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음 주에 한국 가.”
박경수는 저녁을 먹다 아내 지애한테 이야기한다.
“한국은 왜요?”
“왜 회사에서 수출한 기계 설명하려 간다고.”
“며칠이나요?”
“글쎄, 이주라고 하는데 가봐야 알 것 같아.”
“언제 떠나는데요?”
“금요일 낮 비행기니까 준비 좀 해줘.”
지애는 무슨 말을 할 듯이 경수의 눈치를 살피며 젓가락으로 콩나물을 집어먹는다.
경수는 오 년 전 결혼하러 한국 나갔다 시간이 없어 오규석과 약속을 못 지키고 그냥 들어온 일이 있다. 시간이 없었다기보다 신부를 호텔 방에 혼자 두고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경수는 신혼 살림이 정리되는 대로 다시 한국에 오겠다고 친구와 약속을 했다. 생활이 생각처럼 안 돼 아직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 생산한 의료기구 컴퓨터를 한국에 수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물건이 도착되면 여기 기술진이 가서 기계 설명을 해야 한다는 말도 들었다. 경수는 이번 기회에 한국에 꼭 가고 싶었다. 회사에는 한국 엔지니어가 세 사람이 있다.
그들은 여러 면으로 경수보다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런 조건에 뒤떨어지는 경수가 기대를 가지는 것은 조립에 참여했다는 것에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경수가 한국으로 출발하는 날 아침을 먹을 때 지애가 말을 하였다.
“여보. 한국 가면 남해로 아버지를 한번 찾아봐요.”
경수는 커피를 마시다 지애를 쳐다본다.
“남해 상주리까지? 삼일은 잡아야 할 텐데. 한번 시간을 만들어볼게.”
“전화 할 때마다 박 서방 한번 안 나오나 하셨는데.”
“가보기는 가봐야 하는데, 거리도 멀고 차편도 불편하고, 하여튼 가서 보고.”
지애는 토스트를 만지작거리다 고개를 들고 경수를 빤히 쳐다본다.
“전 이번에 같이 가자고 할 줄 알았어요. 늦게 본 외동 딸 시집 보내놓고 보고싶어 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
“미안해. 가을에 휴가 얻어 같이 가도록 해, 그러면 장인 어른도 더 좋아 할거야.”
경수가 한국에 도착하자 쉴 시간도 없이 스케줄이 꽉 짜여 있었다. 아무리 손님이 왕이라고 하지만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온 사람한테 숨 쉴 시간은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국 기술진들한테 기계에 관한 설명부터 했다. 저녁엔 조촐한 환영 만찬이 있었다. 일주일간 눈코 뜰 새 없이 강행군을 하였다. 기계를 분해하면서 설명하고, 조립하면서 다시 설명을 해주었다. 기계가 세밀하고 한번 말썽을 일으키면 많은 손해가 온다. 그러니 인수하는 쪽에선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자세히 알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그러나 몇 년간 연구하고 조립한 것을 며칠 간 설명한다는 것은 수박 겉 핥기 식이었다. 하루 쉬고 인수자들이 기계를 작동할 때는 옆에서 지켜봐 주기로 했다.
경수는 몸도 마음도 피곤해 아침과 점심을 거르고 잠만 잤다. 경수는 오후 늦게 일어났다. 호텔 한국 음식은 외국인들은 좋아했지만 경수의 입맛에는 아니었다. 경수는 피곤할 때 얼큰한 생선 찌개를 먹으면 피곤이 확 풀리는 체질이다. 가까운 식당으로 들어가 민어 찌개와 소주 한잔을 하고 돌아왔다.
다음날 경수는 다른 동료와 함께 회사로 갔다. 경수가 직접 일할 때와는 다르게 시간이 지루하였다. 경수는 같이 온 동료한테 언제쯤 일이 끝나느냐고 물었다. 그도 모르겠다고 하였다. 경수는 한국에 도착하면서 일의 진행이 궁금하였다. 일의 일정을 알아야 오규석한테 전화를 할 수 있다. 그런 초조한 시간 속에서 금요일 오후가 되었다. 커피 타임을 하고 있는데 인솔자가 왔다. 오늘 오후 일 끝내고 토요일 회사에서 준비한 파티에 참석하고 일요일 떠난다고 했다. 다들 좋다고 환호했다. 경수의 자유시간은 오늘 일 끝나는 시간부터 내일 파티가 시작되는 오후 여섯시까지였다. 다들 퇴근해 가족들한테 줄 선물을 쇼핑하겠다고 하였다. 경수는 지애한테 무엇을 사줄까 생각했다.
경수는 호텔로 돌아와 오규석한테 먼저 전화를 했다.
“야, 너 오래 간만이다. 그런데 잠 안자고 전화를 다하고 웬 일이니?”
“나 지금 서울에 와 있어.”
“뭐? 언제 왔는데?”
“이주되었는데 일요일 돌아가야 해.”
“그런데 이제 전화하는 거야?”
“미안하다. 회사 일로 와 시간이 없었어. 그런데 내일 낮 시간 어때?”
“야, 잘되었다. 너 필동이 알지? 그 친구와 약속이 있는데.”
“무슨 약속인데?”
“마석이란 곳인데 아주 끝내주는 곳이야. 전에는 시간이 없어 못 갔잖아.”
“그래, 그래서 전화했어.”
경수는 전화를 끊고 두 손을 불끈 쥐고 높이 쳐들었다. 이제야 그동안 갈망하던 일을 성취할 수 있구나 하는 만족감 같아 보였다.
세 사람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그래 아이는 몇이고?”
규석이 경수한테 물었다.
“아직 없다.”
“그럼 잘 왔네. 이제 마른 장작에 불붙이기다.”
“필동이 이 자식 이것 먹고 달덩이 같은 아들 낳아 잔아.”
규석이 옆에서 한마디했다. 필동이 의미 있는 웃음을 지었다. 경수도 속으로 ‘그럼 나에게도 그런 좋은 일이 있겠지.’하고 생각한다. 경수가 미국생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음식이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육탕과 고기 두 접시가 나왔다. 깻잎, 양파, 들깨 가루의 구수한 냄새가 입맛을 당겼다. 경수는 그동안 쌓인 피로가 녹아 내리는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아주 맛있게 먹는다. 고기를 먹고 난 경수의 얼굴색이
2.잘 익어 가는 딸기 빛으로 변하고 있다.
“뭐, 장인이 돌아가셨다고?”
경수 뒤에 앉은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차, 깡박 했네. 장인 만나겠다고 아내와 약속했는데 내일에만 신경 써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네. 그렇지만 내 몸보신하는 것이 먼저지 뭐.’하면서 경수는 깻잎과 양파 위에 고기 한 점을 싸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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