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이 다르게 치솟는 개솔린 가격에 분노한 민심을 등 뒤로 느끼며 이번 주 초 유럽순방길에 오른 부시대통령은 우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현 상황을 계속 모니터할 겁니다”
국민이 원하는 게 모니터링 아닌, 고통을 덜어줄 행동임을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그러나 대책이 없는 것이다. 늦긴 했지만 지난해 말 성사시킨 자동차 연비향상 법안이나 민주·공화 양당이 원칙적으로는 합의한 대체에너지 개발 지원 등 장기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눈앞에 가시적 효과를 보여줄 해결책 마련은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대통령만이 아니다. 대책 없기는 연방의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선거를 코앞에 두고 유권자의 고통을 눈으로 보는데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부지런히 짜내지만 미국의 통제권 밖에서 국제적인 복합원인으로 빚어진 고유가 상황에 대해 에너지 전문가도 아닌 미국 정치인들이 내놓는 대책이 신통할 리 없다.
공화당 대선후보 존 매케인은 다시 여름철동안만 연방 개솔린세를 유보하자고 제안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속임수(gimmick)라고 민주당 후보 버락 오바마는 즉각 몰아 세웠다. 공화당내에서도 반대의견이 많으니 오바마의 비난이 틀린 것은 아니다.
gimmick이라는 야유는 오바마가 지지하는 석유기업에 대한 횡재세(windfall tax)법안에도 가해졌다. 10일 연방상원에선 미5대 석유회사의 막대한 이익에 대해 세금폭탄을 퍼부으려던 민주당의 시도가 좌절되었다.
공화당의 저지로 논의조차 못한 채 폐기된 것이다. 고유가를 야기한 장본인도 아닌 석유회사에 처벌성 횡재세를 부과하는 것은 가격인하에 도움은커녕 국내생산까지 저하시킬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공화당의 이런 주장 역시 대다수 전문가들이 동의하니 근거없는 비난은 아니다.
유가가 수직상승을 거듭한 지난 한 두 달 미 의원들이 내놓은 대책들은 대부분 답답하다. 산유국들에 대해 반독점금지법 소송을 제기하자, 사우디가 석유생산 늘리지 않겠다면 무기수출을 중단시키자 등 아이들 싸움의 힘자랑 같은 묘안이 나왔나하면 전략유 비축 잠정중단 같은 실제효과가 미미해 상징적 의미에 그친 해묵은 대책도 나왔다.
개솔린 가격을 잡을 수 있는 확실한 대책은 딱 두 가지다. 생산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에너지 정책은 그와는 정반대다. 소비를 줄이려면 극약처방이 필요하다. 개솔린 세의 대폭인상이다. 유럽인들의 에너지 소비를 대폭 줄인 것이 바로 50%에 달하는 살인적인 개솔린세다. 미국의 어떤 정치인이 감히 이런 제안을 할 수 있겠는가. 감세를 고수하는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도 찬성하지 못할 것이다. 계속 10%안팎의 낮은 세율을 고수할 수 밖에 없으니 본의 아니게 개솔린 소비를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소비를 못 줄이면 생산이라도 늘려야 한다. 수입석유 아닌 자체생산을 뜻한다. 사우디에게 증산하라고 위협하기 전에 미국내 생산 증가의 길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 수십년 미국내 석유생산은 오히려 감소했다. 80년 31억 배럴에서 2007년엔 19억 배럴로 줄어들었다. 수입은 같은 기간 19억 배럴에서 37억 배럴로 늘어났다. 세계 제3위 산유국인 미국이 전체 석유소비량의 60%를 수입한다.
미국의 해안 대륙붕과 북극야생보호구역에는 상당량의 석유가 매장되어있다. 수백억에서 1천억 배럴까지, 25년 동안 수입 안해도 견딜 수 있는 정도의 양이라고 한다. 생산을 늘리려면 새로운 유전을 개발해야하는데 해당지역의 대부분이 환경보호를 위한 개발금지법에 묶여있다. 공화당 에너지정책의 핵심이 바로 국내 생산, 그중에서도 북극야생보호구역의 유전개발이다.
환경단체들은 반대하지만 자연계 훼손없이 개발할수 있다는 긍정적 진단을 내리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앞으로 30년간 매일 100만 배럴씩 생산이 가능한데 미 전체의 1일 소비량이 2,100만 배럴이니 5%에 해당한다. 석유문제에 해답은 못되어도 해답의 중요한 한 부분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개솔린값 폭등으로 새삼 주목받게 된 북극 유전개발안은 현재 연방하원에서 공화당의 주도로 다시 추진 중이다. 지금같은 상황에서 국민투표에 붙인다면 통과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회에선 환경보호단체와의 적대를 꺼리는 민주당이 적극 반대하고 있어 실현전망은 어두운 편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를 겪은 이후 지난 30여년 7명의 미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에너지 자립을 다짐해왔다. 하지만 미국의 에너지정책은 ‘소비는 줄이고 생산은 늘려야’ 하는 근간조차 다지지 못해 정책 아닌, ‘희망’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형편이다.
“에너지 자립은 미국이 내일을 위해 해야할 최선의 대비다”라는 레이건의 다짐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한채 이제 차기 대통령에게로 넘겨질 것이다. 쉬운 과제가 아니다. 현실적 플랜을 세워 시행해 가려면 강력한 이해집단과 맞서야 한다. 거대 석유기업의 폭리도 막아햐하고 환경보호론자들의 극단적 요구도 꺾어야 한다. 매케인과 오바마가 그동안 자처해 온대로 초당적 리더라면 그들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좌파우파의 이념대결을 넘어선 초당적 대통령이 제시하는 에너지 정책이라면 설사 각 개인의 희생이 요구된다 해도 미국인들은 불평없이 따를 것이다.
박 록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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