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랜드 A’s의 2008년 승부농사는 9월28일 끝났다. 정규시즌이 막내린 날이다. 실은 그보다 훨씬 일찍 A’s의 2008년이 끝났다고 과언이 아니다. 7월에 이미 디비전(아메리칸리그 웨스트) 선두권에서 멀어진 것은 물론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도 밀려났다. 9월말까지 두달 가까이 A’s는 포스트진출 꿈을 접고 예정된 스케줄을 꾸역꾸역 소화하는 식으로 경기를 꾸려갔다.
베이 건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내셔널리그 웨스트 디비전)도 그 즈음에 이미 포스트진출 탈락이 확정적이었다. 그러나 자이언츠의 마지막 두 달은 A’s의 그것과 질적으로 달랐다. 파블로 샌도발, 유지니오 벨레즈, 트래비스 이시카와, 이반 오초아 등 팔팔한 유망주들이 수시로 가능성 플레이를 펼치며 정규시즌 종착역까지 팬들의 구미를 당겼다. 자이언츠의 홈구장 AT&T 팍에는 자이언츠의 PS 탈락확정 뒤에도 4만명에 가까운(간간이 4만명이 넘는) 팬들이 몰려들었다.
A’s의 홈구장 매카피 콜러시엄은 주말에도 겨우 2만여명이 경기장을 찾는 등 일찌감치 파장분위기였다. 팬들의 외면은 단순히 성적 때문이 아니었다. A’s가 거의 노골적으로 드러낸 ‘학업에 뜻없음’에 팬들은 ‘등 돌리고 발길 끊기’로 응수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A’s가 올해 정규시즌 도중 다름아닌 A’s 팬들에게 가장 큰 실망을 안긴 것은 뭐니뭐니 해도 지난 7월 올스타 브레익 전후에 이뤄진 선발투수 리치 하든과 조 블랜턴의 다른 구단 이전이다. 메이저리그 최고 강속구 투수대열에 드는 하든은 올스타 브레익 직전에 시카고 컵스로 보내졌고, 타선지원을 못받아서 그렇지 가능성 피칭을 보여주며 허약한 A’s 마운드를 지켰던 블랜턴은 올스타 브레익 직후에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팔려갔다.
하든이 간 컵스는 NL 센트럴 디비전 1위를 차지하며 포스트시즌까지 살아남았다. 블랜턴이 간 필리스는 NL 이트스 디비전 1위를 차지한 뒤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LA 다저스와의 NL 챔피언십 시리즈, AL 챔피언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월드시리즈까지 승승장구를 거듭한 끝에 올해의 왕중왕에 올랐다. 두 투수가 떠난 뒤 A’s는 24승42패를 기록했다. 이것을 포함한 올해 정규시즌 종합성적은 75승86패, AL 웨스트 4팀 중 3위였다.
A’s의 올해 부진을 송두리째 두 투수의 이적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투수력 이전에 타력이 너무 형편없었다. A’s는 올해 팀타율(2할4푼2리)과 팀득점(646점)에서 아메리칸리그 14팀 중 꼴찌였다. 팀방어율(4.01)은 AL 4위, 팀실점(690점)은 AL 3위다. 수비력마저 중간수준(야수 수비성공율 98.4%로 AL 7위)에 그쳤다.
