하겠느냐는 것. 12일 오후 현재 이런 내각이 구성되었다. 폴 볼커 재무, 빌 리처드슨 국무, 로버트 게이츠 국방…재탕 삼탕으로 모든 낯익은 이름들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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