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무더웠던 이 여름을 뒤로, 도대체 물 하나만 붓고 지어도 이를 데 없이 맛있는 스시의 생명인 쌀밥을 위해 캘리포니아 넓은 평야에 심은 벼는 이제 우유 빛 배아가 단단한 곡식으로 여물어가며 석양빛을 향해 감사의 고개를 숙이기 시작할 때이고, 제철을 맞는 기름진 고등어가 식욕을 돋구어주고, Sea Bass가 맛있고, 하마치(방어)의 농후해지는 맛이 우리 스시바 최고의 횟감으로 등장하는 때이다.
한편 한국의 남쪽 바다는 금어기가 끝나기 무섭게 충무와 삼천포를 떠난 멸치잡이 선단이 매물도 서편의 황금어장에 진을 치고는 그 넓은 바다가 좁을세라 서로 비껴가면서 부지런히 그물질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작은 생선, 멸치 떼가 한 무리 통째로 빨려 들어간 듯 한 그물 가득 채워져 작업선 가마솥에 부어질 때면 간판 한구석에서는 멸치 행렬에 잘못 끼어들었다가 졸지에 생포된 가오리, 아지, 병어 따위가 이미 화장(배의 조리사) 손에 의해 두덕두덕 썰어져 출출해진 어부들의 새참거리로 내어지는데, 된장 양념에 찍어 먹는 이 회야말로 우리 스시바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자연산이며, ‘신토불이’인 것이다. 이때 멸치국도 곁들여 내는데 국물 맛을 우려내는 조미 역할의 멸치가 아니라 그야말로 ‘멸치 생선국’인데 조미료(MSG)를 안 쓰고도 ?어쩌면 천연 조미료를 엄청 많이 넣었다고 해야 옳은 것인가- 그 국맛이 고급 일식집 장국만큼이나 달고도 구수한 것이다. 천연 조미료….
오래 전 일본에서 ‘사서는 안 되는 것들’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는데, 식품, 음료, 화장품, 약, 세제 등 100가지 중에 아지노모노(味元-MSG)와 혼(本)다시가 끼어있어 비난의 대상이 되었었다. 헌데 그 다음에 잇달아 출간된 ‘사서는 안 되는 것들, 책을 사서는 안 된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로 등장하면서 피차 1대 1의 공방이 시작되었다. 전자는 MSG는 석유합성법으로 만들어진 화학조미료로서 두통을 유발하는 등 몇 개의 예를 들며 인체에 해가 됨을 강조했으며 혼다시는 가쓰오부시(가다랭이 후레이크)를 만들고 난 폐유로 만든 산업 찌꺼기이며, 그러고도 겉포장엔 싱싱한 가쓰오 생선을 그려 넣어 소비자들에게 마치 살아있는 생선을 재료로 써서 만든 조미료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킨다며 혼(진짜)다시가 아니라 가짜 다시라고 공격을 했다. 반격에 나선 후자는 MSG는 주로 사탕수수에서 뽑아낸 당밀이나 전분의 원료에서 된장, 간장, 맥주처럼 발효 방식으로 제조되었으며, MSG는 모유, 우유, 쌀, 콩 등에도 들어있는 천연 성분이라 반박했다. 또 미국 식품 위생국(FDA)에서도 그 안정성이 인정됐다고 강하게 주장을 했다. 또한 혼다시는 고대부터 생선이나 조개 등을 쪄서 조미료를 만들었던 방식처럼 가쓰오부시를 만들고 난 파치를 증기 살균, 건조해 분쇄시켜 MSG 등과 혼합해 만들어 인체에 해가 없음을 강조했다. 결국 이 끝없는 논란은 지금도 소비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으며, 오늘도 어느 식당은 ‘NO MSG’라는 구호를 내 걸만치 민감한 사항인 것이다.
올 봄, 미 식품위생국이 스시의 핵인 ‘참치’의 중금속 오염 정도가 위험수위를 넘었다고 신문지상에 발표해 우리 스시바 분위기를 온통 쑥덕거려 놓아 그 후속조치가 과연 어떨까 싶었는데 얼마 전에 스시 칼라사진까지 넣어진, 우리 스시바에만 해당이 되는 위생국 공문이 하달되었다.
먼저 스시 밥의 취급요령을 일러주고, 생선은 충(蟲)이 많으므로 반드시 얼려서 쓰도록 했으며, 그 외 소소한 일반 사항이 몇 개 더 있었고, 드디어 여기에 예외 조항을 두었는데, 만인이 즐겨먹는 참치, 그 중에서도 참치의 부위별 맛과 색상이 최상급에 속하는, Yellow Fin Tuna, Blue Fin Tuna, Bigeye Tuna는 충이 그렇게 위험치 않으니 냉동시키지 않고 신선한 채로 먹어도 좋다 라고 기술했다. 이 얼마나 관대한조치이더냐! 중금속 중독 얘기는 일언반구도 없음은 물론 잡는 사람도, 우리 스시바도, 이를 즐겨먹는 사람, 어느 한쪽도 상처를 입히지 않는 참으로 현명한 조치가 아니겠는가.
이는 일본 스시 문화의 벽이 높아서가 아니라 이 지구상에서 ‘먹이 사슬’에 얽힌 동식물치고 의학적으로 유해 여부가 불투명할지언정 중금속을 몸에 담지 않은 ‘천연의 것’이 없음을 동감해주는 공정한 조치가 아닌가 싶었다. 유독 참치의 중금속유해성만 가지고 물고 늘어지는 게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라고 여기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대신 날 생선은 충이 많아 인체에 해로울 수 있다는 경고 문구를 손님들 눈에 띄게 걸어놓도록 권장을 했다. 먹는 사람이 알아서 먹기를 바라는 착잡한 마음일 것이다. 우리 스시바 단골손님 ‘T’는 그야말로 스시 매니아이다. 특히 기름진 하마치와 고등어를 즐겨먹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익은 생선만으로 스시를 빚어 달랜다. 우리는 안다. 그녀가 임신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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