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전 월스트릿저널은 ‘가장 중대한 스캔들’이라고 지적했고 이틀 전 뉴욕타임스는 ‘가장 큰 이슈’라고 표현했다. 둘 다 미국교육의 위기에 대한 경고다. 도심지 공립학교의 심각한 교육실패가 미 전국이 직면하고 있는 뿌리 깊은 난제라고 일깨운 저널의 사설도, 미국의 교육발전 지연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가장 큰 문제라고 우려한 타임스의 칼럼도 교육개혁이 2008년 대선캠페인의 주요이슈로 부각되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교육은 대선에선 늘 뒤로 밀리는 2차적 이슈였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주정부 소관’으로 치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민주당 후보들은 교사노조 등 이익집단의 강한 입김에 밀려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해 왔기 때문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그런 면에선 예외라 할 수 있다. 그가 백악관 입성 직후부터 강력하게 추진해온 ‘낙제학생방지법(No Child Left Behind)’은 2002년 입법화 된 후 미 행정부의 중심교육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학생들의 성적을 정기적 테스트로 평가해 일정 수준에 못 이를 경우 학교와 교육구가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글자그대로 가난한 아이, 공부 못하는 아이도 소외되지 않게 한다는 것이 본래 취지이지만 시행에서는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어 아직도 존폐가 확정되지는 못한 상태다.
뉴스위크의 한 칼럼은 부시의 낙제학생방지법은 ‘민주당의 피냐타’라고 꼬집고 있다. 자체적 교육개혁안은 합의하지 못한 채 공화당 대통령의 ‘불완전한’ 정책을 두들겨 패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질책이다.
실제로 민주당 내에선 두 개의 교육정책 노선이 맞서고 있다.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현 체제의 과감한 변화를 주장하는 개혁추진 그룹은 학교 하나하나의 개혁만으로 상당한 차이를 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학생들의 이익을 최우선 순위로 하여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교사 각자가 성적향상에 책임을 지도록 하면 개혁은 이루어진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민주당내 주요 집단인 교사노조 쪽에선 동의하지 않는다. 기존체제가 누려온 연공서열과 정년보장 등 안정을 포기해야 할 뿐 아니라 무능하다는 평가가 나오면 경력 많은 교사도 가차 없이 해고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교육 하나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니 전반적 사회경제문제 일환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혁노선은 ‘가난한 소수계 학생들에게도 평등한 교육’을 지향하는 개혁은 ‘교육이슈의 차원을 넘어 이시대의 민권이슈’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과감한 변화요구는 민주당 대선후보 버락 오바마의 대표 메시지와 일맥상통하지만 오바마는 이들의 손을 선뜻 들어주지 않는다. 선거의 자금지원면에서도, 표 동원능력에서도 상당한 파워를 과시해온 노조에 등 돌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들이 이같은 쟁점을 놓칠 리가 없다. 주류미디어의 사설과 칼럼들이 오바마의 정치적 제스처를 꼬집고 나섰다. 그런데 대부분의 논평과 분석 말미에 한결같이 덧붙여진 충고가 눈에 뜨인다 : ‘미셸 리를 보라’
지난해 미 공립교육 실패의 대명사로 불리는 워싱턴DC 교육구의 교육감으로 취임했던 한인2세 미셸 리는 첫 1년만에 ‘놀라운 성과’를 거두어냈다. 미전국에서 학생1인당 최고의 교육예산을 배당받고도 최하위에 맴돌던 DC교육구의 성적이 눈에 뜨이게 향상된 것이다. 30대 젊은 개혁가가 추진한 것은 고인 물처럼 정체되어있던 교육계에선 가히 ‘혁명’이었다. 그는 취임초 이렇게 선언했다 “난 모든 결정을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방향으로 합니다. 정치나 인간관계 부담은 내게 의미가 없습니다. 오로지 아이들만 생각합니다”
그의 교육철학은 확고하다 - ‘평등한 교육이 평등한 사회를 만든다’
목표도 뚜렷하다 - ‘피부빛과 우편번호가 교육의 질을 좌우하지 않도록 하겠다’
방법도 확신한다 - ‘교육의 성공여부는 교사에 달렸다. 훌륭한 교사를 더 많은 학교에 배치하고 각 개인의 성과에 따라 보상을 지급한다. 실패한 교사에겐 책임을 추궁한다’
그는 이 절대목표를 향해 단호하게 행동했다. 100명의 행정요원들을 해고하고 23개 학교를 폐쇄조치했으며 성과가 부진한 교장에서 보조교사까지 800여명에게 경고조처를 내렸다. 그는 교사노조와도 타협하지 않았다.
‘무능한 교사는 떠나라, 대신 당신의 열정과 헌신엔 반드시 보상이 따를 것이다’ 연공서열과 정년보장을 포기하고 교사 각 개인이 학생들의 성적에 책임을 지고 향상을 이끌어낼 경우 최고 13만1,000달러까지 연봉을 약속했다.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미셸 리 만세!”라는 독자편지가 보여주듯 지지도 절대적이지만 그의 강행군에 대한 비난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는다. “나 때문에 불편하다구요? 압박감을 느낀다구요? 당연하지요. 그래야 합니다. 나도 매일 느낍니다. 5만명 아이들의 교육이, 그들의 내일이 내 손에 달려있으니까요”
교육개혁의 방향을 제시해야할 대선 후보도, ‘낙제학생방지법’을 둘러싸고 당쟁에 발목잡힌 연방의회도 , 바다건너에서 이념과 정치로 얼룩진 치열한 접전 끝에 당선된 서울시의 교육감도 , 교육의 힘을 믿는 미셸 리의 확고한 신념과 단호한 용기를 공유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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