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오뉴월은 유럽에서 벌어진 축구 큰 잔치 두 마당 때문에 <후다닥 그리고 신나게> 지나갔다.
첫째 마당은 단판극이었다. 5월21일 모스크바에서 벌어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결승전 박지성이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U)와 삼성이 후원하는 첼시의 경기였다. 연장까지 가는 120분 혈전 끝에 맺혀진 결과는 주지하다시피 맨U의 승부차기 승리였다. 그날(실은 그 이튿날) 꼭두새벽(현지시간)에 장대비 속에서 춤추던 맨U 선수들과 울먹이던 첼시 선수들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어제처럼 새롭다. 손꼽아 기다렸던 유니폼은 아니 입고, 엔트리에서 빠지는 바람에 양복차림으로 덩치 큰 동료들과 함께 곁다리로 춤추던 박지성을 보며 짠했던 마음까지 그대로다.
둘째 마당은 6월에 알프스 두 이웃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 펼쳐진 4년주기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08), 그 짜릿한 연속극이었다. 한 컷 한 컷 놓치기 싫은 장면을 새삼스레 늘어놓자면 한이 없자면, 좌간 마지막 승부 마지막 승자는 스페인, 유로2008 본선에 오른 16개국 가운데 가장 땅딸보 패거리인 스페인이 오밀조밀 아기자기 패싱게임으로 모감지(목의 사투리) 하나는 더 커보이는 독일을 누르고 44년만에 축구대륙 유럽정상에 오르는 과정은, 참말로 대단했다.
◇덕분에, 간만에, 신나게, 나는 축구 기사를 실컷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이강규 편집국장이 내 축구실력을 갖고 농담을 걸었다. 당구를 빗대어 나도 우스개로 받았다. 하는 축구는 80이어도, 보는 축구는… 건성으로 주고받은 심심풀이 말이라 담지 않아서 300이라고 했는지 700이라고 했는지 다음 숫자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로부터 한참 지나 어떤 자리에서 영어 때문에 진땀을 좀 뺀 뒤끝이었는데 마침 축구 얘기가 스치길래 얼른 그걸 붙잡아 내 영어 실력과 축구 실력이 비슷하다며 웃은 적이 있다. 둘 다 족히 30년 이상 씀벅거렸는데, 30년 전 그때나 30년 지난 지금이나 버벅거림은 거의 마찬가지란 생각에 던진 농담이었다.
실제로 그렇다. 요놈의 영어는 ABCD를 익히며 조막손을 불끈 쥔 게 1974년인데 한 세대가 흐르고 몇 년이 더 지나도록, 뭘 좀 발표할라치면, 거창한 프리젠테이션은 아니라도 하다 못해 속엣말을 풀어놓을라치면, 속된 말로 골은 졸이고 혀는 꼬인다. 나의 축구 요놈은 더 용서받지 못할 녀석이다. 내 알량한 영어보다 역사가 유구한데도(?) 운동장에 들어서면 10분만 지나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한 20분 지나면 가슴이 미어지고, 30분쯤 지나면 다리고 장이고 옆구리고 꼬이기 시작해서 40분 고개를 넘어가면 오만 삭신이 거의 총파업 지경이 된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영어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듯, 축구탐욕을 어찌하지 못한다, 보는 축구든, 하는 축구든. 왜? 우선 즐겁다. 즐기는 동안에 장기들의 반란이 알게 모르게 조금 조금씩 줄어듦을 눈치챌 때면 더욱 즐겁다. 보너스 즐거움도 여간 아니다.
봄날 상록대회와 일맥대회, 여름날 SF축구협회장기대회(사정상 올해는 건너뛰었지만), 가을날 한얼대회 등 북가주 한인사회에서 열리는 축구대회에만 가도, 뛰는 재미 못지 않게 구경하는 재미가 서너말이요, 천막그늘에서 나무그늘에서 주거니받거니 농담과 정담의 재미는 예닐곱말이다.
더러 승부에 집착해 낯을 붉히는 장면도 목격하지만, 대개는 양보없는 몸싸움을 벌이면서도 금세 정감있고 심술궂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으로 해장하는 50대 형님들 60대 어르신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식은땀 말고는 운동땀이라곤 흘려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 웃고 즐기며 하루를 태운 그런 날 해거름에, 내 몸 내 마음에 어느 구석에 틀어박혔을 뭔가 몹쓸 진액을 땀을 통해 웃음을 통해 사그리 뱉어버리고, 물 있으면 물에 첨벙 뛰어들고 이불 있으면 이불에 풀썩 드러눕고픈 노곤한 몸 가풋한 마음으로 귀가하는 그 삼삼한 기분을 속속들이 전해줄 수 있을까.
◇스포츠섹션을 즐기는 분들에게 무슨 공부하듯 스포츠소식을 머리로만 주워담지 말고 기왕이면 거기서 받은 영감이랄까 자극이랄까 하는 것을 실제로 ‘하는 스포츠’로 맛을 좀 보면서 건강도 챙기시라고 드린 말씀이다. 그림의 떡은 아무리 맛있어 보여도 먹을 수 없고, 먹지 않으면 내 살 내 피가 될 수 없다. 스포츠뉴스를 머리로 제아무리 꿴다한들 내 건강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
물론,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박지성 박찬호 박주영 등 얘기를 하면서 몇차례 되풀이해 강조한 얘기지만, 그 옛날 국민교육헌장 첫머리를 장식한 거창한 말을 빌어쓰자면 스포츠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는 이나 보는 이나 즐겁고 건강한 삶에 보탬이 되라고 이 땅에 태어났다. 모름지기 스포츠는 죽기살기로 할 건 결코 아니요, 나 아닌 남에게 그러라고 강요할 건 더더욱 아니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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