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꽁트
남자의 목소리는 레드우드의 삼나무처럼 굵고 나일강의 삼각주처럼 기름졌다. 색깔로 치자면 적어도 삼십년쯤 깊고 서늘한 어둠 속에 묻혀 익은 포도주에 견줄 만했다. 그 진하고 맑은 보석 같은 액체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상상 때문에 나는 감히 고개를 돌려 남자의 얼굴을 찾지 못했다. 목소리 좋은 성악가나 성우 중에도 미남 미녀가 심심찮게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내가 굳이 메주덩어리나 야수의 모습을 상상한 건 조물주의 공평성을 믿고 싶은 못난 고집 때문이었을 것이다.
대신 나는 크지 않은 체육관을 울린 남자의 목소리를 따라 새뮤얼이라는 이름의 사내아이를 찾았다. 남자가 내 뒤의 응원석에 앉은 걸 보면 그의 아이도 내 아이와 같은 노란 유니폼을 입고 있을 것이 분명했지만, 노란 유니폼 중에는 손 놓고 헤어진 지 몇 분이나 되었다고 벌써부터 연신 손을 흔들어대는 내 아이 외에는 아무도 응원석을 바라보는 아이가 없었다. 하긴 놀부가 보면 부러뜨릴까 겁나는 햇병아리 다리로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여섯 살배기들 중에서 ‘데니 보이’나 ‘러브 미 텐더’를 불러주었으면 싶은 바리톤의 흔적을 찾아내기란 처음부터 가당찮은 일이었을 것이다.
경기가 시작되려면 아직 10분이나 남았지만, 남자의 목소리는 벌써부터 체육관을 우렁우렁 울리고 있었다. 새뮤얼, 얼른 제 자리에 가서 서라. 새뮤얼, 코치 말 잘 들어라. 새뮤얼, 한 눈 팔지 말고 네 차례를 기다려라. 워낙 목소리가 좋아서인지, 영어발음도 귀에 거슬리는 액센트 없이 부드럽게 굴러갔다. 그러니 마침 남자의 셀폰이 울리고 그가 낭랑한 한국어로 중계방송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가 나와 같은 언어를 쓰는 동포라는 것을 몰랐으리라. 지금 우리 새뮤얼이, 우리 새뮤얼이… 일렬로 늘어선 아이들이 코치가 발 앞으로 굴려주는 공을 차례로 차기 시작했고, 덕분에 나는 새뮤얼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희고 갸름한 얼굴에 이목구비가 모두 올망졸망한데다가 입술까지 가늘어 조금은 신경질적인 인상을 주는 말라깽이 중의 하나였다. 글쎄, 내가 요즘 이런 재미로 산다니까. 멋쩍은 듯 되풀이 매단 후렴을 끝으로 통화가 끝날 즈음 아이는 제 아버지의 기대를 의식한 듯 다른 아이들보다 한결 강한 슛을 골에 꽂았고, 남자는 목소리에 못지않은 우렁찬 박수소리로 화답했다. 잘 했어, 새뮤얼, 자알 했어, 굿 보이. 아이의 얼굴에 떠오른 수줍은 미소를 확인하기까지 나는 잠시 마음을 조였다. 웬일인지 ‘굿 보이’라는 남자의 칭찬이 내 귀에는 ‘굿 도기’와 다름없이 들렸고, 그 말을 들은 아이가 멍멍 짖거나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재주를 보일 것만 같았던 것이다.
전반 경기가 시작되자 ‘고, 갤럭시, 고’라는 팀 응원으로 테입을 끊은 남자의 목소리는 경마장에 나선 말처럼 더욱 더 힘차고 빠르게 체육관 안을 누비기 시작했다. 공을 따라가, 공을 따라가, 새뮤얼, 새뮤얼, 공을 차라니까. 경기 처음부터 대기조를 자원한 내 아이는 체육관 반대편에서 여전히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지만, 내 시선은 나도 모르게 남자의 절절한 목소리를 따라 새뮤얼을 찾고 있었다. 그 나이의 축구경기 중에는 공의 위치와 상관없이 경기장 한복판에 우두커니 서 있거나 심지어는 반대 방향으로 뛰어가거나 공을 차서 부모들을 어이없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나는 새뮤얼과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그의 아버지에게 동정과 위로의 마음을 품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경기와 동떨어진 아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노란 유니폼도 초록 유니폼도 경기가 시작될 때 코치들이 정해준 제 자리와는 상관없이 골문이고 뭐고 다 비워둔 채, 꿀통을 약탈당한 꿀벌들 마냥 공을 겹겹이 둘러싸고 우왕좌왕 뛰어다니고 있었다. 사실 공은 아이들에게 가려져 보이지도 않았고 그저 아이들의 중심 어디쯤 공이 있으리라, 상대편이고 제 편이고 할 것 없이 서로의 다리에 부딪쳐, 거울상자 속에 갇힌 햇빛처럼 수없이 퉁기고만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럴 때는 결국 누군가가 경기장 밖으로 공을 밀어내고, 그래서 상대편의 누군가 심판의 감독 아래 공을 다시 던져 넣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아이들 경기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수도 없이 되풀이되는 일이었다. 반대편을 보니 처음 공이 구석에 몰렸을 때 가는 팔다리를 휘두르며 ‘고 갤럭시’를 외치던 내 아이는 벌써 옆의 아이와 가위바위보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의 목소리는 그 지루한 순간에도 아들의 이름을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 공을 빼내, 새뮤얼, 공, 공을, 새뮤얼, 새뮤얼. 숨이 넘어갈 듯 외치다가 드디어 상대편 아이가 줄밖으로 공을 차내고, 마침 그 앞에 있던 새뮤얼이 공을 던지게 되자, 남자는 아이의 작은 손에 들린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도 되는 듯 목이 터져라 새뮤얼을 불렀다. 아, 그가 일찍이 기미년에 그 목소리로 대한독립 만세를 불렀다면 한반도의 역사가 달라졌으리라.
