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 미주교포가 한국으로 역이민하여 성공한 케이스는 그다지 찾아보기 어렵다. 더구나 텃세 심하고,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매일 쏟아져 나오는 문화예술계에서는 아무리 미국서 활동했다 해도 어디 제대로 발붙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조각가 심재현씨, 화가 김봉태씨의 경우는 매우 대단하고 놀라운 일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두사람은 모두 50이 넘은 나이에 귀국하여 지금 한국 화단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이다. 두사람 외에도 사진작가 황규태씨가 비슷한 경우. 지금은 안타깝게도 이곳 형무소에서 복역중이지만 황씨는 미국에서 사업할 때보다 한국에 나가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훨씬 더 그 빛을 발했고 주위의 모든 작가들로부터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한국 화단서 독보적 위치 조각가 심재현·화가 김봉태씨
이달 초 서울 방문길에 조각가 심재현씨를 만났다. 심씨와는 햇병아리 문화부 기자시절 그가 시몬손 갤러리와 라카 갤러리를 운영할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 그의 갤러리에서 열린 수많은 전시회에 관해 글을 썼지만 정작 그가 조각가이며 그의 갤러리에서 전시한 어떤 작가보다 멋진 작품을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었다.
12년전인 96년 한국으로 들어간 그는 전보다 훨씬 더 젊고 힘차 보였다.
평창동에 작업실을 겸한 멋진 자택을 직접 건축한 그는 올해 70세라는 나이와 전혀 상관없이 뒤늦은 창작혼을 열정적으로 불태우고 있다.
98년 5.18공원 기념조형물 공모에서 내로라하는 작가들과 치열한 경합 끝에 작품이 선정된 이후 작가로서 인정받기 시작한 그는 다음해인 99년, 대학 졸업 32년만에 환갑을 지내놓고나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퓨전 갤러리, 세줄 갤러리, 빛 갤러리 등지에서 가진 개인전이 모두 호평 받았고 2002년 인천에 미주한인선교 100주년기념비교회 마당에 대형 기념비를 세웠으며, 한국의 많은 공원이나 건물, 청사 앞에 그의 조형미술이 설치돼있다.
강렬하면서도 기쁨이 넘치고, 때로 엄숙하지만 때로 재미있고 기발 난 그의 작품을 보면서 “이렇게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었으면서 도대체 그동안 작품 안 하고 어떻게 살았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심재현씨는 정색을 하며 “나는 조각가가 아닌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자꾸 어떻게 그 세월의 간격을 극복하고 그렇게 좋은 작품을 만드느냐고 물어오는데, 조각을 했든 안 했든 그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모든 부분에서 작가였다는 것이다. 그 모든 시간과 경험을 거쳐서 나온 힘과 혼과 열정이 모두 작품이 되고 있다는 뜻인가 보다.
한편 평창동에는 또 다른 LA출신 작가 김봉태씨가 역시 활발하게 작업하며 살고 있다.
70~80년대 LA한인예술가들의 대부로 불리던 그는 지금 3가와 웨스턴 우체국 자리에서 ‘갤러리 스코프’를 운영했는데 그곳은 당시 몇 안 되는 문화예술인들-음악, 미술, 연극, 무용 등을 망라한 아티스트들이 내 집처럼 드나들던 사랑방이었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63년 도미한 김봉태씨는 오티스에서 회화와 조각을 공부하고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작품을 발표하다가 80년대 중반 영구 귀국했다. USC, 오티스 파슨스, 칼스테이트 LA 등지에서 강의했고 귀국 후에는 서울대, 성신여대, 덕성여대 등에서 서양화, 판화 실기와 이론을 강의하면서 한국과 미국에서 30여회의 개인전을 가질 만큼 왕성한 창작열을 보여왔다.김씨는 지난 16일부터 8월5일까지 갤러리현대에서 ‘댄싱 박스’(Dancing box)라는 제목의 개인전을 갖고 있는데 71세의 나이에도 동심이 살아있는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지난 주 나온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그의 새 작품들은 “때로는 소곤소곤, 때로는 왁자지껄하더니 마치 춤을 추거나 장난을 걸어오는 것 같기도 한 순수한 동심”을 보여준다.
2004년부터 시작된 작품으로 로댕 갤러리에 설치된 ‘지옥의 문’을 보고 난 뒤 무거운 마음에 젖어 걷다가 수퍼마켓 한 귀퉁이에 용도 폐기된 채 쌓여진, 처량하게만 보이는 박스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처량한 신세의 박스로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약국, 수퍼마켓 등에서 100여개의 박스를 모아 요리 조리 궁리를 하고 작품을 만들어왔다고 한다. 면을 재구성하고 다양한 색을 부여한 ‘댄싱 박스’는 뚱뚱한 놈, 홀쭉한 놈, 작은 놈, 큰 놈 등 각 작품들마다 개성을 지녔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어린애 같은 순수함이 어린 표정들. 경쾌한 노래를 들으며 춤추는 듯한 네모들이다.
70대에 이런 동심이 스며있는 작업이 어떻게 가능할까. “어린애들이 댄싱박스 작품들을 좋아하기는 것처럼 굳이 비결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항상 밝게 산다”고 그는 말했다.
70대를 넘어 80대 90대까지 두사람 모두 더 밝고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작품들을 많이 많이 창조해주기를 기대한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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