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토 7이닝 무실점 호투, 로왠드 로버츠 공격활발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온갖 기록이 다 있다. 승패는 너무 기본이라 기록 축에도 들기 어렵다. 투수 입장에서만 보더라도 낮 경기 따로 밤 경기 따로, 왼손 타자 따로 오른손 타자 따로, 초구를 스트라익을 넣었을 때 따로 볼이었을 때 따로, 노아웃이냐 원아웃이냐 투아웃이냐에 따라, 주자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홈구장이냐 원정지냐에 따라, 자기편이 선취점을 냈을 때 따로 상대편에 선취점을 내줬을 때 따로, 자기편이 몇점을 내줬으냐 몇점차로 앞서느냐 몇점차로 처졌느냐에 따라 천차만별 기록이 등장한다.
야구가 한국에 전래된 시기와 경위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그러나 야구 용어가 일본에서 마름질돼 한국에서 거의 그대로 쓰여지게 된 것은 분명하다. 본격적인 야구전래 시기(일제시대)가 시기였던지 용어에는 어딘지 군국주의 냄새가 묻어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안타(安打, 명중타)를 치고 누상(樓上, 전진기지)에 주자(走者)가 나가 견제(牽制)를 틈타 도루(盜壘, 상대편 토치카 침투)를 하다 협살(挾殺)을 당해 횡사(橫死)하는 등등 별 생각없이 쓰면 그저그런 야구용어인 듯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땅따먹기(기지점령) 전쟁놀이 용어가 수두룩하다.
전달 과정에서 일본식으로 변형된 것도 있다. TV나 라디오의 실황중계에 의존하는 평범한 야구팬들이 미국에 와서 흔히 겪는 초기혼선이 볼과 스트라익의 순서다. 한국에서는 스트라익이 먼저 나오는데 미국에서는 볼을 먼저 헤아리니 헷갈리기 쉽다. 한국에서도 요즘엔 거의 사라졌지만 포볼(walk)이니 데드볼(hit by pitch) 따위 국적불명 용어들도 본토야구 따라잡기의 첫머리에서 어지간히 애먹이는 요소들이다. 용어랄 수조차 없을 만큼 쉬운 말이지만 경기스케줄 운용방식이 다른 탓에 거의 전달이 되지 않아 그것을 이해하는 데 다소나마 시간이 걸리게 하는 것도 있다.
시리즈도 그중 하나다. 물론 포스트시즌이 되면 디비전 챔피언십 시리즈니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니 월드시리즈니 자주 등장하는 용어다. 정규시즌에는 거의 쓰이지 않을까. 아니다. 숱하게 쓰인다. 3연전, 4연전 하는 것이 다 하나의 시리즈다. 예컨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애틀랜타에서 브레이브스에서 4연전을 가진 것도 하나의 시리즈요, 오클랜드 A’s가 홈구장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3연전을 가진 것도 하나의 시리즈다. 시리즈는 통상 3연전이 기본이지만 연중 스케줄 소화를 위해 간간이 4연전 시리즈가 섞여 있다. 자이언츠가 애틀랜타 시리즈에서 승리했다는 것은 자이언츠가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브레이브스와의 3연전 혹은 4연전에서 2승1패 이상 혹은 3승1패 이상 거뒀다는 뜻이다.
한국에서는 1982년에 연중리그 방식의 프로야구가 도입되기 이전까지는 실업연맹전이니 대통령배니 하는 특정 타이틀을 걸고 단기간 승부를 벌였으므로 홈 3연전이니 원정 4연전이니 하는 시리즈 자체가 필요 없었다. 때문에 시리즈란 용어도 아주 제한적인 뜻으로 쓰이게 됐다. 그러다보니 미국야구 기사에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애틀랜타 4연전 시리즈, 오클랜드 3연전 시리즈 등을 전후 설명없이 그대로 옮겼다간 포스트시즌의 어떤 타이틀 시리즈와 혼동을 주기 쉽다.
18일 오후 애틀랜타에서 벌어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경기는 기록과 용어의 측면에서도 쏠쏠한 공부거리를 준 한판이었다. 이 경기는 자이언츠 입장에서 보면 ‘자이언츠의 애틀랜타 4연전 시리즈 중 4차전’이었다. 결과는 자이언츠는 5대0 승리. 자이언츠는 이날 승리로 시즌 53승71패, 브레이브스는 56승69패가 됐다.