어느 새 선수 교체를 하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온 내 아이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지만, 나는 그저 손을 흔들어 화답했을 뿐, 감히 입을 벌려 아이를 응원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단잠을 설치고 경기장에 나온 부모들의 극성이라면 다들 남부럽지 않을 정도는 되겠지만, 그 누구의 목소리도 새뮤얼을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 앞에서는 잡음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듯 했다. 아무튼 그날 전반 경기가 끝날 때까지 내 아이 외에 내가 아는 유일한 이름은 새뮤얼이었고, 앞으로 경기가 계획된 8주가 다 지난다 해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았다.
쉬는 시간이 되었을 때도 남자는 선수석으로 돌아가려는 아이의 덜미를 낚아채듯 목청껏 아이를 불렀다. 새뮤얼, 물 마셔라, 물. 다들 물병을 선수석에 놓아두고 거기서 마시면서 코치 말도 듣고 서로 사귀기도 하지만, 남자는 아이의 물병을 제 옆에 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마침 응원석에 앉았던 부모들도 화장실이며 커피를 찾고 전화를 거느라 들썩거리는 참이었으므로, 나는 뻣뻣하게 굳어가던 고개를 슬쩍 돌려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검은 뿔테 안경을 걸친 거무티티하고 네모난 얼굴 밑으로 70년대 새마을운동 지도자들이 입었을 것 같은 베이지색 나일론 잠바를 가득 채우고 있는 몸통도 얼굴 못지않게 단단한 직육면체일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러니 그가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나 그 솥뚜껑 같은 손으로 철컥철컥 손뼉을 치며 ‘새벽종이 울렸네’나 ‘잘 살아보세’를 응원가로 부른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잘했어, 새뮤얼. 한 눈 팔지 말고, 공 놓치지 말고. 누가 앞을 가로막으면 슬쩍 옆으로 빼내서, 다른 발로 힘껏. 알았지? 고개만 끄덕끄덕하는 건지 돌아앉은 내 등 뒤에서 아이의 대답은 들리지 않고 남자의 목소리만 들렸다. 공을 빼낼 때는 한쪽 발뒤꿈치와 다른 쪽 앞을 이용해서 공중에 살짝 띄우듯 이렇게. 알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축구팀에 등록한 부모들 첫 모임에서 매주 게임이 끝나면 그냥 잘했다고만 할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가며 잘 했거나 더 잘 할 수 있는 점을 가르쳐 주는 게 효과적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하지만 내 아이의 경우엔 처음 축구팀에 들었던 지난해처럼 왜 남의 공을 뺏어 차야 하느냐고 묻지 않는 것만도 고맙게 여겨야 할 판이었다. 그래도 싫다는 말 안하고 토요일 아침마다 따라나서고, 비록 제 편과 상대편에 대한 구분이 가끔 모호하긴 해도 응원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것으로, 축구를 통해 팀스피릿을 계발시키리라는 내 의도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자위하던 참이었다.
후반 작전지시를 하려는지 코치 앞에 아이들이 다시 모여드는 것을 보고 달려가려는 아이를 남자가 아쉬운 듯 다시 불렀다. 새뮤얼, 물 더 마셔. 물 많이 마셔야 해. 꿀꺽꿀꺽 소리가 들리도록 급하게 물을 마신 아이가 선수석으로 달려가자 남자는 아이의 뒤통수에 대고 다시 소리쳤다. 코치 말씀 잘 들어, 새뮤얼, 알았지. 아무리 잘 듣고 싶어도 이 세상의 다른 어느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커다란 목소리였다.
