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의 국제 선편우편물 행방 조회에 대하여 상대국에 독촉문이 발송되었습니다.’
오늘 아침 메일함을 열어보니, 기다리던 메일이 한 통 와 있었다.
사실 기다리는 건 메일 따위가 아니라 책이 가득 든 때묻은 박스이지만.
지난 한국 나들이 때, 친구가 애들 준다고 이래저래 정성스레 고른 동화책을 한 박스 가득 안겨줬었다. 그 짐이 들고 오기 버거워 다른 몇 가지 물건도 소포로 꾸려 선편으로 부친 터였다. 한 달 반쯤 지나니 박스가 하나 둘 씩 문앞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암만 기다려도 제일 먼저 부친 친구의 책 박스만은 깜깜 무소식인 것이었다.
‘원래 배편이 좀 늦긴 하니깐. 좀 더 기다려보지 뭐.’ 이렇게 맘을 먹었지만 두 달을 넘겨 석 달이 다 되어가도록 기미가 안 보이길래 우체국으로 전화를 했다.
‘음, 그건 말이지, 네가 짐을 부친 한국으로 전화를 해 봐야하는 거지. 여기선 알 수가 없어.’라는 답변만 듣고 끊어야 했다. 그래서 이번엔 한국으로 국제전화를 걸었다. 역시,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면 조사가 진행되는 대로 상황을 통보해주겠다는 막연한 답변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또다시 기약없이 기다려야 할 밖에.
몇 년동안 이 곳에 살면서 종종 한국으로 물건을 부치기도 혹은 받기도 했었지만, 다행히 한 번도 분실된 적은 없었던 터라 저으기 실망스럽고 속이 상했다. 내가 그동안 우체국을 얼마나 믿고 애용했는데… 하는 맘에 슬그머니 괘씸한 기분마저 들었다. 요즘은 한국 택배 회사가 여럿 생겨서 선택의 폭이 넓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집에선 우체국이 더 가까운 편이라 늘 USPS를 통해 물건을 부치곤 했다.
일 년이면 몇 번씩 닥쳐(?)오는 바다 건너 경조사들.
예전에는 어른들 생신이나 어버이 날, 명절이나 집안 제사 등 챙겨야 할 때마다 ‘멀리 물 건너 산다’는 안이한 변명으로 대충대충 넘어가곤 했었다. 필요한 물건이라도 몇 개 부치다보면 종종 배보다 배꼽이 되버리고, 송금이라도 할라치면 많지도 않은 돈 이 쪽 저 쪽 수수료에 그저 부끄러운 액수만 남아버리고, 그래서 고심 끝에 선택한 게 인터넷 쇼핑이었다.
역시 인터넷 강국답게 한국의 쇼핑 사이트는 어마어마하게 많았고, 물량 또한 압도적이었다. 안 그래도 느려터진 우리 컴퓨터로는 그 많은 사진들이 차례로 사뿐 내려앉을 때까지 반 나절은 너끈히 기다려야 했고, 사이키 조명 돌아가듯 현란하게 바뀌는 물건들을 관찰하려면 시험때나 솟아날 법한 집중력을 쏟아야 했다. 그래도 여차저차 믿을 만한 몇 군데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이런 저런 물건들을 주문해서 인사치례를 하곤 했다. 아니 했었다. 근데 그나마도 이젠 못 하게 되어버렸다. 사이트들마다 앞다투어 해외카드 결제를 막아버린 데다가 무슨 인증서 절차가 생긴 거였다.
그래, 내 발로 물건 골라 직접 부치는 게 제일 속편하지.
이리하여 나는 다시 우체국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우체국에서는 내가 아껴 마지않던 국제 선편 소포 제도가 사라지고 말았다. 칼슘, 종합 비타민, 오메가-3, 글루코사민 등등 정작 나는 먹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그 다양하고 무거운 약통들을 주섬주섬 싸들고 우체국으로 향하면서, 아무튼 한국에선 별 게 다 유행이라니깐 하는 볼멘 소리를 내뱉으면서도, 물건을 부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저렴한 ‘배편’ 덕택이었는데 말이다. 이렇게 돈 몇 푼 아끼겠다고 배편을 이용하던 나와는 달리, 한국에선 선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빠른 우편으로 물건이 날라오곤 한다. 참, 얼마나 죄송하고 부끄러운 내리사랑인지….
이젠 한국 물건 파는 곳이 많아져서 한국 가게에 나가면 필요한 것을 얼마든지 살 수 있다지만, 한국에서부터 건너오는 속옷, 양말, 아이들 내복은 물론 고춧가루, 멸치, 김, 미역 등 에다, 가끔 묻어오는 예쁜 머리핀이나 소설책까지, 바다 건너 날 찾아오는 물건들은 그게 뭐가 되었든 간에 기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그나저나 나의 책 박스는 태평양 어디 쯤에서 긴 항해를 하고 있는건지… 선물해 준 친구에겐 말도 못하고 그저 안타깝고 미안한 맘에 반가운 소식만 기다리고 있다.
‘ 어디갔니 소포야! 생사 확인이라도 좀 하자. 다쳐도 좋으니 얼른 돌아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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