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타선 침묵 레이스, 4회&5회 1점씩 추격에 그쳐
플로리다주 세인트 피터스버그의 트로피카나 필드. 2008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탬파베이 레이스의 안방인 이 인조잔디 실내구장은 22일 저녁 개장이래 최다손님을 받았다. 수용인원의 113.1%인 4만783명이 들어찼다. 그러고도 못들어가 아우성인 레이스 팬들이 필드밖에 몰려들어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주파수를 맞췄다. 필드 안팎 그들의 소원은, 꿈에도 소원은 오직 승리였다.
올해 메이저리그야구 왕중왕을 가리는 7전4선승제 월드시리즈 1차전.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승자는 레이스가 아니었다.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먼저 웃었다. 내셔널리그 챔피언 필리스는 이날 경기에서 선발투수 콜 해멀스의 호투와 체이스 어틀리의 홈런 등으로 3대2로 이겼다.
1980년에 이어 두 번째 왕중왕을 노리는 필리스는 원정경기로 벌어진 첫판을 승리, 산뜻하게 2차전 이후 V전략을 가다듬을 수 있게 됐다. 창단이래 작년까지 월드시리즈는 고사하고 포스트시즌 구경조차 못하는 등 맡아놓은 꼴찌그룹에 속했다가 올해 단숨에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에 올라 왕중왕전 싸움터까지 치달은 레이스는 홈팬들의 열화같은 성원에도 불구하고 첫판을 내줘 갈 길이 바빠지게 됐다.
필리스는 처음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1980년에도 캔사스시티 로열스와의 1차전에서 1점차(7대6) 승리를 거뒀다. 레이스는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에 홈구장 1차전을 내주고도 결국 4승3패로 승리했다. 올해 2차전은 같은 장소에서 23일 오후 5시(SF시간)에 시작된다.
▶1회초부터 4회초까지, 필리스의 파워있는 기선제압 : 레이스가 1차전 선발로 내세운 스캇 캐즈미어. 로테이션 순서로 보나 올해 마운드에서 일군 성적으로 보나 올스타투수 캐즈미어에게 레이스 창단이후 첫 월드시리즈 첫 공을 맡긴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초반, 특히 1회 부진이라는 독특한 징크스를 앓았다. 점수를 내주든 안주든, 경기를 이기든 지든, 이 빼어난 투수는 기껏 몸풀이를 하고 마운드에 오르는데도 거의 매번 1회에는 시동에 잘 걸리지 않아 진땀을 빼곤 했다.
그런 그가 1회초 선두타자 지미 롤린스를 우익수 플라이로 돌려보내자 트로피카나 필드는 마치 9회초 마지막타자를 잡아내기라도 한 듯 함성의 도가니가 됐다. 함성은 일렀다. 캐즈미어의 고질병이 도졌다. 다음타자 제이슨 워스에게 볼넷. 캐즈미어는 곱상한 얼굴에 눈을 끔벅거리며 다음타자 체이스 어틀리와 조심조심 승부했다. 어틀리는 차분했다. 덤비면 받아치되 내빼면 관두는 여유배팅으로 응수했다. 제6구, 캐즈미어는 별수없이 스트라익존을 겨냥해 볼을 뿌렸다. 어틀리의 방망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가차없이 돌아갔다. 공은 쭉쭉 뻗었다. 초만원 관중석에선 제발, 제발 하는 듯한 집단아우성이 터졌다. 공이 그걸 알아들을 리 없었다. 맞는 순간 예고된 대로 커다란 궤적을 그리며 우익수 진영 상공을 지나 오른쪽 담장 너머에 박혔다. 2대0.
캐즈미어는 공포의 홈런타자 라이언 하워드를 2루수 땅볼로, 부상에서 되살아난 강타자 팻 버렐을 삼진으로 처리하며 더이상 출혈없이 이닝을 마쳤다. 그러나 그의 불안은 말끔히 가시지 않았다. 2회에는 1안타에 2볼넷을 내줘 추가실점 위기에 몰렸다 간신히 헤어났고, 3회에는 선두타자 워스에게 2루타를 맞고 휘청거리기도 했다.
