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1로 독일격파, 준준결승 진출
발칸반도의 소국 크로아티아가 12일 거함 독일을 2대1로 격파하고 2연승, 유로2008 준준결승행 티켓을 확보했다. 크로아티아를 제물로 2승을 거두고 느긋하게 8강전 이후 구상을 가다듬으려던 독일은 1승1패가 됐다. 공동개최국 오스트리아는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0대1로 끌려가다 막판 페널티킥으로 기사회생, 양팀 모두 1무1패로 실낱같은 8강희망 불씨를 살려냈다. 이로써 B조몫 8강티켓 2장 중 1장은 3차전이 끝나봐야 주인을 알 수 있다.
◆크로아티아(2승) 2 - 1 독일(1승1패)
스포츠는 스포츠다. 정치적 역사적 양념을 많이 치면 필경 스포츠의 순수성을 훼손한다. 그러나 그런 양념은 때로 단순투박한 스포츠보기의 맛을 보다 쫄깃쫄깃하게 해준다. 크로아티아 입장에서 썩 달가운 품평은 아니겠지만 이번 대회 이변 1호로 기록될 독일과 크로아티아의 12일 축구한판을 양국의 처지와 관계로 음미하는 맛은 색다르다.
독일.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는 강국이다. 인구(8,300여만명)는 남북한에다 해외한인을 다 합친 것보다 많고 면적(35만6,910평방킬로)은 한반도의 1.5배가 넘는다.
크로아티아. 다보르 슈케르를 앞세워 유로96과 월드컵98에서 연속 4강에 올라 웬만한 축구팬들에겐 익숙하지만 보통사람들에겐 여전히 생소한 나라다. 아름다운 아드리아해를 끼고 이탈리아반도의 동쪽맞은편 발칸반도에 붙은 작은 나라다(인구 약450만명/면적 5만6,538평방키로). 옛유고연방에서 91년 6월25일 독립했다. 독립 당시 세르비아 중심 유고연방 유지세력이 크로아티아를 맹폭, 두브로브니크 등 세계적 문화유산이 파괴되자 세계의 문화인 지성인들이 들고일어나 인간띠 운동을 벌였다.
크로아티아는 독립 이전에도 유고연방에서 미운털이 박혔다. 연원은 2차대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르비아 등은 크로아티아가 나치독일에 협력했다며 부역자(한국식으로 말하면 친일파) 취급을 했다. 독일은 크로아티아 독립을 앞장서 승인했다. 크로아티아 경제의 독일의존도는 더욱 높아지고 크로아티아의 독일관은 유난히 따스해질 수밖에.
그러나 축구에서는 골리앗 독일이 다윗 크로아티아에 큰물에서 두차례나 봉변을 당했다. 첫 번째는 98프랑스월드컵 8강전. 언제나처럼 우승을 넘보던 독일은 월드컵에 첫선을 보인 크로아티아에 0대3으로 패퇴, 체면을 구기고 짐을 꾸렸다. 그로부터 10년만인 유로2008 B그룹 2차전(12일 오스트리아의 클라겐푸르트). 독일이 또 크로아티아에 수모(1대2)를 당했다.
이날 경기만 보면 독일의 패배는 당연했다. 결코 이변이랄 수 없었다. 경기력 정신력 모든 측면에서 크로아티아가 우위였다. 이상조짐은 초반부터 나타났다. 상대가 독일인데다 평소에도 문을 걸어잠근 채 수비에 치중하다 기습작전을 펴곤 했던 크로아티아의 특성을 들어 ESPN중계팀 등은 당연히 독일이 밀고 크로아가 버티는 게임을 예상했으나, 막상 뚜껑을 열고보니 그게 아니었다. 막상막하 줄다리기. 특히 중원싸움 백병전은 사나웠다.
과거 어느 축구전문가는 말했다, 독일축구는 정밀기계와 같다고.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고 교과서적 패스를 착착 주고받으며 목표를 향해 한발한발 전진하는 독일축구의 장점을 일컫는 말이다. 한국언론이 관성적으로 애용하는 전차군단이란 표현에도 비슷한 뜻이 담겨 있다. 그렇다. 독일축구는 처음과 끝이 별반 다르지 않은 게 특징이다, 설혹 지고 있는 상황에서 경기종료가 임박할지라도. 그래서 독일축구는 추억의 명장면이 뜸하지만 ‘보이는 것보다 강하다’는 평가다.
그런데 이날은 영 아니었다. 크로아의 밀착맞짱에 독일의 특장인 냉정함이 일그러졌다. 20분도 안돼 플레이메이커 미하엘 발락, 골키퍼 옌스 레만 등이 짜증부리는 장면이 화면에 잡혔다.
