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 선거전이 본격적으로 가열되는 것은 보통 노동절 연휴에서 돌아오는 9월이 시작되면서다. ‘확실한 선두주자’가 있을 경우 가시화되는 것은 그러므로 8월 중순 , 여름의 끝이 보일 무렵이다. 그런데 확실한 선두주자로 당연시되어온 오바마의 지지율이 아직도 50%를 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의 속내가 타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 다양하게 분석되는 원인 중 하나가 힐러리 지지자들이다. 오바마를 향한 상당수의 시선은 전당대회를 눈앞에 두고도 여전히 뜨악하다 . 민주당 표밭의 절대지지는 물론 공화당 일부까지 떠안아야 안심할 상황인데 내부에서 다른 쪽을 바라보는 반란표가 적지 않은 것이다.
지난 주말 발표된 민주당 정강정책안은 이처럼 다급해진 민주당 지도부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 힐러리를 향해 내미는 화해의 손짓이 역력하다. 경선에서 1,800만표를 획득한 힐러리의 역량을 재확인해주듯 “민주당은 경선을 통해 유리천장에 1,800만개의 균열을 가게했다”는 찬사를 여성권리 신장을 다짐하는 내용에 포함시켰다.
보다 중요한, 실질적 배려는 ‘전국민 의료보험(universal health care) 추진’이다. “민주당은 단합하여 모든 미국인에게 적절한 가격의 포괄적 의료보험을 제공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25일부터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확정될 정강정책안에 주요사안으로 부각된 것이다.
헬스케어는 힐러리가 경선 내내 가장 목청을 높이며 강조했던 핵심공약이었다. 대동소이한 오바마와 힐러리의 국내공약 중 그나마 뚜렷한 차이를 보였던 이슈였다. 헬스케어는 또 본선에서도 오바마와 매케인이 확실하게 대조를 보이는 이슈 중 하나이기도 하다.
현재 미국의 의료보험제도에 시급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과 이념을 초월해 누구나가 동의하고 있는 사실이다. 급증하는 두 가지를 잡아야 한다. 4,700만명에 달하는 무보험자와 연 2조달러를 넘어 해마다 치솟는 의료비다.
만약 존 매케인이 대통령이 되어 공약대로 취임 첫날부터 의료보험개혁에 착수하여 자신의 플랜을 실현시킨다면 미국인들은 개별적으로 보험에 가입해야 할 것이다 . 직장 의료보험은 점차 사라지는 대신 가입자에겐 세금환불 혜택이 주어질 것이다 . 가족은 5,000달러까지, 개인은 2,500달러까지다 . 지금까지 세금혜택을 못 받던 개별 가입자도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보험 선택에 따라 세금혜택 액수가 좌우되니 현재 같은 보험 남용에 따른 의료비 상승도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개별적 보험 샤핑엔 모험이 따르고 현실적으로 무보험자 감소에 별 도움을 못 준채 중산층이 의존해온 직장보험만 없어지게 할 뿐 아니라 병력에 의거한 가입거부가 속출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요즘 한창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는 존 에드워즈의 부인 엘리자베스는 암환자다. 그가 매케인의 개혁안에 대해 이렇게 말했었다. “당신의 개혁안이 시행된다면 당신도, 나도 보험가입을 못할 거예요” 매케인도 암 병력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헬스케어 개혁의 핵심단어는 ‘유니버설 케어’다. 전국민 의료보험을 전제로 한다. 의료비 줄이기보다는 무보험자 없애기에 중점을 둔 플랜이다 . 직장을 통한 보험과 함께 정부를 통한 보험 가입의 길도 열어놓고 빈곤층은 아니라도 형편이 안되는 저소득층에게까지 정부보조로 보험가입을 가능케 하는 안이다 . 무보험자는 확실하게 줄어들지만 막대한 예산을 필요로 한다 .
오바마안과 힐러리안의 차이는 강제성이다 . 힐러리는 모든 사람의 ‘의무적’ 보험가입을 주장했고 오바마는 18세까지만 의무적으로 가입시키고 성인에겐 선택권을 주자면서 약간 희석시켰다. 민주당내 여론은 힐러리안 지지가 높지만 이번 민주당 정강정책안의 구절은 두 안의 경계선 언저리에서 멈추어 있다 . ‘모든 미국인’은 명시했으나 ‘의무적’이라는 단어는 피해 갔다.
미국에는 가장 시급하게 개혁을 필요로 하면서도 정치와 이념과 이해상관의 교착상태에 빠져 불합리한 현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두 가지 난제가 있다. 이민과 헬스케어다. 민주당 정강정책안에도 ‘전국민 의료보험 추진’과 함께 ‘강력하고 실용적이며, 인간적인 이민개혁 착수’라는 사안이 올라있는 것이 보인다. 지난 2년여 그토록 기대를 걸었던 포괄적 이민개혁안이 결국 사장된 것을 기억한다면 헬스케어 개혁 또한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은 각오해야 한다.
상당수 헬스케어 전문가들이 원하는 개혁은 힐러리안 보다도 한발 더 나아간 국가운영 전국민 의료보험이다. 쉽게 말해 현재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제공되는 메디케어를 전 국민에게 확대 시행하자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막대한 재정에 얽힌 각 업계의 이해상충도 치열할 것이고 ‘개인주의’ 미국에 ‘사회주의화된 의료제도’라니 , 하는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론의 지지는 높은 편이다. 기본건강은 국가가 보장해 줄 테니까.
13일자 뉴욕타임스에는 의료보험 때문에 결혼이나 이혼을 서두르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 신장수술을 받아야하는 한 여성은 만나지 얼마 안 된 , 그러나 ‘든든한 의료보험’을 가진 남성과 급하게 결혼을 서둘렀고 이혼에 합의한 한 부부는 아내의 유방암 진단이 내린 후 보험 때문에 어정쩡한 별거를 계속하고 있다. 더 기막힌 사연은 간이식이 필요한 아내가 정부보조 저소득 보험에 가입하기위해선 이혼해야할 상황에 처한 부부다 . 이혼을 하거나 아내를 죽게 방치하거나 처참한 선택을 강요받은 남편은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이 나라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겁니까?”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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