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별세계에 살고 있는 듯 했다. 월스트릿의 투자은행가들, 천문학적 숫자의 보수로 인해 더욱 명석해 보이던 냉정한 두뇌의 젊은 엘리트로 대변된다. 미 전국이 불황의 그늘에서 신음하던 지난해에도 골드만삭스의 보너스는 121억 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엊그제 파산신청으로 세계의 금융시장을 뒤흔들어 놓은 리먼브러더스 임직원에게 배당된 보너스 역시 95억 달러로 밝혀졌다. 그들이 요즘 지상으로 내려앉았다. 아니, 지하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선망의 대상 월스트릿에서 ‘하나님 바로 아래’로 자처하며 그처럼 당당했던 인재들이 눈물을 흘리며 짐을 싼다는 현실이 도무지 실감하기 힘들다.
벌써 나흘째 줄곧 모든 뉴스를 압도하고 있는 금융위기도 마찬가지다. 월요일 출근길부터 ‘위기’ 뉴스의 홍수에 익사할 지경이지만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은 그 사안의 비중을 정확히 측정하기도, 체감하기도 힘들다.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에 이어 다음엔 누가 무너질 것인가, 850억 달러의 세금을 쏟아 부은 정부의 AIG보험사 구제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불안감은 전혀 진정될 기미가 아니라는데…투자할 여유가 없어 월스트릿과 가깝지 못했던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걱정해야 하나, 이 위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덩달아 쌓여가는 이 불안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겉으론 대단한 것 같지만, 본질은 아닙니다. 월스트릿이 건강을 위협하는 과체중 상태에서 제 몸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으로 보면 됩니다. 자기자본 3%에 불과한 극도의 위험경영을 겁 없이 자행해온 투자은행들이 제대로 건강한 금융으로 거듭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체지방을 없애고 있는 겁니다. 죽기살기의 고통을 당하며 살을 빼고있는 중이지요”라고 페이스대학의 경영학 석좌교수 이종열박사는 이번 사태의 본질을 풀이한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월스트릿의 ‘돈 더미 속에서 수영하던’ 황금시절은 영원히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금융시장의 요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앞으로 중소형 투자회사들의 도산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 그는 이같은 환경 속에서 비즈니스의 규모자체가 축소되고 그 축소된 비즈니스를 나눠가져야 하니 훨씬 더 적은 수익에 만족하는 체질로 개선될 것이며, 또 그래야 한다고 말했다.
보통사람인 우리와는 별 상관이 없는 위기라고 그는 단언했다. 크게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월스트릿이 요동을 치는 동안엔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가장 피부로 느낄 영향은 자금 압박이다. 자금이 풍부해 싼 이자를 찾아다니던 시절, 무제한 대출의 시대는 이제 사라져버렸다. 자금유통 자체가 계속 힘들어질 것이다. 자영업자가 물론 더 절감하겠지만 봉급 받는 직장인들에게도 무풍지대는 없다. 당분간 감원걱정 없는 직장인이라면 금융위기에 불안해 하는 대신 감사하며 열심히 일하라고 이 교수는 웃으며 조언한다. 아무리 빨라도 2010년 이전엔 경기회복의 기미를 느끼기 힘들다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그때까지는 위기를 실감 못한 보통사람들도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뜻이다.
커먼웰스은행의 최운화 행장은 경기회복 시기를 더 멀리 잡는다. 5년 뒤 2013년까지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1년을 지낸 후 나머지 4년은 허리띠 졸라맨 자세에 아예 익숙해지라는 것이다. 월스트릿 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 역시 생산능력 이상으로 소비하며 수입이상으로 지출해온 지난 몇 년의 생활을 그렇게 상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금융시장의 위기는 70~80년을 주기로 발생한다며 1929년 대공황이후 80년이 다 되었음을 상기 시켰다. 대공황의 교훈으로 마련되었던 법적규제 장치가, 금융계의 탐욕과 정치적 이해가 맞물리면서 완화된 것이 위기의 주요 원인중 하나라고 그는 지적한다. 1933년 은행의 지나친 돈벌이 자유경쟁을 제한하기 위해 만들어진 후 금융계 안정에 큰 몫을 해온 글래스-스티걸 법안이 1999년 ‘구시대의 산물’로 폐기된 것을 아쉬워하는 것이다.
금융계에 대한 당국의 규제강화는 2008대선에 나선 두 후보 모두가 강조하는 공약이기도 하다.
오바마는 공화당을, 매케인은 민주당을 서로 탓하지만 사실 월스트릿의 위기는 거슬러 올라가보면 양당 모두에 책임이 있다. 공화당이 규제완화를 주도했다면, 부실대출을 개의치 않고 주택소유를 부추긴 것은 민주당이었으니까. 또 사실상 현재의 금융위기에 대해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것이 이 교수와 최 행장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래도 캠페인 현장은 금융위기를 이슈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오바마의 중산층 감세안에 기대를 거는 유권자도 많고, 경제를 이끌어가는 상위 10%를 포함한 매케인의 감세정책이 시행되어야 경기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믿는 유권자도 적지 않다.
금융위기가 어디까지 진행될 지, 그로 인한 경기불안이 언제까지 계속될 지는 누구도 정확히 가늠하기 힘들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우리는 앞으로 1년에서 5년까지는 허리띠를 매고 견디어야 하는 이 불안의 시기에 그래도 두 후보에게서 ‘희망’을 주는 리더십을 발견하고 싶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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