그런 와중에 크로아의 첫골이 터졌다. 전반 22분쯤, 독일진영 왼쪽 터치라인 부근에서 기민한 속임동작과 동료와의 숏패스로 독일수비수들을 따돌린 다니엘 프라니치가 페널티지역 모서리쪽 동료에게 길게 줬다 리턴패스를 받으며 확 넓어진 빈터에서 반대쪽 골포스트를 향해 감아올린 크로스를 띄워주자 득달같이 달려든 다리오 스르나가 왼발을 쭉 내뻗으며 아웃프런트 펀트킥, 가속도가 붙은 볼은 눈 깜빡할 사이에 독일골네트를 출렁였다. 독일수비 수 얀센은 스르나의 측후방 기습을 모른 채 차분하게 걷어내려다 허를 찔렸다.
비기고 있어도 잠글 판인데 선제골을 넣었으니 잠그기 작전? 이것도 아니었다. 크로아는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발락의 프리킥(32분)과 크리스토프 메첼더의 헤딩슛(39분) 등 가슴철렁한 위기를 맞으면서도 물러섬 없는 공격을 했다. 레만의 선방에 아니었다면 크로아는 전반 41분에 올리치의 찍어올리기 패스에 이은 니코 크란차르의 가슴트래핑 왼발발리슛으로 추가골을 넣을 뻔했다.
후반 16분, 크로아는 결연한 맞짱의 대가를 기어이 뽑았다. 독일진영 오른쪽에서 문전을 향해 감아찬 이반 라키티치의 낮은 크로스. 웅크린 레만 골키퍼가 방향을 읽고 약간 전진했다. 헛걸음이었다. 볼이 하필 수비가담 루카스 포돌스키의 몸에 맞고 굴절돼 골포스트를 맞혔다. 레만은 급히 몸을 날렸지만 볼이 더 빨랐다. 아직 골은 아니었다. 볼은 골지역으로 흘렀다. 골지역에서 독일수비수 2명 틈에 있던 올리치가 잽싸게 튀어나가 톡, 굳히기 추가골을 만들었다.
체크무늬 크로아응원단은 난리가 났다. 크로아벤치도 흥분도가니였다. 독일격파 수훈갑 스르나는 코너킥을 차러 가면서 독일골문 뒤 응원단을 향해 양팔로 일제환호를 지휘하는 등 여유를 부렸다. 발락 등 독일선수들은 신경질만 늘었다. 그럴수록 더 엉켰다. 후반 33분, 포돌스키의 강력한 왼발슛으로 영패를 모면한 것이 ‘오늘의 위안’이요, 마지막 3차전 상대가 오스트리아라는 게 ‘내일의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독일은 볼점유율(57%대43%)에서만 앞섰을 뿐, 슈팅수(7대12)에서도 슈팅 중 유효슈팅수(2대8)에서도 절대열세를 보였다. 골키퍼의 세이브에서는 10대2로 앞섰다. 그만큼 밀렸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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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저리타임 페널티킥에 1대1 무승부
승리직전 폴란드 허탈, 탈락직전 오스트리아 회생
◆오스트리아(1무1패) 1 - 1 폴란드(1무1패)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오스트리아와 폴란드 경기는 둘 다 1패를 안아 더 이상 물러설 곳이 배수진 승부였다. 승리의 여신은 공평했다. 82스페인월드컵 3위차지 이후 큰잔치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한 폴란드를 외면하지도, 이번 대회를 공동개최한 오스트리아를 박대하지도 않았다. 1대1 무승부.
양팀 입장에선 서로 아쉽고도 다행스런 결과이기도 했다. 폴란드는 어렵사리 벌어놓은 전반 선제골을 경기종료직전 페널티킥 동점골로 까먹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무한파이팅에 번번이 밀리는 가운데 얻은 무승부임을 감안하면 다행이랄 수도 있었다. 오스트리아는 다 진 경기를 막판동점골로 무승부를 만들었다는 점에선 다행이었지만, 시종 몰아붙이면서도 득점몰이에 실패하는 바람에 이길 수 있는 경기를 놓쳤다는 점에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오스트리아의 파상공세에 쩔쩔 매던 폴란드는 전반 29분 역습에서 에비 스몰라렉의 크로스를 받아 귀화용병 호게르 게레이루가 밀어넣었다. 오스트리아의 공세는 더욱 거칠어졌다. 폴란드는 필사적으로 버텼다. 그렇게 끝나는 듯했던 경기는 후반 인저리타임 때 표변했다. 폴란드진영 중앙에서 찬 프리킥볼을 차지하려고 양팀 선수들이 뒤엉켜 격렬한 문전몸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폴란드 선수들의 항의와 원망을 뒤로 하고, 이비차 바스티치는 침착하게 차넣었다. 탈락 일보직전 오스트리아는 기사회생했다. 그러나 다음 상대는 크로아전 패배로 독이 오른 독일이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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