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골 부상 한판패… 통한의 눈물
■ 유도 73kg급 왕기춘
“기춘아, 고개 떨구지 마라”
비록 기대했던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이지만 정말 잘 싸웠다.
1년이 넘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제치고 국가대표에 선발, 금메달 기대를 한껏 부풀렸던 남자유도 73kg급의 왕기춘(20·용인대)은 레안드로 길레이로(브라질)와의 8강전에서 당한 뜻하지 않은 갈비뼈 부상을 극복하지 못하고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왕기춘은 유럽 최강 엘누르 맘마들리(아제르바이잔)와의 결승전에서 경기 시작 13초만에 들어 메치기를 허용, 한판 패를 허용하고 말았다. 왕기춘은 맘마들리가 오른발을 잡는 순간 통증이 느껴지는 듯 뒤로 물러섰고 맘마들리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왕기춘을 들어 메쳤다.
예상치 못한 기습 공격을 당한 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왕기춘은 심판의 매정한 ‘잇폰’(한판) 선언에 한국 응원단과 안병근 감독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하지만 퇴장하기 전 울음보가 터졌다. “마지막에 조금 부족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특히 가족에게는…” 관중석에서 응원하던 왕기춘의 아버지 왕태연씨의 눈가에도 ‘이슬’이 맺혔다.
아쉬운 점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심판의 판정이다. 안병근 감독은 왕기춘이 넘어가면서 주심이 한판을 선언하자 팔을 내저으며 판정에 항의의 뜻을 나타냈고 조용철 전무도 경기가 끝난 뒤 “완전히 넘어가지 않고 옆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한판으로 보기 어려웠는데도 심판이 한판으로 선언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용인대 7년 후배에게 올림픽 출전권을 ‘양보’하고 경기를 중계하던 이원희는 “기춘이가 잘했는데 정말 아쉽다. 이제 스무살이다. 고개를 떨굴 필요가 없다”며 왕기춘을 격려했다. <정대용 기자>
남자유도 73kg 급에서 아제르바이잔의 엘누르 맘마들리에게 한판패로 져 아쉽게 은메달에 머문 왕기춘이 시상식 도중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연합>
여자 펜싱 첫메달 슬픔이여 안녕
■ 플뢰레 남현희
금메달보다 값진 은메달이었다.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성형파문’ 얘기도 쑥 들어갔다.
한국 여자 펜싱의 간판 남현희(27·서울시청)가 여자 펜싱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땄다.
남현희는 11일 베이징 올림픽 그린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플뢰레 개인전 결승전에서 이탈리아의 발렌티나 베잘리를 만나 4초를 남기고 통한의 유효타를 허용하며 5-6으로 져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현희는 2000년 시드니 대회와 2004년 아테네 대회에서 여자 플뢰레 개인전을 모두 따낸 ‘펜싱 여제’ 베잘리를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1세트와 2세트 지루한 탐색전을 펼치던 두 검객은 3세트에서 승부를 결정했다. 4-4로 맞선 채 들어선 3세트에서 남현희와 베잘리는 2분이 넘도록 공방을 펼쳤다.
서로 칼끝을 부딪치며 탐색전을 벌이던 베잘리는 기습적으로 팔을 뻗어 남현희에게 속임수 없는 생플 아탁을 다시 시도했고, 허를 찔린 남현희는 칼을 들어 막아보지도 못한 채 역전을 허용했다.
155cm의 작은 키를 이겨낸 각고의 노력도, 한국 선수로서 처음으로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실력도 있었지만 남현희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2005년 말 불거졌던 ‘쌍꺼풀 성형파문’이다.
성형수술 후유증 때문에 국가대표 훈련을 빠졌다는 이유로 국가대표 자격정지를 받은 것이 큰 파문으로 이어지면서 남현희는 당시 큰 충격에 빠졌다. 한참을 멍하게 지낸 끝에 소속팀인 서울시청에서 훈련을 다시 시작한 남현희는 조종형 감독의 배려로 마음을 안정시킨 뒤 한 단계 무서운 선수로 거듭났다. 결국 남현희는 한국 여자 펜싱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따내는 역사를 쓰면서 자신의 이름을 항상 따라다니던 성형파문 꼬리표도 떼어냈다.
<정대용 기자>
펜싱 여자 플뢰레 4강전에서 남현희가 이탈리아 지오바나 트릴리니를 상대로 득점한 후 환호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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