그 후 여러 토요일이 지났고, 노란 유니폼의 갤럭시는 매주 다른 팀과 경기를 했지만, 내 뒤통수를 울리는 남자의 목소리는 변함이 없었다. 새뮤얼, 제 자리에 가서 서라, 공을 봐라, 공을 따라가라, 공을 빼내라, 공을 차라… 남자의 주문은 끝이 없었고, 나는 새뮤얼이 삡삡, 준비완료, 삡삡, 제자리, 삡삡, 공 빼내기, 하고 로봇 말로 확인해 주지 않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었다. 차라리 새뮤얼이 로봇이었다면, 아이의 작은 몸통 어딘가에 장착되어 있을 음성작동기를 떼어내고 남자의 손에 소리 나지 않는 버튼형 원격조정 장치를 쥐어줄 수도 있었을 텐데. 새뮤얼의 가느다란 팔다리뿐만 아니라, 이미 묵음화되어 버린 내 정신의 구석구석까지 보이지 않는 실로 남자의 목청에 연결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토요일마다 오늘은 제발 그 남자가 내 뒤가 아닌 앞에 앉아 주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지만, 남자는 언제나 일찌감치 경기장에 들어와 뒷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나로서는, 저 목소리라면 로마의 공중목욕탕이나 월드컵 경기장에서 쓰리 테너와 더불어 노래를 부르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제발 내년에는 새뮤얼과 내 아이가 같은 축구팀에 들지 않기를, 적어도 내 아이가 더 이상 냉방장치나 실내축구를 고집하지 않기를 바라는 게 고작이었다.
그 날도 남자는 초반부터 열정적인 응원을 쉬지 않고 있었다. 새뮤얼, 새뮤얼, 공이 온다, 준비해라. 새뮤얼, 공을 따라가. 새뮤얼은 다른 어느 아이들보다도 열심히 뛰고 있는데 남자의 목소리는 카레라스와 도밍고의 ‘오 솔레 미오’를 누르고, 마침내 파바로티의 타오르는 태양마저 삼켜버릴 듯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나는 경기 내내 조마조마했다. 아무리 긴 잠옷 같은 옷을 입고 얌전히 무릎 꿇고 앉아 ‘오늘도 무사히’ 기도를 올리는 그림 속의 천사 같은 새뮤얼 소년이라도, 아니 설사 로봇이라도, 어느 한 순간 우뚝 서서 소리를 지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야, 이 새끼야, 네 눈에는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것 같니? 공 따라 뛰지 않으면, 차지 않으면, 내가 지금 딴 짓하고 노는 것 같니?
후반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은 터졌다. 제 편 골대 앞에 수비조로 서 있던 새뮤얼이 제 앞으로 굴러온 공을 뻥 소리가 나도록 걷어찼던 것이다. 축구장에서 공 차는 거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내가 들은 것은 분명 무엇이 파열되는 폭발음이었고, 내가 본 새뮤얼의 동작은 분명 ‘걷어찬’ 것이었다. 공은 입이 벌어진 상대편 수비 진영을 뚫고 곧바로 날아가 (하긴 그런 폭탄 같은 공 앞에 누가 어리석게 사지를 노출시키고 싶겠는가) 골대가 휘청거리도록 무지막지한 힘으로 골에 박혀 버린 것이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나는 무너지는 베를린 장벽과 휴전선 철책이 오버랩 되는 통쾌한 환상을 우물거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뒤통수 붉은 악마의 입에서 태양계의 대폭발이 일어날 것만 같은 위기감에 몸을 움츠렸고, 체육관 안은 개기일식이 지나가길 기다리듯 괴괴했다. 잠시 후 먼저 정신을 차린 심판이 점수판의 숫자를 바꿨고, 노란 유니폼의 아이들과 코치가 환호하고, 응원석의 부모들과 상대편 선수들까지 박수를 치며 환호했지만, 내 등 뒤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새뮤얼 역시 입을 꼭 다문 채 터질 듯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제 앞의 무엇을 뚫어져라 노려보고만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체육관을 나갈 때 누군가 남자에게 참으로 멋진 슛이었다고 칭찬의 말을 건넸지만 남자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마침내 코치가 악수를 청했을 때에야 나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남자는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대신하려는 듯 커다란 동작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탱큐, 탱큐만 연발하고 있었다. 녹슨 쇠판 사이를 가까스로 새어나가는 바람같이 거칠고 힘없는 목소리였고, 무언가 쉬이 소화되지 않는 것을 되새김질 하려고 애쓰는 늙고 지친 황소의 모습이었다.
우리 편이 이겼다고 깡충거리는 아이를 자동차에 태울 때 주차장 저편으로 말없이 걸어가는 새뮤얼 부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후 두 번의 경기와 뒤풀이 모임이 있었지만 그들 부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날 남자의 아이가 힘껏 걷어찬 것이 공만은 아니었던 게라고, 그날 그들은 나란히, 공이 날아가 박힌 골대 저편, 어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넘어갔던 게라고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김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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