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나이 든’ 직원(older worker)으로 간주되는 것은 몇 살부터 일까. 미국의 노동법에 의하면 40세다. 직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연령차별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나이다. 지난 주 연방대법원은 40세 이상의 직원을 감원할 경우 고용주는 감원의 근거가 ‘합리적’이라는 증거를 제시해야만 한다고 판결했다. 연령차별 소송의 길을 활짝 열어준 셈이다.
1967년 제정된 연령차별금지 고용법(ADEA)은 40세 이상 근로자에 대해 고용 및 인사 정책에서의 차별을 위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 고용주는 (나이 든 종업원이 관련된) 인사조처를 내릴 경우, 나이가 아닌 ‘합리적’ 요건을 그 인사의 기준으로 제시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나이 든 종업원에게 불리한 인사라 해도 합리적 이유를 댄다면 연령차별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합리적’ 기준인지, 아닌지를 증명할 책임이 고용주와 종업원, 둘 중 누구에게 있는가. 이점은 40년 넘게 수많은 소송이 제기되는 동안 계속 논쟁을 불러 온 주제이며 연령차별소송에서 승패를 가리는 결정적 요인이기도 하다.
1995년 뉴욕주에 소재한 놀스원자력연구소는 경영난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100명이 바이아웃 제의를 받아들여 나갔는데도 인원을 더 줄여야 했다. 경영진은 각 부서의 매니저에게 직원들에 대한 평가를 지시했다. ‘업무성과’‘적응력’‘필수기술’ 등 3분야로 나뉘어 작성된 매니저의 평가결과를 놓고 다시 고위경영진들로 구성된 위원회가 리뷰를 한 후에 감원대상을 최종결정했다. 인사를 단행하기 전 나름대로 합리적 절차를 밟으려 노력한 것이다.
31명이 감원을 당했다. 그중 30명이 40세 이상 ‘나이 든’ 직원이었다. 클리포드 미첨을 비롯한 28명의 종업원들은 연령차별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1심 배심원재판에선 종업원측이 승리했다. 배심원들은 감원대상을 추린 평가시스템이 나이든 직원들에게 부당하게 적용된 연령차별이었다고 평결하는 한편 원고 개인에 따라 6만9000달러부터 100만달러까지 총 600만달러의 배상금도 지급하라고 명했다. 그러나 2심에서 패소했다. 연방항소법원은 감원 평가기준이 ‘합리적’이 아니라는 증거를 종업원들이 제시하지 못했다면서 고용주측의 손을 들어 주었다. ‘미첨 대 놀스’로 명명된 이 소송은 결국 연방대법원까지 올라갔고 지난 주 종업원들의 승리로 10여년을 끌어 온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감원기준이 왜 ‘합리적’인가를 증명할 책임은 고용주에게 있다고 판결했다. 작년회기엔 친기업적 성향을 보였던 보수적인 연방대법원으로는 좀 의외다 싶게 7대1의 압도적 결정이었다. 연방의회가 연령차별금지법을 제정하면서 ‘합리적’ 기준에 근거할 경우 나이 든 직원을 감원할 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한 것은 고용주에게 방어의 여지를 허용한 것이므로 그 합리성을 증명할 책임은 당연히 고용주에 있다는 해석이다.
한편에선 대법원이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 보호의 사명감을 가진 공정한 심판자’임을 재확인했다는 찬사가 쏟아지고 한편에선 ‘연령은 인종이나 성별과는 달리 업무능률과 무관하지 않다. 뉴테크놀로지와 시장변화, 불경기에 대처해야할 고용주들에게 소송이라는 또 하나의 부담을 줄 것’이라는 우려를 감추지 않는다.
소송천국인 미국에서 내놓고 나이 든 종업원을 차별하는 간 큰 고용주는 흔하지 않다. 그러나 겉으로 보기엔 합리적이고 중립적인 인사방침이 사실상 나이 많고 봉급 높은 종업원들을 타겟으로 삼을 경우 종업원들이 그 불합리성이나 위법성을 증명하기는 상당히 힘들다. “이번에 종업원측이 패소했다면 앞으로 구조조정시 연령차별소송은 거의 불가능해졌을 것”이라고 관계 변호사들도 지적한다.
60년대 여성이나 인종차별 못지않게 미국의 직장에서 요즘 부각되고 있는 이슈가 연령차별이다. 평등고용기회위원회(EEOC)에 제소되는 연령차별항의는 매년 1만9000건에 달한다. 지난 10년간 EEOC에 접수된 전체 차별고발은 3%의 증가를 보였으나 유독 연령차별만은 21%나 늘어났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길어진 수명, 하이텍, 불경기 등…2000년에 1,840만명이었던 55세 이상 근로자가 2015년엔 3,190만명에 달할 것이라니 상황은 한층 심각해 질 것이다.
이번 판결의 결과는 채용에서 승진, 부서이동, 봉급 조정, 해고 등 모든 인사조처에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 고용주들을 향한 전문가들의 조언이 잇따른다 : 감원등 인사관련 결정시 한층 신중해야 한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평가 기준을 정하고, 매니저들이 객관적 평가를 할 수 있도록 철저히 교육시켜야 하며, 최종 결단을 내리기까지 몇 단계의 검증절차를 거쳐야 길고 값비싼 소송을 피해갈 수 있다…
소송대처에 앞서 기억해야 할 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직장은 전쟁터가 아닌 커뮤니티라는 사실이다. ‘나이 든’ 직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은 당사자에게만 충격과 분노를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상황에서 몇 년 후의 자화상을 읽게되는 ‘젊은’ 직원들의 마음까지 닫게 한다. 아이디어와 문제점, 가치관과 목표, 경영과정에 대한 책임과 이익을 함께 나눈다는 약속위에 세워진 공동사회, 평소 이런 분위기의 직장이라면 차별소송은 처음부터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박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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