▶원인은 하나다. 투자에 인색한 탓이다. A’s 선수단의 올해 연봉총액은 4,790만달러로 양대리그 30팀 가운데 28위다. 뉴욕 양키스로 치면 3루수 알렉스 로드리게스, 데릭 지터, 마리아노 리베라 세명의 연봉만도 못한 돈이다. 연봉투자와 성적이 반드시 정비례하는 건 아니다. 그런 양키스도 포스트시즌까지 살아남지 못했다. 하지만 투자에 인색하면 성적이 나빠진다는 건 진리에 가깝다. 아주 드문 ‘옹색한 투자, 풍성한 수확’에 기대를 거는 것은 도박심보다. 그런 성적이 나오기 이전에 팬들이 외면하고, 그런 썰렁구장에서 뛰는 선수들이 신나게 좋은 플레이를 펼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A’s 못지 않게 인색한 구단이었고 따라서 성적도 변변찮았던 밀워키 브루어스가 올스타 브레익 직전 특급 좌완투수 CC 사바티아를 영입하는 등 눈에 띄게 의욕을 보이면서 성적이 올라가고 덩달아 등돌린 팬들이 다시 찾아 브루어스 홈구장이 거의 연일 초만원 사태를 빚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만년 중하위권이었던 AL 챔피언 탬파베이 레이스나 NL 챔피언 겸 월드시리즈 챔피언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A’s의 짠돌이 운영은 없어도 될 기록을 몇개 남겼다. A’s가 올해 정규시즌에 기용한 신인선수만 21명이다. 팀창단 이래 최대숫자다. 또 부상자명단(DL)에 오른 A’s 선수는 25명이었다. 이 역시 신기록이다. 신구조화가 아닌 땜질식 기용이 이어지는 가운데 선수들의 자율적 자기관리 능력이 떨어진 결과다.
▶처방도 하나다. 획기적 투자로 팀의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필리스 레이스 브루어스가 올해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A’s가 이번 스토브시즌에 대어급 선수들을 영입하리란 기대는 희미하다. 우선 구단의 곳간사정이 넉넉지 않다. 게다가 A’s 운영진은 투자를 통한 업그레이드에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 이제 와서 그런 태도가 바뀌리란 조짐도 보장도 없다. 때문에 빌리 빈 단장과 밥 게런 감독은 지갑을 열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경영층의 눈치를 봐가며 아쉰 대로 팀재건전략을 짜느라 부심중이란 소식이다. 겨울시장에 나온 매니 라미레스 등 대어급 FA(프리에이전트)에는 눈길조차 주지 못하고 차하급 FA를 붙잡기 위해 요모조모 저울질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 나온 선수들은 그들대로 기왕이면 A’s 같은 팀을 외면하는 게 상례다.
A’s쪽이 이같은 시장동향을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나오는 처방전의 하나가 에릭 샤베스를 본래의 3루에서 1루로 돌리는 방안이다. 어깨와 허리가 줄줄이 고장나 지난 시즌 23게임 출장에 그친 그를 부상위험(수비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1루로 돌린다는 것이다. 2005년에 27홈런 101타점을 올렸던 그가 별 탈없이 1루를 지켜준다면 솜방망이 A’s 타선에 중량감이 더해질 것이다.
마무리투수 역할은 신인 브랫 지글러가 맡게 될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휴스턴 스트릿은 트레이드 시장에 올려질 것이다. 지글러는 팀의 부진으로 빛이 바랬지만 방어율 1.06으로 양대리그 불펜투수 중 가장 빈틈없는 설거지 능력을 보였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임시직 불펜에서 붙박이 마무리로 자리를 굳혔고, 스트릿은 별수없이 밀려났다. 조이 디바인 역시 올해 40이닝 이상 던진 투수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방어율(0.59)을 보이며 A’s 마운드의 기대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팀 헛슨, 배리 지토, 마크 멀더, 리치 하든, 댄 해런, 조 블랜턴 등이 따로 또 같이 지켰던 A’s 마운드의 중량감을 이들이 채워줄 수는 없을 것이다.
타선 또한 샤베스의 100% 부활을 전제로 하고 대릭 바튼, 트래비스 벅 등이 제몫을 해준다고 하더라도 제이슨 지암비, 저메인 다이, 닉 스위셔, 마크 캇세, 미겔 테하다 등이 포진했던 왕년의 힘을 되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명대타 프랭크 토마스는 이름값을 못한 채 부상병동을 오간 끝에 FA가 됐고, 에밀 브라운 역시 시즌 초반에만 타점의 사나이로 반짝했다가 부진의 늪에 빠졌다.
봄여름가을 부진했던 A’s는 겨울 트레이드 시장에서도 부진을 되풀이, 그 어두운 그림자가 내년까지 드리워질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돈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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