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챔피언 이탈리아 이어 유로챔피언 그리스도 완패
스웨덴에 0대2...이브라히모비치, 근 3년만에 A매치 골 스페인, 히딩크의 러시아에 4대1 대승
라울 후계자 비야, 대회 1호 해트트릭
이틀 연속 챔피언군단의 수난이 이어졌다. 독일에서 벌어진 2006년 월드컵 챔피언 이탈리아가 9일 네덜란드의 파상공세에 0대3으로 무릎을 꿇은 데 이어, 포르투갈에서 열린 유로2004 챔피언 그리스는 10일 북유럽강호 스웨덴의 전면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0대2로 패퇴했다.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모두 수비로 일어서 세계축구 양대 봉우리를 정복한 팀들이다. 평소 잘하다가도 월드컵이나 유로대회 등 큰무대에 오르면 죽을 쑤곤 했던 스페인은 10일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러시아를 4대1로 대파하고 기분좋은 승점 3점을 챙겼다.
스페인과 스웨덴에 첫승을 안긴 10일의 D그룹 두 경기를 끝으로, 지구촌 축구팬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펼쳐지고 있는 알프스발(스위스-오스트리아 공동개최) 유로2008 축구대제전 조별 1차전(총 8게임)을 모두 마쳤다. 그중 죽음의 조 C그룹 프랑스와 루마니아 경기만 0대0 무승부를 기록했을 뿐, 나머지 7게임은 승패있는 결과를 냈다. 공동개최국 스위스(A그룹)와 오스트리아(B그룹)는 예상을 뒤엎고 선전을 펼쳤으나 각각 체코와 크로아티아에 0대1로 졌다. 포르투갈(A그룹) 독일(B그룹) 스웨덴(D그룹)은 각각 터키 폴란드 그리스에 2대0 승리를 거뒀고, 네덜란드(C그룹)와 스페인(D그룹)은 이탈리아와 러시아에 3대0, 4대1로 이겨 나란히 3점차 승리를 거뒀다.
◆스페인(1승) 4 - 1 러시아(1패)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키 리조트 중 한곳인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벌어진 스페인-러시아 경기는 굳이 징크스랄 건 없지만 굳이 아니랄 수도 없는 ‘큰대회 부진의 동병상련’을 앓고 있는 팀들의 격돌이었다.
스페인은 평소 실력, 국민적 축구열기, 레알마드리드 FC바르셀로나 등 세계적 명문클럽들이 포진한 자국 프로리그(프리메라리가)의 양질 등 어느모로 보나 유로대회를 넘어 월드컵 우승도 족히 두세번은 했어야 마땅한 팀.
그러나 스페인은 사활적 빅매치에서 번번이 부족한 2인치를 드러내며 주저앉아 지금껏 월드컵 4강고지에도 올라보지 못했다.
동유럽(실은 유라시아) 파워축구의 대명사 러시아는 ‘원조 신의 손’ 야신이 골문을 지키던 옛소련 시절 1966 잉글랜드월드컵에서 4강, 1970년 멕시코월드컵에서 8강에 오른 이후 기나긴 겨울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그 사이에 1988 서울올림픽에서 우승했지만 나이제한과 프로선수 출전제한이 따르는 올림픽 우승의 값어치는 크게 처진다).
이 경기에 한인 축구팬들의 눈길이 덤으로 쏠린 이유는 또 있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신화를 견인했던 거스 히딩크 감독이 얼어붙은 러시아축구를 되살리기 위한 지휘봉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히딩크 감독에 대한 관심에 태극무늬만 있는 건 아니다.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4강에 올려놓고 2002년에 한국의 사령탑을 맡아 또다시 4강고지를 답사함으로써 그는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팀을 이끌고 2연속 준결승에 진출한 감독이 됐다.
히딩크의 매직은 2006 독일월드컵에서도 빛을 발했다. 한국을 꺾고 1974년 서독월드컵에 출전한 이후 거의 세계축구 변방으로 내몰렸던 호주의 감독을 맡자마자 수십년만의 본선진출을 이뤄내더니 곧장 16강까지 직행, 삼세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10일 인스부르크에서 ‘히딩크의 매직’은 없었다. 제자들의 골이 터지면 허공을 향해 내뻗곤 하던 ‘어퍼컷 세리모니’도 나올 턱이 없었다. 대신 스페인의 골잡이 ‘비야의 매직’이 있었다. 부트라게뇨-라울 등 스페인의 골잡이 명맥을 이어받은 다비드 비야는 이날 동물적인 득점감각으로 혼자서 3골을 기록(유로2008 1호 해트트릭)하며 스페인의 4대1 대승을 선도했다.
비야의 첫번째 매직이 번득인 것은 전반 20분. 러시아의 공세를 차단한 스페인 수비라인은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길고 빠른 패스로 단박에 러시아 최종수비라인 바로 앞에서 어슬렁거리던 페르난도 토레스에게 연결했다. 한고비만 넘기면 골키퍼와 맞서게 되는 상황에서 토레스는 무리하지 않았다. 쏜살같이 뒤따라온 비야에게 가볍게 패스, 비야는 볼것없이 슈팅을 날려 러시아 골네트를 출렁이게 했다.
