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0년에 담긴 그들만의 모습 특이
혹독한 경쟁을 극복한 자들의 잔치
하버드에서의 졸업식은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지금 이 시대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하는 것이었다. 21세기의 첨단을 걷고 있는 대학이면서도 360년의 전통의 뿌리를 고수하고 있는 곳이니 말이다.
우선 그 첫째가 졸업식을 하는 장소이다. 지금은 예배를 갖지 않아 추모교회(the Memorial Church)라고 부르지만 원래 하버드 커뮤니티의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했던 교회의 앞마당이다.
속칭 ‘하버드 야드’라고 하고, 정식명칭은 300주년을 기념하는 극장(Tercentenary Theatre)이라고 한다. 졸업식의 규모가 커져서 1936년에 창립 300주년을 맞아서 처음으로 안에서 밖으로 옮기면서 붙은 이름이다.
그러나 그것도 옛말. 규모는 계속 커져서 이곳도 너무 좁아 졌는데도 아직 다른 곳으로 옮겨야겠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올해는 6,966명을 졸업시키고, 104명에게 증서(Certificate)를 주는 행사였던 만치, 각 학위수여자들마다 평균 두 명의 손님만 초대한다고 해도 2만 명이 훨씬 넘는 숫자인데도 말이다.
하버드에 스테디엄이 없는 것도 아니고 또 하버드 같은 재력이 있는 학교라면 비가 오는 경우를 대비해서 보스턴 셀틱스의 구장을 하루 빌려서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보다 영구적으로 실내구장을 벌써 마련했었어도 될 것 같은데, 무슨 이유에선가 굳이 그 자리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형 스크린을 여기저기 설치해서 행사진행을 가까이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고, 캠퍼스 내의 여러 강의실 안에도 대형 화면에 중계방송을 해주어서 실내에서 관람할 수도 있게 했으며, 각지에 흩어져 있는 분들에게는 인터넷으로도 세계 어느 곳에서라도 실시간으로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지만, 왜 굳이 그 좁은 곳을 고집하느냐는 말이다. 그것도 꼭 이제는 교회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감당하지 않는 추모교회 앞에서 말이다.
원래 하버드 졸업식은 모든 사람들이 참여해서 점심도 나오고, 온 캠브리지 주변 도시의 잔치로 치러졌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주변 카운티의 경찰국장들이 졸업식에 정식 손님으로 참석하는 전통이 지켜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1950년부터 졸업장은 13개의 기숙사에서 오찬과 함께 수여하게 해주고, 오후에는 다시 야드에 모여서 축제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360여년을 내려오면서 많은 변화를 거치면서도 이렇게 전통을 고수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특이했던 것은 식의 진행이 대학교목의 기도로 시작하고 교목의 축도로 마치며 순서 사이사이에 찬송가를 부른다는 것이다. 하버드처럼 졸업식에 찬송가를 많이 부르는 곳은 신학교들 중에도 많지 않을 듯싶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정말 깜짝 놀라게 한 것은 답사자로 선발된 졸업생 3명 중 한명은 라틴말로 답사를 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공용어로 쓰이지 않는 라틴어로 약 15분에 걸쳐서 답사를 했는데, 미리 나눠준 삽지와 비교해 보니 토씨하나 안 틀리고 시종일관 가득 찬 활기와 음성으로 열변을 토하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살아있지 않는 라틴어로 답사를 하는 것이 놀랍다면 그 내용을 보면 또 한 번 섬뜩해 진다. 그 학생은 하버드에서의 4년을 마라톤경주에 비유하면서 유명 올림픽 마라토너 자토펙(Emil Zatopek)의 말을 인용했는데 그 말은 “무엇인가 얻고 싶으면 100m 경주에 참여하라. 그러나 무엇인가를 경험하고 싶다면 꼭 마라톤에서 뛰어보라”라는 말이었다.
정말 하버드 생활은 참으로 처절한 면이 있다. 라틴말 답사자의 “때로는 배가 뒤틀리는 것 같고 창자가 터지는 것 같은 고통”을 견디어 가며 “뒤에 쳐진 자는 보지 않고 오직 앞에 가는 자를 따라갔다”라는 고백이 말해 주듯이.
이것이 바로 하버드의 생활상의 한 단면이 아닐까? 단지 학위에 필요한 것을 배운다는 것을 초월해서 오직 이기기 위해서 죽도록 노력하는, 그리고 때로는 뒤에 쳐지는 동료마저도 바라보지 않는, 오직 앞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모습인 것이다.
4년 전 봄에 합격 통지서를 받고 이 지역에 있는 합격자들과 함께 근처 하버드 동문의 저택에 초대받은 적이 있었다.
대문에 들어서서 안에 있는 큰 마당을 지나는데 저택 앞 현관에서 막 나오던 사람과 만났다.
놀랍게도 초면인 그가 필자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누구누구의 아빠가 아니냐고 확인까지 하면서. 합격통지를 받기는 힘들지만 합격 받은 사람들은 또 꼭 자기 학교로 끌어들이려고 필사로 노력하는 것이 보이는 것 같아서 우습기까지 했다.
그래서 농담으로 “전 대통령도 그렇고 당시 대통령후보, 즉 부시와 케리가 다 예일 출신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리고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하는 말이, “그러니까 당신의 딸이 필요한 것입니다”였다. 하버드 대학이 어떤 자세로 신입생들을 맞이하는지 보는 순간이었다.
이런 자세로 학생들을 뽑아놓고 그런 혹독한 경쟁을 통과시키는데, 라틴어로 답사한 학생은 말한다.
하버드는 마음이 약한 자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고(Not for the fainthearted). 오직 절정의 컨디션을 가진, 의욕에 가득 찬, 그리고 열정에 가득 찬 학생들만 견딜 수 있는 곳이라고(Only for the conditioned, the motivated, and the passionate).
하버드에 자녀들을 보내고 싶어 하는 학부모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213)210-3466, johnsgwhang@yahoo.com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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