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을 뛰어넘은 100년 전 괴물투수 사이 영 = 메이저리그의 정규시즌 선발투수진은 대개 5인 로테이션으로 운용된다. 포스트시즌이 되면 4인 로테이션으로 단축하기도 한다. 뉴욕 양키스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맞붙은 2001년 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선발로 뛴 랜디 잔슨(D백스)이 7차전에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과 같이 다음을 위해 더 이상 남겨놓을 필요가 없는 결정적 고비에는 로테이션은 물론 선발이냐 불펜투수냐 구분을 없애고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곤 한다.
그러나 선발 로테이션의 정상 사이클은 닷새만에 한번 출격이다. 또 선발투수 교체는 주로 피치 카운트가 100개를 전후했을 때 이뤄진다. 스포츠 과학의 산물이다. 당장 승리에 집착해 하루가 멀다하고 등판하거나 어깨나 팔의 근육이 녹초가 되도록 200개 가까운 무리한 피칭을 하면 십중팔구 선수생명이 단축된다. 선수가 곧 재산인 구단으로선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메이저리그 팀들이 정규시즌 막판이나 포스트시즌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5인 선발 & 100 피치’를 거의 금과옥조처럼 지키는 이유는 따라서 선수보호라는 인도적 측면과 재산관리라는 타산적 측면을 띤다.
과거 한국의 고교야구에서 네닷새 연속 선발등판이니 몇 게임 연속 백수십개 피치니 하는 선수혹사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런 비과학적 비인도적 혹사 덕분에(?) 고교시절 반짝했다 사라진 중도폐기 스타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초창기에도 그렇게 사라져간 투수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과학을 비웃은 빛나는 예외가 있다. 1900년을 전후해 맹활약한 사이 영(Cy Young)이다. 본명은 덴튼 트루 영(Denton True Young)인데, 공이 사이클론(cyclone)처럼 빠르고 힘이 넘친다고 해서 붙여진 애칭이 본명처럼 남았다.
기록이 전하는 사이 영의 그 때 그 시절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1891년부터 14년동안 내리 20승 이상 기록했다. 그중 1892년에는 36승, 1893년에는 32승을 올렸으며 1897년에는 첫 노히트노런을 기록했고, 1901년에는 신생 보스턴 필그림스(보스턴 레드삭스의 전신)에 입단, 새로 창설된 월드시리즈 제패를 견인했다. 또 1904년에는 퍼펙트게임을, 41세 때인 1907년에는 개인통산 3번째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뒤 45세 때인 1911년 은퇴했다. 22년동안 메이저 마운드에서 그가 세운 511승(내셔널리그 289승, 아메리칸리그 222승 역대 1위)과 7,377이닝 피칭은 메이저리그의 한시즌이 현재의 2배를 훨씬 넘는 1년 365일 경기체제로 바뀐다 해도 쉽사리 달성하기 힘든 기록이다. 이밖에도 그는 14시즌 연속 20승 이상을 포함해 16차례나 20승+ 시즌을 보냈다. 그중 30승 이상 올린 시즌만 5차례다. 그의 749게임 완투기록과 815게임 선발출장기록 역시 그의 은퇴 후 100년이 다 돼가는 현재까지 난공불락이다.
그를 기려 사이 영 상(Cy Young Award)이 제정된 것은 1957년부터다.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에서 그해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인 투수에게 주어지는 이 상 역시 투수들의 꿈이다.
◇ NL 사이 영 상을 향한 뜨거운 3파전 = 2008년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 각축전이 뜨겁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우완신인 팀 린시컴,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브랜던 웹, 밀워키 브루어스의 CC 사바티아의 3파전 양상이다. 시카고 컵스의 카를로스 잠브라노(14승5패)가 14일 노히터 완봉승을 거두는 등 올해 컵스 상종가의 버팀목 역할을 했지만 겉으로 드러난 기록상 사이 영 어워드까지 넘보기엔 다소 미흡하다는 평가다.
