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이브 성공률 100% …정규시즌 41차례, 포스트시즌 6차례
마리아노 리베라(뉴욕 양키스). 1990년대 중반부터 약 10년동안 ‘양키스 공화국’의 뒷문지기 역할을 물샐틈 없이 해내며 마무리의 황제로 불렸던 파나마 출신의 38세 노장 리베라는 올해도 건재했다. 양키스가 포스트시즌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10여년만의 부진 속에서도 그는 39세이브를 올렸다. 방어율은 1.40이다.
그러나 그를 황제라 부르기엔 모자랐다. 거의 백발백중 세이브 성공률을 보였던 그가 올해 심심찮게 설거지를 망쳤다. 기록상 블론세이브(세이브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가 1차례다. 그런데 5패가 있다. 이것들은 대부분 세이블 기회를 날려버린 정도를 넘어 아예 패배까지 당한 경우다. 실은 그가 올해 거둔 6승도 문제가 있다. 동점상황에서 투입돼 승리를 거둔 것은 몇 안된다. 세이브 상황에서 출격했다가 세이브를 날려버린 뒤 동료타자들 덕분에 팀이 이겨, 웃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챙겨든 승리가 태반이다.
프랜시스코 로드리게스(LA 에인절스). 2002년 혜성같이 등장한 베네수엘라 출신의 26세 청년 로드리게스는 올해 정규시즌에 62세이브라는 경이적 기록을 세웠다. 모두 162게임이니 이삼일이 멀다 하고 세이브를 낚아올린 셈이다. 방어율(2.24)도 준수하다. 76게임에서 68.1이닝동안 던져 54안타를 맞고 21점(자책점 17점)을 내줘 계산된 방어율이다.
로드리게스 역시 올해 메이저리그 불펜의 왕중왕이라고 말하기엔 어딘지 부족하다. 세이브 저축도 엄청났지만, 유실도 컸다. 블론세이브가 무려 7차례다. 2승3패도 문제다. 이유는 리베라의 승패에서 지적한 것과 같다. 더욱이 그는 포스트시즌에 레드삭스와의 디비전 시리즈 때 승리지키기를 위해 투입됐다 패전을 안고 물러서는 등 빅타임 플레이어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심어주는 데 실패했다. 아메리칸리그 웨스트 디비전에 속한 에인절스는 양대리그를 통틀어 가장 먼저 포스트시즌 진출한 뒤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디비전 시리즈에서 3연패로 주저앉았다.
리베라도 로드리게스도 아니라면 결론은 자명했다. 올해 메이저리그 불펜에서 가장 빛난 별은 브랫 릿지(필라델피아 필리스), 이 사나이 이외에 다른 누가 있을 수 없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그가 올해 최우수 구원투수로 선정됐다고 27일 발표했다. 리베라 로드리게스 등 9명과 함께 올해의 최고마무리 후보로 선정돼 정규시즌 막판인 지난달 말부터 인터넷 투표를 집계한 결과 그가 최고득표를 얻었다. ‘올해의 재기상(comeback player of the year)’을 받은 데 이어 올해 시월에만 두번째 터진 큰 상복이다.
재기상과 구원왕 타이틀을 한꺼번에 쥐었다는 건 그가 작년에 비해 올해 몰라보게 좋아졌음을 뜻한다. 1976년 12월 새크라멘토 태생으로 노터데임대를 졸업하고 2002년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입단한 그는 데뷔 첫해 딱 한번 선발투수(8.2이닝 12안타 9볼넷 6실점으로 승리투수)로 뛰어봤을 뿐, 지금까지 줄곧 불펜을 지켜왔다. 메이저 마운드에서 남긴 통산기록은 1차례 선발피칭까지 포함해 총 450게임에서470.1이닝을 던지며 360안타(그중 40홈런)를 맞고 205볼넷을 내주고 177점(그중 자책점 162점)을 잃었다. 방어율은 3.10이다. 그 사이에 낚은 삼진은 653차례다. 세이브기회를 날린 것이 27차례다. 25승20패 가운데에도 블론세이브가 수월찮게 들어 있다.
릿지는 1차 황금기는 2004년과 2005년이었다. 거의 수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스트라익 존 가까이서 뚝 떨어지는 볼로 타자들을 골탕먹이며 리베라에 못지 않은 특급마무리 대열에 들었다. 그런데 2006년과 2007년 릿지는 더 이상 릿지가 아니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따라서 치유법도 묘연한 부진에 빠져 툭하면 다 이긴 게임에 코를 빠뜨렸다. 작년 시즌이 끝난 뒤 애스트로스는 그를 버렸다. 밑천이 드러난 것으로 판단한 다른 구단들은 선뜻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그는 그저그런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새 둥지를 차리게 됐다.
앞서 2년동안 거짓말 같은 슬럼프에 허덕였듯이 그는 올해 거짓말처럼 부활했다. 부진의 원인이 묘연하듯 부활의 원인도 딱 꼬집어 이것이다 할 게 궁하다. 코스가 어떻고 각도가 어떻고 갖다붙일 수는 있지만 적어도 외견상 그는 거의 똑같은 폼으로 거의 똑같은 구질의 공을 던지는데, 타자들은 속속 녹아났다. 정규시즌에만 2승0패에다 41세이브. 세이브 횟수로만 치면 내셔널리그에서도 자신의 뒤를 이어 애스트로스 주전마무리가 된 호세 밸버디(44세이브)에 이어 2위.
그럼에도 그에게 구원왕 타이틀이 주어진 것은 100%를 자랑하는 세이브 성공률이다. 밸버디만 해도 1차례 블론세이브를 포함해 6승3패가 있다. 게다가 애스트로스는 포스트시즌에 오르지도 못했다. 릿지가 리베라와 로드리게스보다 후한 점수를 받은 까닭도, 승리따내기보다 승리지키기에 방점이 찍히는 마무리투수의 특성상, 지켜낸 승리 횟수는 유달리 많지 않아도 날려버린 승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방어율도 경이적이다. 정규시즌엔 1.95(72게임 69.1이닝 50안타 17실점 35볼넷 92삼진, 2승0패, 41세이브)다. 포스트시즌엔 1.08(8게임 8.1이닝 5안타 1실점 3볼넷 12삼진 6세이브)다.
특히 필리스가 디비전 시리즈에서 거둔 3승 중 2승이 릿지의 튼튼뒷받침(2세이브)으로 이뤄졌고,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거둔 4승 중 3승이 릿지의 마무리(3세이브)로 마감됐다. 이번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도 그는 세이브를 올렸다. 포스트시즌을 포함해 47차례 세이브 기회에 출격해 47세이브를 올렸다. 한 시즌에 블론세이브 한번 없이 40세이브 이상 올린 선수는 릿지가 100년이 훨씬 넘는 메이저리그 역사를 통틀어 두 번째다.
2003년 30만달러에 불과했던 그의 연봉은 올해 635만달러다. 5년만에 21배 이상 불어난 액수다. 그러나 1,500만달러를 받는 리베라에 비하면 약과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올해만 같은 성적을 낸다면 마무리투수 최고연봉 기록은 릿지의 몫이 될 게 틀림없다.
그런데 작년 재작년의 부진이 예고없이 그를 덮쳤듯이 언제 또다시 그가 부진의 늪에 빠질지 모른다. 자칫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그의 무결점 마무리피칭 기록이 깨질 수도 있다. 릿지만이 아니라모든 투수, 특히 고비때 등장하는 마무리전문의 숙명이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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