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SF서 7이닝 7안타2볼넷8삼진 5실점
4회말 5실점에 6이닝 ‘고요한 호투’ 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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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고교시절 대만전 자진강판 사건으로 한국협회서 영구제명
2006년 미국시민권 취득으로 병역기피 비판 등 모진 진통 겪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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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차승. 1980년 5월29일 부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했다. 대개들 그렇듯이 소년 백차승의 흥미와 주변의 권유로 재미 반 욕심 반 시작한 것이었다. 야구와의 운명적 만남의 그의 몸과 마음에 감춰진 야구DNA를 춤추게 했다. 제 자신도 잘 몰랐던 재능이 활개를 폈다. 덩달아 야망도 날개를 폈다.
부산고 1학년 때(1996년) 봉황기에서 우수투수상을 받고 3학년 때(1998년) 부산고를 화랑기 결승에 올려놓은(준우승) 그는 메이저리거의 꿈을 안고 미국행을 택했다. 시애틀 매리너스와 입단계약(129만달러)을 맺었다.
백차승의 열망만으로 되는 건 물론 아니었다. 온갖 것을 다 따져본 매리너스의 스카웃 전문가들이 될성싶은 떡잎이라고 점찍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입단계약을 위한 신체검사에서 오른손 투수인 그의 오른쪽 팔꿈치 인대에 문제가 발견됐는데도 매리너스가 그에게 계약서를 내밀었다는 것도 ‘백차승 가능성’을 어지간히 높이 평가했음을 반증한다.
날아갈 듯한 백차승의 어깨쭉지를 붙든 올가미가 있었다. 비자문제 등 때문에 그는 이듬해(1999년) 6월에야 매리너스의 마이너리그팀에 몸담을 수 있었다. 담금질의 기간은 길었다. 4년여 각고 끝에 2004년 잠깐 메이저 마운드에 섰지만 곧 마이너행. 2년을 더 닦고 조이고 기름친 뒤에야 메이저 언덕을 다시 밟을 수 있었다.
관중의 환호도 언론의 조명도 외진 마이너 필드에서 7년, 그것은 청운의 꿈을 안고 날아온 백차승에게 꿈을 지피는 숙련의 시기이면서 동시에 고행의 나날이었다. 팔꿈치 인대 접합수술을 받을 때는 아마도 메이저 드림은 고사하고 팔이 어떻게 되지 않나 불길한 예감에 불면의 밤을 보낸 적도 많았을 것이다.
그를 짓누른 진짜 시련, 숙명적 원죄 같은 가위눌림이 또 있었다. 그것은 그가 고3 때인 1998년 9월12일 생긴 일로 비롯됐다.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야구 선수권대회 준결승전 대만과의 경기. 선발투수로 등판한 백차승은 팔꿈치 통증을 호소하며 강판을 자청했다. 감독은 1루를 맡으라고 했다. 앞서 일본전에서도 안티프라민을 발라가며 통증피칭을 했던 그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덕아웃으로 물러났다. 한국은 역전패를 당했다.
문제가 터졌다. 이런저런 소문이 돌더니 급기야 어느 스포츠은 백차승이 메이저리그에 가려고 꾀병을 부린 듯이 썼다. 백차승의 아버지가 일본에 가 던지지 말라고 했다는, 남들 듣기에 열받기 딱좋을 소문까지 덧붙였다. 대한야구협회도 열을 받았다. 상벌위원회를 열어 백차승을 심판대에 올렸다. 그 신문을 들이대며 따졌다. 백차승은 펄쩍 뛰었다. 야구협회는 그를 영구제명했다. (이와 관련해 백차승은 2006년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아버지는 일본에 오질 않았고 나에게 던지라 말라 말한 적이 없었다고 강변했지만 그분들은 내 말보다 그 기사를 더 믿는 눈치였다고 술회했다.
영구제명은 국가대표는 고사하고 한국 야구판 어디든 그가 발붙일 곳이 없다는 뜻이었다. 국가대표가 되지 못하면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같은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 병역특례를 받을 근처에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백차승은 더더욱 메이저리그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기나긴 담금질 그리고 기다림 끝에 메이저 마운드에 다시 오른 2006년 4월, 그는 미국 시민권자가 됐다. 혼인에 의한 귀화였다. 한국 언론이나 야구계는, 혹은 그 일각은 백차승을 야멸차게 대했다. 병역기피용 시민권취득이라는 것이었다. 영구제명된 상태에서 그는 이제 매국노니 배신자니 하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그해 가을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야구를 위해 시민권을 취득할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절규하듯 호소하듯 이렇게 말했다.
