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계속 이렇게 할거야?”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까 당신은 가만히 있어요.”
“정말 보자보자하니 완전 보자기로 봐.”
오동필은 테이블을 탁 치면서 큰소리를 쳤다.
“누구는 이렇게 하고싶어 해? 현실이 그런걸 어떻게 하냐고.”
“현실을 탓하지 말아. 당신이 너무 광적이야.”
오동필한테는 열살 된 딸 리자가 있다. 동필은 아이가 하나면 고집스럽고, 이기적인 나쁜 버릇이 생긴다,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떠나도 형제가 있으면 서로 의지하고 살 수 있지 않느냐 그러니 아이를 한 명 더 두자고 했다. 승희는 여럿 낳아 힘겹게 키우는 것보다 딸 하나라도 확실히 키우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승희는 결혼 초기에는 동필의 말을 잘 듣는 순한 양 같았다. 주위에서 좋은 여자를 만났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그런데 딸 리자를 낳고 한 일년이 지나면서 성격이 변했다. 이제는 동필의 의견을 완전 무시하고 자기 고집대로 딸 리자를 키우고 있다. 한참 재롱을 부리고 인형을 가지고 놀 아이의 손에 피아노를 두드리게 하였다. 승희는 어릴 때부터 아이의 재능과 취향을 알아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동필도 그렇게 생각해 별 말을 않고 따라갔다. 한 일년이 지난 후였다. 여자는 피아노보다 바이올린이 우아하고 멋있다고 바꾸었다. 리자가 아직 어려 그런지 악기에 별 취미가 없는지 싫어하는 눈치였다. 그래도 엄마가 하라고 하니 그냥 쫓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이번엔 미술학원으로 데리고 갔다.
“어린 아이한테 너무 이것저것 가르치고 있는 것 아니야?”
하루는 동필이 승희한테 물었다.
“누구를 닮아 그런지 예능엔 영 맹물이네.”
“그래 잘하는 건 엄마를 닮고, 못하는 건 다 아빠를 닮았지.”
“알기는 아네.”
“그러니 학교 공부에 충실하도록 해.”
“공부도 해야겠지만 계집애는 예능도 한 두 가지는 알아야 된다 구요.”
“아이가 하기 싫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거야. 이제 좀 고만 설쳐대요.”
그런 말이 있고 얼마 있다가 체력을 단련해야 한다며 동네 어린이 축구 모임에 들어갔다. 리자는 피곤하다고 했지만 승희는 처음엔 다 그런 것이니까 참고 견디면 된다고 했다. 하루는 리자가 눈물을 흘리면서 너무 힘들어 운동을 못하겠으니 학교만 가겠다고 했다. 동필은 승희한테 그렇게 하도록 하자고 했다.
“난 리자를 평범한 가정주부로 만들지 않고 커리어 우먼을 만들 것이니 당신은 좀 가만히 있어요.”
동필은 그저 집안의 평안을 위해 참았다. 이번엔 딸 리자를 무용학원으로 데리고
1. 갔다. 얼마동안 말없이 다니기에 무용에 취미가 있나하는 생각을 동필은 했다.
“엄마. 난 발레 싫어. 그냥 학교에만 다니면 안 돼?”
주말 저녁 세 사람이 모여 앉아 과일 먹다 리자가 불쑥 말을 했다.
“리자. 지금부터 몸의 균형을 잡아야해. 그렇지 않으면 피기pig가 돼. 그러니 힘들어도 참아야 되는 거야.”
“엄마, 그럼 나를 S라인 만들려고 그래?”
“그럼. 우리 리자 예쁘고 날씬해지면 좋잖아.”
“난 배우나 가수 되는 것 싫어.”
“꼭 그런 사람이 안되어도 날씬한 몸매를 가지면 좋잖아.”
“엄마는 좋은지 모르지만 난 싫어. 그러니까 내일부터 안 갈 거야.”
리자는 샐쭉한 표정을 짓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후 각자의 행동으로 온 집안에 냉기가 돌았다. 동필은 승희와 마주 앉았다.
“여보. 리자가 이제 겨우 열 살이야. 그러니 학교 끝나면 놀게 해줘.”
“안 돼. 내 멋있는 여자로 꼭 만들 거야.”
“가만. 멋있다는 기준이 뭐야?”
“얼굴 예쁘고, 몸매 있고 돈 많은 사람 만나 행복하게 사는 거지 뭐.”
“정말 영양가 없는 말만 하고 있네. 머리가 빈깡통인 여자를 누가 데리고 간대.”
“당신은 가만히 있어. 내 꼭하고 말 거야.”
“그런데 그 애가 벌써 안 하겠다고 하잖아.”
“어떻게 하든 하도록 해야지.”
“잘못하다 옆길로 가면 어떻게 할거야? 그냥 순리대로 키워.”
“애를 그렇게 물렁하게 키우면 앞으로 뭐가 되겠어?”
“공부 잘하고, 가정교육 잘 가르치면 그것이 최고 아니야?”
“난 그런 소극적인 것 싫어.”
“정말 못 말리겠네. 내가 어쩌다 저런 극성 바가지를 만났을까.”
“다른 아빠들은 딸 예쁘게 키워야한다고 하는데 당신은 어찌 말리고 있어?”
“지금 당신이 하는 행동이 옳다고 생각해? 제발 주제 파악 좀 해요. 영부인.”
승희는 동필을 빤히 쳐다본다.
“자식 교육은 엄마가 시키는 것이니까 당신은 돈이나 많이 벌어와요.”
“나는 이 집 가장이고 리자는 내 딸이야. 그러니까 나에게도 책임이 있어.”
“그러니까 교육비나 많이 벌어요.”
“당신 리자를 교육시키는 것이 아니고 허영에 들떠 있어.”
“허영이 아니고 교육이니까 걱정 붙들어 매둬.”
“어쨌든 아이가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해. 당신이 끝까지 보호할 수 없잖아.”
“내 자식 내가 보호해야지 누가 해?”
“그래 우리가 보호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아이가 싫다고 하는 것 억지로 시키지 말고 하고 싶어하는 것 하도록 해줘.”
“난 리자만은 멋있는 아이로 키울 거야.”
그때 방문소리가 나면서 딸 리자가 리빙 룸으로 나왔다.
2.
“아직 안 잤어? 이리 와.”
동필이 리자한테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리자는 동필의 손을 못 본 척하고 엄마 앞에 섰다.
“엄마. 아빠 말이 맞아. 내가 남자친구를 만날 때 엄마도 같이 가야 해? 그리고 엄마가 하라는 것 난 다 싫어. 정말 엄마 미워.”
리자는 침착하게 자기가 할 말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이구, 내 머리야.”
승희는 몸을 소파에 기대며 손을 이마에 얹고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리자 교육문제는 다시 생각해야겠어.”
승희는 자신의 욕망만을 생각해온 것이 딸 리자 보기가 부끄럽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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