필리스는 위태위태 버티던 캐즈미어를 공략, 4회초에 결승점이 된 추가점을 뽑았다. 선두타자 셰인 빅토리노의 중전안타를 치자 페드로 펠리즈가 내야를 조금 벗어난 중견수 앞 바가지 안타로 뒤를 받쳤다. 둘은 크리스 코스테의 1루쪽 내야땅볼 때 2,3루로 치달았다. 그리고 카를로스 루이스의 유격수앞 땅볼 때 빅토리노가 홈으로 파고들어 3점째를 찍었다. 레이스로서는 3회말 1사만루 황금챈스에서 믿고맡길 수밖에 없는 강타자 BJ 업튼이 하필 병살타를 치는 바람에 빈손으로 퇴각한 뒤 잃은 추가점이라 상심이 더했다.
▶4회말부터 9회말까지, 레이스의 안타까운 맹렬추격 : 필리스의 선발투수 콜 해멀스는 강했다. 디비전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에서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1차전에서도 승리를 챙겼다. 그러나 언제나 강할 수는 없었다. 더욱이 3회말 그는 난공불락이 아님을 보여줬다. 1안타를 맞고 2볼넷을 내줬다. 업튼의 병살타 때문에 위기의 해멀스가 한숨을 돌린 것뿐이었다. 그리고 레이스가 1년만에 디비전 꼴찌에서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으로 수직상승한 것은 운치기가 아니었다.
4회말, 레이스는 마침내 얻을 것을 얻었다. 2사 주자없는 상황에서 칼 크로포드가 우중간 펜스를 넘기는 솔로홈런 아치를 그려냈다. 레이스의 추격전은 5회말에도 이어졌다. 이번에도 일은 2사후에 벌어졌다. 볼넷을 골라나간 제이슨 바틀렛이 번개스피드로 2루를 훔치자 이와무라 아키노리가 좌중간을 뚫은 2루타로 바틀렛을 홈까지 안전하게 치닫게 했다. 3대2. 3회말 황금기회를 무산시킨 업튼은 이번에는 하고 잔뜩 별렀으나 빗맞아 1루수 플라이로 물러나면서 레이스의 동점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다시 투수전이 전개됐다. 간간이 안타를 주고받았으나 전광판의 안타란의 숫자만 바뀔 뿐, 점수란은 변함이 없었다. 레이스는 6회초를 끝으로 선발투수 캐즈미어(6이닝 3실점)를 내려보냈다. 필리스는 7회말 피칭을 마친 뒤 해멀스(7이닝 2실점)를 강판시켰다. 불펜싸움은 팽팽했다. 양쪽 다 0점으로 선방했다.
2008년 월드시리즈 1차전 승리투수의 영광은 해멀스에게 돌아갔다. 그는 이로써 디비전 챔피언십, 리그 챔피언십, 월드시리즈 1차전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는 드문 기록을 남겼다. 이전까지 그런 기록의 소유자는 1996년 잔 스몰츠(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98년 데이빗 웰스(뉴욕 양키스), 2007년 자시 베켓(보스턴 레드삭스) 3명뿐이다. 디비전 시리즈가 도입된 것은 1995년이다. 이날 9회말에 등판해 레이스의 마지막 추격을 막아낸 필리스의 특급마무리 브랫 리지는 정규시즌을 포함해 올시즌 47번째 세이브기회 등판에 47번째 세이브를 따내는 진화율 100% 기록을 이어갔다.
한편 정교함과 파괴력을 고루 갖춘 레이스 2-3-4번 UPL 공포타선(업튼, 페냐, 롱고리아)은 이날 도합 12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다. 레이스의 2-3-4번이 한 경기에서 단 1안타도 때리지 못한 것은 정규시즌 162경기를 포함해 올해 처음이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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