자이언츠는 이번 원정시리즈에서 3승1패를 거뒀다. 자이언츠가 애틀랜타 원정시리즈에서 승리한 것(즉 승리가 패배보다 많았던 경우)은 1993년 이후 15년만에 처음이다. 브레이브스가 지금은 죽을 쑤고 있지만 과거 십수년동안 내셔널리그에서 월드시리즈로 가는 길은 애틀랜타로 통한다는 말이 붙을 정도로 강팀이었던 까닭에 그들의 홈구장에서 방문팀이 시리즈를 따낸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웠던 것이다.
18일 애틀랜타 승부의 승리투수는 배리 지토였다. 봄부터 초여름까지 죽만 쑤다 겨우 살아나 냉탕온탕을 오락가락해온 이 좌완에이스는 시속 70마일 전후 주무기 변화구가 모처럼 춤을 추자 시속 90마일 안팎 ‘빠르지 않은’ 패스트볼까지 위력을 더하면서 7이닝동안 산발 5안타에 2볼넷을 내주고 3삼진을 낚으면 0실점으로 틀어막았다. 변화구는 지토의 전매특허. 그러나 그것은 80마일 초중반대 체인지업과 공생관계다. 체인지업이 밋밋하면 변화구도 먹히지 않는다. 둘이 먹히지 않으면 지토의 패스트볼은 그저 구워먹기 딱 좋은 연습피칭이나 다름없다. 결국 지토피칭의 삼발이 혹은 삼각대, 즉 중간치기 체인지업과 느릿한 변화구와 느린 변화구 덕분에 빠르게 느껴지는 패스트볼은 상즉상입(相卽相入) 서로 의존하는 공동운명체인 것이다.
지토의 호투는 그러나 승리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아무리 잘 던져도 자기편 방망이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한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실은 지토는 제 스스로 오랜 슬럼프에 헤매기도 했지만 지지리 방망이복도 없었다. 그런데 이날은 타력엄호도 비교적 두둑히 받았다. 그것도 잔뜩 애간장을 태운 뒤가 아니라 1회초 첫 득점사냥에서 3점을 노획, 1회말 마운드로 향하는 지토의 어깨를 일찌감치 가볍게 해줬다.
공격선봉은 노장 데이브 로버츠였다. 선두타자 로버츠는 들어단짝 우익수쪽 펜스까지 굴러가는 깊숙한 3루타로 단숨에 득점고지 9부능선에 다다른 뒤 애런 로왠드의 좌익수쪽 희생플라이를 틈타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로왠드 앞 이반 오초아는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했다. 로왠드 뒤 트래비스 이시카와가 우전안타로 오초아를 3루까지 전진시킨 뒤 2루 도루 성공. 이어 리치 어릴리야가 다시 우전 적시타로 오초아는 홈으로, 이시카와는 3루로. 연일 계속된 격무에 지친 벤지 몰리나가 덕아웃에서 쉬는 대신 포수로 기용된 베네수엘라 출신 신인 파블로 샌도발이 중견수쪽으로 안타를 날리자 이시카와가 홈으로 질주, 3점째 발도장을 찍었다.
첫 타점의 사나이 로왠드는 6회초 왼쪽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을 쳐 쐐기를 박았다. 첫 득점의 사나이 로버츠는 7회초 마지막 득점 때 일정부분 기여했다. 1사 2, 3루에서 볼넷을 골라 만루가 됐다. 베이스를 채워놓고 병살을 노리려는 브레이브스의 작전이기도 했다. 그러나 1루주자 지토와 2루주자 버리스는 베이스에서 서너걸음 벗어나 상대 배터리의 신경을 건드리다 결국 포수 매캔의 2루악송구를 유발, 3루주자 버리스의 5번째 득점이 가능하게 했다.
지토가 마운드에 있을 때 자이언츠 방망이가 다수확을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1점 이상 못낸 것이 무려 24차례였다. 방망이복 얇은 지토는 이날 승리로 4점 이상 타선지원을 받은 경기의 승율이 거의 100%(97승5패)에 가깝다. 자이언츠로 이적한 지난해부터의 기록만 따져도 12승1패다. 지토에 이어 마운드에 오른 케이치 야부와 서지오 로모도 8회와 9회 한이닝씩 맡아 무안타 무실점으로 소임을 완수했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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