비야의 두 번째 매직 역시 전광석화 역습으로 엮어낸 것이었다. 전반 43분. 동점골을 위해 공격에 치중하다 빠른 역습에 러시아 포백수비가 우왕좌왕하는 사이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의 예리한 스루패스가 침투되자 비야가 매처럼 나꿔채 가볍게 추가골로 연결했다. 러시아 포백수비는 키가 크고 체력은 강했으나 기민함과 조직력이 떨어져 위기대처에 미숙했다. 그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비야처럼 발빠르고 눈치코치 빠꼼이인 선수를 낚겠다고 엉성하게 오프사이드 트랩을 친 것은 방문 열쇠를 내주는 행위나 다름 없었다. 두 번째 골 허용을 두고 히딩크 감독은 경기후 기자회견에서 학원축구에서도 안나오는 멍청한 짓이라고 질타했다.
후반들어 히딩크 감독은 수비수를 줄이고 미드필더를 늘리는 등 모험을 걸었다. 그러나 이는 공격강화보다 수비허술을 초래했다. 그 틈을 비야가 삼세번 헤집었다. 후반 30분. 오른쪽 하프라인 부근에서 세스 파브레가스로부터 긴 패스를 받은 비야는 허겁지겁 가로막는 러시아 수비수 3명을 이리저리 따돌리며 문전에 근접, 완승확인 3호골을 작렬했다.
이판사판 공세에 나선 러시아는 후반 40분 파블류첸코가 헤딩으로 한골을 넣었으나 스페인은 막 인저리타임에 들어가는 후반 45분 파브레가스의 헤딩골로 그로기상태의 러시아를 녹다운시켰다.
◆스웨덴(1승) 2 - 0 그리스(1패)
문화는 로마가 그리스로부터 배웠다. 축구는 그리스가 로마(이탈리아)로부터 배웠다. 그리스의 유로2004 우승과정을 보면 영락없이 들어맞는 얘기다. 비록 9일 네덜란드에 초토화되기는 했지만, 카테나치오(빗장수비)로 상징되는 이탈리아축구의 철학은 간명하다. 골을 먹지 않으면 지지 않는다(You don’t concede a gaoal, you don’t lose). 또 있다. 우승은 수비로 하는 것이다(Defense wins championship).
4년 전 그리스가 그랬다. 유로2004 본선에 오른 것만 해도 할일 다한 것처럼 평가됐던 그리스는 승리는 보너스다, 좌간 지지 말자는 심산인 듯 줄창 수비에 치중하다 간간이 기습으로 결승까지 올라가 결국 일을 냈다. 웅크렸다 치고 빠지는 기습작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준준결승, 준결승, 결승에서 차례로 1대0 승리를 거뒀다.
10일 스웨덴과의 경기도 그런 양상이었다. 승부 앞에 디펜딩 챔피언의 자존심 같은 건 사치다. 하프라인 부근에 공격수 한두명만 놔두고 그리스는 아예 성문을 걸어잠근 채 자기골문 앞에 웅크렸다. 그러나 스웨덴은 4년 전 그리스에 당한 포르투갈 등 강호들의 전철을 밟지 않았다. 그리스 공격수가 없어도 최종수비라인 서너명은 좀체 하프라인을 넘지 않았다. 그리스의 역습에 대비한 숫적우세를 확보해놓은 상태에서 파상공세를 펼쳤다. 때문에 그리스는 몇차례 역습을 하기는 했지만 중간에 차단되는 등 문전접근 자체가 쉽지 않았다.
굳게 닫힌 그리스 성문이 끝내 열린 것은 후반 21분. 쉴새없이 공세를 퍼부으면서도 밀집방어 때문에 불발탄 오발탄을 남발했던 스웨덴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중거리포로 비로소 성문을 열어제쳤다. 밀집방어에는 역시 중장거리포가 약이었다. 스웨덴으로서는 65분 이상 계속된 소득없는 백병전에 종지부를 찍고 승리를 반쯤 익혀놓는 골이자, 이브라히모비치 개인으로서는 2005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조국에 바치는 골이었다.
이 골은 또 그리스 선수들을 별수없이 벌판으로 나오게 만드는 유인골이기도 했다. 스웨덴으로선 오히려 기회이기도 했다. 첫골까지 66분이 걸렸지만, 그 빈틈을 탄 추가골(페터 한손)은 불과 6분만에 나왔다. 그것으로 승부는 결판났다. 수비전문 그리스가 그리스 못지 않게 터프한 스웨덴을 상대로 남은 17분동안 2골이나 넣는다는 건 아무래도 어려웠다. 다만 그리스는 빗나간 슈팅을 남발하는 다른 팀과는 달리 6차례 역습슈팅이 하나도 빠짐없이 유효사격(shots on goal)으로 연결되는 등 예리한 면모를 보여줬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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