▷팀 린시컴 : 홈런왕 배리 본즈가 빠지고 억대투수 배리 지토는 부진해 하마터면 파리를 날릴 뻔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가뭄 속 단비 같은 존재다. 중고참 중견수 애런 로왠드가 지난달 올해 내셔널리그 사이 영 어워드는 팀 (린시컴)에서 시작해 팀으로 끝나야 한다고 했던 말이 제식구 감싸기 수준의 과장처럼 들리지 않을 정도다. 작년 시즌 끝물에 간간이 선을 보이며 가능성을 인정받아 올해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그는 14일 현재 17승3패로 내셔널리그 다승부문 2위다.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방어율(2.43)은 내셔널리그 1위, 탈삼진(237개)은 양대 리그 통틀어 1위다. 승율 또한 내셔널리그 투수 가운데 1위다. 총30게임(그중 선발등판 29게임)에서 207.2이닝을 소화해 피칭이닝에서는 NL 3위다. 방어율 1위에 피칭이닝 3위라는 말은 잘 던지고 못이긴 게임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타선의 득점지원만 제대로 이뤄졌다면 대여섯게임은 너끈히 이겼을 것이다. 신인이라 연봉은 40만5,000달러에 불과하다.
▷브랜던 웹 : 올해 31게임에 선발로 등판해 20승7패에 방어율 3.28을 기록했다. 완투게임이 3차례에 완봉승은 1차례다. 총 205.2이닝을 던지는 동안 13홈런을 포함해 184안타를 맞고 59볼넷을 내줬으며 삼진은 168개를 낚았다. 1979년 5월 켄터키주 애쉴랜드 출신으로 올해 연봉 550만달러인 웹은 승수에서는 단연 유리한 입장이나 방어율 등에서 린시컴에 비해 비교적 큰 차이가 나고 초반부터 줄곧 디비전 1위를 달려온 D백스가 정작 9월에 접어들어 2위로 내려앉는 바람에 자신의 빛나는 피칭이 다소 가려진 측면이 있다. 이 점에서는 린시컴도 마찬가지이지만 자이언츠는 애당초 선두권을 형성하지 못해 도리어 린시컴의 호투행진이 두드러져 보인 반면, 웹은 자신의 호투보다 D백스의 막판하락이 더 크게 보여 사이 영 어워드 투표자들에게 어필하는 데 다소 손해를 볼 수도 있다.
▷CC 사바티아 :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사이 영 어워드 수상자인 사바티아는 올해 전반기 막판 트레이드 시장의 최대어였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밀워키 브루어스로 이적한 이 좌완투수는 브루어스의 올가을 풍년꿈을 상징했다. 실제로 그는 이적 뒤 연승을 거두며 만년 중하위권 브루어스의 상승세에 날개를 달아주는 역할을 했다. 이달 초 ESPN은 내셔널리그 사이 영 어워드 판도를 예측하면서 재주는 웹과 린시컴이 부리고 수상의 영광은 사바티아가 차지할 것이라는 식의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브루어스의 강팀부상이 그만큼 센세이션으로 받아들여졌고 사바티아는 단순히 기록(15승8패, 방어율 2.81, 탈삼진 225개로 린시컴에 이어 2위)을 넘어 브루어스의 신데렐라 스토리 그 자체로 인식된 것이다. 그게 이제는 덫이 될 수도 있다. 브루어스의 가공할 상승세가 8, 9월을 지나면서 소강상태가 돼버린 탓이다. 1980년 7월 북가주 발레호 출신으로 올해 연봉 1,100만달러를 받는 사바티아가 작년 아메리칸리그 사이 영 어워드 위너에서 올해 내셔널리그 사이 영 어워드 위너가 되려면 우선 그 자신이 남은 두세차례 등판에서 인상적인 승리를 거둬야 한다. 거기다 브루어스가 막판 대역전극을 펼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면 린시컴이나 웹의 호투는 사바티아를 위한 장식품으로 밀려날 가능성도 있다. 전제가 그만큼 겹친다는 건 그만큼 어려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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