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에서 캘리포니아는 찬밥이다. 텍사스와 뉴욕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선거인단 538명 중 55명, 34명, 31명을 보유한 대형주 1,2,3위가 모두 선거 막바지인 요즘, 후보들이 눈길조차 주지 않는 찬밥신세다.
미국의 대통령선거는 형식상 직접선거가 아니다. 538명의 선거인단이 12월에 모여 투표로 결정하는 간접선거다. 연방의석수에 따라 배정된 각 주의 선거인단 전원을 그 주에서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모두 차지하는 승자독식방법을 택하고 있다. 그러니 민주당세가 강한 캘리포니아와 뉴욕, 공화당이 판치는 텍사스 등은 각각 너무 확실한 양당의 표밭이어서 선거이전에 승자가 일찌감치 결정되어 버린다. 이곳의 유권자들은 ‘한 표의 힘’을 자부할 기회조차 못 갖게 되는 셈이다.
미대선의 선거인단 제도가 비민주적이라는 지적이 나온 것은 이미 오래다. 크게 두 가지 결함이 꼽힌다.
첫째는 최다득표자가 낙선할 수 있는 부작용이다. 가장 표를 많이 얻고도 선거에서 패한 경우가 미 역사상 4차례나 있었다. 앞의 3차례는 1800년대의 일이었지만 4번째는 바로 2000년 조지 부시와 앨 고어 대결에서 발생했다. 부시보다 수십만표를 더 얻고도 선거인단 수에서 불과 몇 표를 뒤지는 바람에 낙선했던 고어의 ‘한 맺힌 패배’는 아직 모두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표를 더 적게 받고도 대통령이 되는 이상한 선거를 목격한 것이다.
둘째는 선거전이 이른바 ‘스윙 스테이트’로 불리는 소수의 경합지역에서 ‘그들만의 잔치’로 치러지는 현상이다. 게다가 경합지역의 숫자는 점점 적어진다. 1960년대만 해도 24개주(선거인단 327명)가 경합지로 꼽혔는데 요즘은 10여개로 줄어들었다. 각 후보의 시간과 에너지와 그리고 사상최고로 거둬들인 자금이 이 소수의 지역에만 쏟아 부어지고 있다. 나머지 30여개 주는 관심권 밖이다.
줄밖으로 밀려난 후유증은 심각하다. 유권자들의 흥미 상실로 투표율이 낮아지고 당락에 영향력을 못 주는 비 경합지역의 관심사는 대선 이슈에서 제외된다. 오하이오와 미시간의 사양길 자동차산업 대책엔 갖가지 공약이 춤을 추는데 캘리포니아·텍사스 등 대형주의 이민문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후보들이 챙기는 정도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캘리포니아와 뉴욕, 텍사스 등의 우리는 ‘2류 유권자’로 전락한 느낌이다.
결함을 잡으려면 선거인단 제도를 폐지하면 된다. 여론의 70%도 직선제를 지지한다. 그러나 그건 헌법개정을 의미한다.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연방의회 3분의 2 찬성이 필요하고 50개주의회 중 4분의 3이 비준해야한다. 우선 현행제도로 혜택을 누리는 스윙 스테이트들이 찬성할 리 없다. 민주·공화 양당 역시 무조건 지지하기엔 걸리는 이해관계가 너무 많을 것이다.
현행제도에 대한 개혁은 다각도로 추진되어 있다. 19세기부터 연방의회에 상정된 선거인단 폐지관련 법안만 무려 800여개다. 현재 캘리포니아 주지사 데스크에도 8월 중순 주의회를 통과한 개혁법안 SB37이 올라가 있다.
스탠포드대 교수가 설립한 내셔널 포퓰러 보우트(NPV)라는 단체가 추진하는 혁신적 제안이다. 각 주의회가 자기 주 선거인단을 전국득표 1위 후보에게 준다고 약속하는 법안이다. 단 약속은 이 제안을 입법화하는 주들의 선거인단수가 대통령 당선권인 270명을 넘어서면서부터 효력을 발생하게 된다.
현재 이 개혁 법안이 상정되어있는 주는 10여개에 이른다. 이미 하와이, 메릴랜드, 일리노이, 뉴저지 등 4개주는 입법화시킨 상태다. 이들 주의 선거인단은 도합 50명, 만약 캘리포니아가 동참하면 개혁안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2006년에도 주의회를 통과했지만 아놀드 슈워제네거 주지사의 거부권행사로 무산되었었다.
이제 대선까지는 54일이 남았다. 공화당 새라 페일린 부통령후보의 등장으로 선거전은 갈수록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다. 멀리서 구경하는 ‘찬밥’의 시각을 접어두고 뜨겁게 쿠킹되고 있는 접전 판세를 잠깐 들여다보기로 하자.
대선관련 인기 블로그 ‘리얼클리어폴리틱스닷컴’이 종합한 판세가 그중 포괄적이다. 먼저 대의원 수를 보자. 버락 오바마와 존 매케인이 확보한 수는 각각 217명 대 189명, 경합지역은 대의원 132명이 걸린 10개주다. 9월10일 현재의 각주별 지지도가 유지되어 펜실베니아를 비롯한 5개주 56명은 오바마에게, 플로리다를 비롯한 5개주 76명은 매케인에게 가산될 경우 최종 합계는 오바마 273명, 매케인 265명이 된다. 선거인단 투표에선 오바마의 승리다.
전국지지율의 그림은 다르다. 지난 며칠새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하더니 각 조사기관마다 차이가 크다. 매케인의 10% 리드로 나온 갤럽과 오바마가 2% 포인트 앞선 것으로 집계된 ABC-WSJ 폴을 포함 7개 조사를 평균 내어보면 47.4% 대 45.2%로 매케인이 앞서있다.
지지율이 그대로 표로 연결된다면 전국득표에서 앞선 매케인이 선거인단 투표에서 패배하는 결과가 빚어질 것이다. 만약 이렇게 하여 공화당이 백악관을 민주당에게 내줄 수도 있다고 상상한다면 공화당의 슈워제네거 주지사는 대선법 개혁안 SB37에 서둘러 서명하지 않을까.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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