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삶
한국에 한 달 가있는 동안 가장 피부에 닿은 게 촛불시위였다. 특히 프랑스에서 오래 살다온 여동생과 두 프랑스인 예술가들의 관심이 깊었기에 함께 관련 인터넷과 TV를 보고, 촛불시위로 택시를 탈수 없는 날 택시기사들과 대화를 하며 관심 있게 촛불시위를 지켜보았다.
외국에 오래 살았기에 거리를 두고 촛불시위를 바라볼 수 있었는데, 오랜 한국의 역사를 생각하며 한국인의 기질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고대 우리민족에게는 매년 음력 10월에 제사를 지내는 ‘무천’이라는 행사가 동예에 있었고, 부여에서는 12월에 ‘영고’라는 행사가 있었는데 이때에는 며칠씩 큰 잔치를 베풀고 밤낮으로 노래 부르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촛불시위가 과격해지고 진압도 과격해지면서 원천봉쇄까지 일어나고 있지만 사실 한국인의 기질에는 무척 잘 맞는 아름다운 행사이다.
촛불시위의 과정을 한달내내 지켜보면서 예로부터 음주가무를 즐기고 밤낮으로 노래 부르고 춤추는 제천의식을 지녔던 우리민족에게 80년대의 과격한 화염병과 최루탄 시위진압에 비하면 얼마나 멋진 문화축제의 운동이 탄생한 것인가 기뻐했다.
그리고 새삼 그토록 신선하고 아름다운 시위를 창조해 낸 한국인들의 내재된 문화적 고유성이 전 세계에 알려져서 외국인들이 “한국에 가면 촛불시위가 평화적으로 늘 일어나고 있으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한국을 찾는, 가장 유연한 정치적 유희로서의 관광문화의 가능성까지 생각해 보았다.
대한민국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일몰 후에는 집회가 금지되어 있어 학문, 예술, 체육, 종교의식, 친목 오락, 문화제 등의 명목으로 촛불집회가 진행되는데 노래 등 대중공연이 가능하며 구호를 외치거나 피켓을 드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의사표현은 경찰도 사실상 묵인해왔다.
촛불시위에 관한 원천 봉쇄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아름다운 축제로 창조해 나갈 수 있는 발상은 왜 할 수 없는 것일까.
90%의 촛불시위 참여자들 스스로 비폭력을 외치며 폭력시위와 폭력진압을 원치 않는다. 어떻게 하면 폭력적 요소를 줄이고, 국민의 창조적 대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안전한 촛불의 광장을 창조해 낼 수 있는가 하는 정부의 발상은 불가능한 것일까. 안타깝다.
이명박 대통령이 스스로 주장하는 대한민국 CEO의 두뇌라면 촛불시위의 폭발적인 문화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보았어야한다. 촛불시위는 누가 대통령이 되던 국민의 감성적 역사의식의 정치적 의사표현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여 고유하고 아름다운 진보적이고 창조적인 문화축제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한국의 촛불시위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멋진 참여의 축제로 진화해 갈수도 있다.
정부의 문화 역사의식도 깨어나야 하지만 촛불시위를 이끄는 시민들의 보다 보편적, 실존적 결단도 요구된다. 국민의 건강에 직결되는 쇠고기 문제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전 세계, 각 나라의 문제들과 관련, 세계시민적 관심사를 향한 촛불도 함께 들어야한다.
굶어 죽어가는 북한의 어린이를 위한 촛불, 한국과 북한, 중국 등 인권문제를 향한 촛불, 탈북자와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위한 촛불,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인종차별, 지구환경 오염문제 등 지구촌 인류의 삶을 위한 촛불을 드는 고독한 시민이 있어야 한다.
다른 나라의 일도 우리의 일처럼 함께 숙고하고 아파하고 함께 저항할 수 있다면 얼마나 통쾌한 역사의 횃불이 저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타오를 수 있을 것인가.
경봉스님은 밤새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보며 깨달음에 달했다고 한다. 가만히 촛불을 바라보고 있으면 촛불은 무척 부드럽게 섬세히 흔들린다.
촛불시위로 시민들의 생업이 위협받지 않도록 하는 배려, 진압하는 전경이 다치지 않도록 하는 배려 등 촛불을 든 사람들은 스스로 자성을 밝히는 내면의 촛불을 응시해야하고, 운동으로 미화된 자신 속의 폭력성을 주시할 수 있어야한다.
진정한 고요와 평화의 촛불로서 가장 첨예한 인류공통의 삶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촛불시위는 세계의 유례가 없는 열린 마음의 축제로 역사를 이끄는 감성적이고 감동적인 역사운동의 축제, 한국고유의 문화축제로 재창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귀한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더욱 아름답고 크게 타오를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이 급박하다.
박혜숙 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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