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son for Time/시간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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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ly reason for time is
so that everything doesn’t happen at once.
시간이 존재하는 단 하나 이유는
모든 일이 한꺼번에 벌어지지 않기 위함이다.
장마가 시작된 서울 한복판을 걷습니다.
가까이 도심사찰 봉은사가 마주 보이는 삼성동 사거리를
걸으며, 내리는 비 그리고 흩뿌리는 바람 속에서 힐끗힐끗
나의 과거와 조우합니다. 강북 가회동 길을 지나며 어릴 적
다니던 국민학교 대문 앞에 서서 울컥 솟아 오르는 노스탤지어에
흠뻑 젖어 봅니다. 초하[初夏], 광화문 길을 지나 정동 골목을 걸으며
나고 자란 내 땅 냄새에 흠뻑 취합니다. 제법 굵게 내리는 비가
왠지 다정하게만 느껴지는 오후입니다.
지천명을 넘기고 미국 땅에 살며 잠시 들르듯 나들이해오던
고국 땅의 정취가 올핸 더더욱 진하게 다가 옵니다. 늘 다니던
압구정 성당의 새로이 모신 성모상이 불현듯 아주 예전부터
있어왔던 어머니의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충남 덕숭산 수덕사,
산길을 오르며, 경허의 선맥을 이은 만공의 발자취를 가까이
느껴 봅니다. 만공선사의 친필 ‘세계일화’[世界一花] 현판에
잠시 한 방 맞은 듯 멍하게 서 있다 내려옵니다.
어머니와 동생들, 그리고 반가운 친지들과 먹고 마시며
이런저런 옛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고국 땅을 홀로 걸으며
더듬어보는 내 삶의 뒤안길, 이곳 저곳 묻어나는 과거의 편린들이
바랜 흑백사진처럼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아, 향수란 바로 이런
느낌이로구나 하며 내친 걸음 중학 시절 걸어 통학하던
경복궁 뒤 길도 옛 선비처럼 휘적휘적 걸어 봅니다.
내 영혼 깊은 곳에서 물 위로 떠오르는 그 어떤 느낌이
말론 형언키 어려운 묘한 기시감[旣視感]으로 다가옵니다.
The only reason for time is
so that everything doesn’t happen at once.
시간이 존재하는 단 하나 이유는
모든 일이 한꺼번에 벌어지지 않기 위함이다.
과거의 향수 속에 몇 시간 걸어온 빗길. 이제 다시 떠날
준비로 짐을 챙깁니다. 왔으니 다시 떠납니다. 떠난 뒤, 다시
돌아 오겠죠. 그렇게 가고 오는 가운데 과거는 한없이 쌓여
갑니다. 수북이 쌓인 과거 속에 삶은 늘 진행형입니다.
창 밖으로 점차 드세지는 장마 비를 보며 따스한 녹차를
한 잔 데웁니다. 이미 과거 속에 묻힌 오늘 오후 빗길 나들이,
진한 녹차의 향기 속에 되살아나며 그 짙은 향수의 뒤안길로
옛날 얘기가 하나 떠오릅니다.
덕산(德山) 스님은 대단히 열심히 공부하였으나 교만함이 있었다.
그는 용담(龍潭)스님의 명성을 듣고서 남쪽으로 찾아갔다.
점심(點心)때가 되어 목적지 가까운 곳의 주막에서 잠깐 쉬면서
배를 채우려고 점심을 주문하였다. 그리고는 주막의 노파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 부근을 용담(龍潭)이라고 하던데 그 이름이 굉장히
멀리까지 퍼져 있더군. 그런데 막상 와서 보니 듣던 것과는
매우 다르고 어디를 둘러봐도 용이 살만한 곳은 한군데도
없는 걸 보니 대단한 곳은 못 되는 군.
그러자 주막집 노파가 말했다.
스님, 스님께서 갖고 계신 그 책은 무슨 책입니까?
음, 이것 말인가. 이것은 <금강경>이라는 아주 귀한 경전이네.
그렇습니까. 저도 지금까지 불교의 가르침에 대해서 많이
배웠습니다만, 한가지 도저히 모르는 것이 있는데 좀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그런가? 좋으니 무엇이든 물어보게. 가르쳐 주겠네.
주막집 노파가 알아야 무엇을 알고 있겠느냐 싶어 덕산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노파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금강경>에서는 ‘과거심’도 찾을 수가 없다.
’현재심’도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미래심’ 또한
찾을 수가 없다(過去心不可得 現在心 不可得 未來心 不可得)고
말하고 있는데 지금 스님께서는 이 중 어느 마음으로
점심을 드시려 하십니까?
노파는 이어 이렇게 말했다.
만일 스님께서 그 대답을 하신다면
내가 점심을 그냥 대접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설사 점심값을 내신다 해도
점심을 드릴 수 가 없습니다.
점심이라는 말과 부처님에게 마음을 바친다고 하는 점심(點心)을
결부시키고 있는 데에 덕산은 깜짝 놀라 대답할 수가없어서
입을 꼭 다물고 말았다. 꼼짝없이 덕산은 점심을 굶고 말았다.
이러한 도리를 노파는 도대체 누구에게서 배웠을까?
덕산은 빨리 그 사람을 만나고 싶어졌다.
The only reason for time is
so that everything doesn’t happen at once.
시간이 존재하는 단 하나 이유는
모든 일이 한꺼번에 벌어지지 않기 위함이다.
과거의 추억을 더듬는 한가로움 속에 시간의 존재이유를
명철하게 꿰뚫은 현자 아인슈타인의 말씀이 잔잔한 공명을
불러 일으킵니다. 시간이란 딱히 스스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라는 말씀. 시간은 바로 만사가 따로따로 벌어지게끔
허용하는 우주법칙을 감지하는 인간의 느낌일 뿐이란 말씀.
쉽게 설명되지 않는 시간의 존재이유를 만사에 빗대어 풀어낸
아인슈타인의 간결 명료한 말씀이 과거를 곰 씹어 보는 찻잔
위에 서립니다.
녹차 향기 뒤로 피어 오르는 향훈 속에덕산(德山)의 모습도
가물거립니다. 하루 종일 초하의 빗 속을 거닐며 머물던
내 과거의 향수가 불현듯 ‘지금 여기’라는 초점으로 회귀하며
허기진 마음에 간단히 찍은 점심[點心], 정말 맛있게 먹은
전복 죽 향기가 아직도 혀끝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렇게 2주에 걸친 고국방문이 마감되는 오늘 저녁,
비는 계속 내리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 후 비행기 타고 태평양을
나르면 곧 샌프란시스코입니다. 오늘 생각해보는 내일, 내일이
되면 이미 어제의 일입니다. 그러고 보니, 샌프란시스코는 아직
어제로군요. 태평양 저쪽에서 보면, 이 곳은 이미 내일이고요. 그렇게
오늘과 내일이 따로 벌어지는 게 바로 ‘시간’의 존재이유랍니다.
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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