이 얘기만 하겠다. 내가 미국 시민권을 딸 때 나 말고도 미국시민권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70-80명 정도 됐다. 그들은 시민권을 받아 들고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했는데 난 가슴으로 울었다. 오랜 고민 끝에 선택한 길이었지만 막상 미국 시민권자가 된다는 게 정말 너무 고통스러웠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야구를 할 필요가 있을까 갈등이 있었지만 7년동안 젊음을 바친 미국 무대에서 꼭 성공하고 싶었고 주어진 기회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곡절속에 야구인생을 이어온 그는 한국 나이로 어느덧 서른이다. 소년티 물씬 10년 전 사진으로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건장한 청년(6피트4인치/225파운드)이 됐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 풀타임 메이저리거다. 올해 전반기 도중에 매리너스에서 샌디에고 파드레스로 옮긴 뒤 붙박이 선발투수로 자리잡고 있다.
그가 지난 22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이언츠를 상대로 선발피칭을 했다. 결과는 졌다. 7이닝동안 7안타를 맞고 2볼넷을 내주며 5실점했다. 실점도 두둑했지만 삼진도 두둑했다(8삼진). 시즌 5승에 도전했다 8패를 안고 물러선 백차승의 SF 출격은 4회말 한이닝 삐끗으로 전후 6이닝동안의 ‘고요한 호투’가 빛을 바랬다. 첫 타자 이매뉴얼 버리스와의 승부에서 중전안타, 두 번째 프레드 루이스에게 바가지 2루타. 코너에 몰린 백차승은 다음타자 벤지 몰리나에게 약간 높은 초구를 던졌으나 몰리나는 기다렸다는 듯 휘갈려 중견수 뒤 펜스 앞 워닝트랙에 떨어지는 2타점 적시타를 쳤다.
백차승은 그래도 큰 동요를 보이지는 않았다. 거의 무표정에 가까운 안색에다 느릿한 투구동작에는 별 변함이 없었다. 까다로운 다음 타자 애런 로왠드를 삼진으로 잡아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겁 없는 신인 3루수 파블로 샌도발과의 승부에서 또 중전안타를 내줬다. 실투가 아니었다. 스트라익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공을 샌도발이 가볍게 잘 걷어낸 것이었다. 다음 타자 역시 새얼굴 1루수 트래비스 이시카와. 백차승은 역시 안에서 바깥으로 휘어지는 까다로운 구질의 공을 던졌으나 이사카와의 방망이는 힘차고 매서웠다. 좌월 3점홈런.
4회에만 5안타 5실점, 그것으로 승부는 결판났다. 나머지 6이닝동안에는 2안타 0실점이었으니 4회말의 생채기가 얼마나 컸는지 대비된다. 게다가 백차승과 피칭 맞대결을 펼친 자이언츠의 선발투수는 사이이영상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팀 린시컴. 그는 이날도 변함없이 펄펄 날았다. 8이닝 0실점(4안타 3볼넷 8삼진)으로 파드레스의 점수욕심을 야무지게 분쇄했다. 메이저리그 삼진왕 레이스 1위인 그는 이날 8삼진을 보태 200삼진 고지에 오르며 시즌 14승(3패)을 거뒀다. 백차승이 4회에 5점을 내줬는데도 강판당하지 않고 7회까지 던졌다는 건 파드레스의 불펜투수진 여의치 않은 면도 있지만 백차승에 대한 코칭스탭의 크레딧이 단순기록(4승9패, 방어율 5.08, 79삼진) 이상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패스트볼 구속은 90마일 초반대로 그리 빠르지 않았으나 투심과 포심 패스트볼의 로케이션이 예리했고, 타자의 몸쪽에 붙이는 커브나 바깥으로 휘는 슬라이더 등 구질이 다양하고 낙차가 커 보였다. 특히 4회말 된서리에도 불구하고 전혀 동요되지 않고 5회부터 7회까지 처음처럼 고요하게 호투를 이어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자이언츠는 배리 지토가 선발로 투입된 23일 경기에서는 4대3으로 승리했다. 이 경기에서 지토는 올해들어 두 번째로 8이닝을 던지며 올해들어 처음으로 2연속 선발승(8승15패)을 거뒀다. 자이언츠는 일요일(24일) 승부에서도 7대4로 승리했다. 자이언츠의 선발투수 케빈 코레이아는 28번째 생일인 이날 초반 2점을 내줬으나 배터리짝꿍 벤지 몰리나가 홈런 포함 5타점을 몰아주는 등 맹타 덕분에 승리를 올렸다. 자이언츠는 주말 3연전 싹쓸이에도 58승72패, 파드레스는 더욱 심한 48승82패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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