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대학 4년생인 아들의 생후 18개월적 이야기이다. 엄마인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쉴 새 없이 재잘대며 “왜~애?”하는 질문으로 끊임없이나를 괴롭히던 아들의 호기심은 정말 끝이 보이지 않았다. 열심히 대답해주다가도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곤 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친구집에서 빌려온 동화책들을 읽어주게 되었는데, 매일 밤마다 잠을 재우기 위해 함께 나란히 누워 읽어주다보면 열권의 동화책을 다 읽도록 아들은 잠들지 않고 또 읽어달라고 하기 일쑤... 그러다 결국 내가 먼저 잠들어버리곤 했었다. 그렇게 똑같은 책 열권을 일주일 내내 읽어주다가 일주일에 한번씩 친구집에 가 반납하고 다시 다른 책들을 빌려와 매일 읽고 또 다른 책들을 빌려와 읽고… 그렇게 시작된 아들의 책 사랑은 그 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로 이어졌고 매주 한번씩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고 반납하고 하는 것이 즐거운 행사가 되었다. 도서관에 도착하면 빨려들어가듯 책꽂이 사이에서 읽고싶은 책을 고르고 열심히 보다가 빌려갈 책들을 한아름 안고 나오며 행복해하던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미국의 공공 도서관 시스템이 얼마나 잘 되어 있는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런데 이렇게 책을 읽어주다보니 생각지 않은 수확이 생겼다. 한글 동화책의 경우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어주니까 나중에는 한글을 자연스럽게 깨우치게 된 것이다. 특히 동화의 대화 부분이 나오면 “엄마, 내가 읽을께” 하며 글자를 외워 거뜬히 읽어내곤 했다. 그래서 세 살때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ㄱ ㄴ ㄷ 부터 가르치는 대신 이름 위주로 쓰고 그림과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가르쳤더니 어려워 하지도 않고 한글공부를 재미있어 했다. 자연히 실력도 쑥쑥 늘어가 다섯살 때는 작문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미국에서 나서 자란 아이들의 경우 학교에 입학한 뒤에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하면 아이도 배우기 힘들어 하고 발음이 어색한 것을 보아왔기에 킨더가든 입학전에 한글을 가르치고자 한 것인데, 그 뒤 특별히 한글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그때 실력으로 지금껏 한국말을 편안히 구사하고 있다. 또한 책과 늘 함께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지금도 어딜 가든 읽을 책을 꼭 가지고 다닌다.
미국에서 자녀들이 교육받는 과정을 지켜보며 깨닫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작문 실력의 중요성이다. 이것은 교육의 단계가 높아갈수록 더욱 중요해짐을 본다. 여기서 말하는 작문 실력이란 단순한 글재주의 의미가 아니다. 남의 글을 읽고 분석하고 이해하는 능력,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쳐가며 남이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능력, 그리고 서로 다른 생각을 정리하고 종합하여 길을 열어가는 능력이 글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인문과학 뿐 아니라 자연과학에서도 작문 실력은 필수요건인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로서 자녀에게 이런 면에서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글쓰기에 앞서 길러져야 할 것은 읽기일 것이다. 많은 글을 읽고 자신의 생각으로 소화하는 능력에 따라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니, 읽기는 쓰기의 선행학습이라 할 수 있다.
1979년 처음 발간되어 미국뿐 아니라 영국, 호주, 일본, 스페인, 중국 등 여러나라에서 지난 이십여년간 읽기 교육의 지침서로 사랑받고 있는 The Read-Aloud Handbook(by Jim Trelease)에 따르면, 영아때부터 부모가 매일 책을 읽어주는 것이 자녀의 미래의 학습 능력을 결정한다고 한다. 초등 학교에 입학하는 만5세 이전에 읽기 능력의 씨가 뿌려지고 입학 초기의 어휘력이 이후의 학업 성취도를 결정한다고 하니 영유아기에 꾸준히 책을 읽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아이들이 책과 친해질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는 그 방법을 꼭 집어 일러준다. 하루 15분씩만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라는 것이다. 그것도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열네 살이 될 때까지.
다 큰 아이에게까지 무슨 책을 읽어 주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전문가들은 아이들의 듣기 수준과 읽기 수준은 열네 살 무렵에 같아진다고 말한다. 이전까지는 아이들이 혼자서 읽을 때에는 이해하지 못할 복잡한 이야기도 들을 때에는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책을 읽어 주면 초등학교 1학년 아이는 4학년 수준의 책을 즐길 수 있고, 5학년 아이는 중학교 1학년 수준의 책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아이의 귀에 고급 단어를 넣어 주어 그 아이가 눈으로 책을 읽을 때 그 단어를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이 책의 메시지는 간명하다. 요람에서 10대까지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세요.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고 대화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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