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골골 3대0 완승 네덜란드 질풍노도 공격에
이탈리아 빗장수비 풀렸다
아주리군단, 유로대회서 첫 3골차 패배
’오렌지군단’ 네덜란드가 디펜딩 월드컵 챔피언인 ‘아주리군단’ 이탈리아를 3대0으로 완파하고 ‘죽음의 조’ C그룹에서 가장 먼저 승점 3점을 확보했다. 같은 조 프랑스와 루마니아는 일진일퇴 공방 끝에 0대0 무승부를 기록, 나란히 승점 1점씩 챙겼다. 네덜란드(1승) 3 - 0 이탈리아(1패)
프랑스 (1무) 0 - 0 루마니아(1무) 네덜란드는 19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에서 이탈리아에 2대1 승리를 거둔 이후 지금까지 꼬박 30년동안 단 한번도 이탈리아에 이겨본 적이 없다.
카테나치오(빗장수비)로 유명한 이탈리아는 유로대회에서 단 한번도 3점차 이상 져본 적이 없다. 화려한 공격을 자랑하는 네덜란드는 늘 구경꾼들에겐 화끈한 볼거리를 제공하되 자신들은 그다지 실속을 챙기지 못했고, 빈틈없는 수비를 자랑하는 이탈리아는 구경꾼들에겐 끈적끈적 볼품없이 지루한 경기를 보여주곤 하지만 자신들이 챙기는 실속은 대체로 두둑했다. 과장하면, 네덜란드는 승리는 안중에 없고 관중을 위한 서비스에 치중하는 것 같았고, 이탈리아는 관중은 안중에 없고 오로지 패하지 않기 위해 축구를 하는 것 같았다고 할 수 있다.
9일 스위스 베른에서 벌어진 유로2008 C그룹 네덜란드-이탈리아 경기는 이 두가지 통설을 화끈하게 뒤집었다. 네덜란드의 창(공격)이 이탈리아의 방패(수비)를 30년만에 완벽하게 뚫어버린 한판승부였다. 양팀 사령탑의 색깔도 뚜렷이 대조됐다. 네덜란드의 마르코 반 바스텐 감독은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오렌지군단의 공격첨병이었고,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도나도니 감독은 80년대 아주리군단의 수비사령관이었다.
네덜란드의 이탈리아전 30년무승 징크스 대탈출의 서곡은 논란의 여지가 다분한 어부지리 골이었다. 킥오프 휘슬이 울리기 무섭게 좌우날개를 이용해 활발한 공격을 펼치던 네덜란드는 전반 26분 벌칙구역 왼쪽 모서리 부근에서 반 브롱크호르스트가 강하게 때린 땅볼성 슈팅을 이탈리아 수비라인 뒤에 도사리고 있던 장신골게터 뤼트 반 니스텔루이가 오른발로 방향만 꺾어 선제골을 얻어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사태에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지안루이지 부폰 골키퍼는 몸도 써보지 못했다.
공이 브롱크호르스트의 발을 떠나는 순간, 이탈리아 최종수비라인이 쳐놓은 오프사이드 그물에 니스텔루이 등 2명이나 걸려들었으나 심판은 니스텔루이가 킥 이후 침투한 것으로 판단해 이탈리아 선수들의 항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때늦은 항의 이전에, 세계최고 부폰 골키퍼가 라파엘 반더파르트의 우중간 프리킥을 쳐낸다는 것이 또다시 네덜란드의 요리스 마테이선에게 안기는 바람에 화를 자초했다.
이 골에 대한 논란(실은, 니스텔루이도 골세리머니를 시작하다 미심쩍은 듯 뒤를 돌아보며 주심의 눈치를 살필 정도였다)을 잠재우려는 듯 환상의 쐐기골은 5분뒤에 나왔다. 그것도 만회를 위해 공세에 나선 이탈리아의 문단속 허술을 틈탄 전광석화 기습골이었다.
이탈리아 안드레아 피를로의 ‘실패한 코너킥’을 네덜란드의 브롱코호르스트가 왼쪽 터치라인을 따라 질풍같이 대시해 이탈리아 벌칙구역 오른쪽 외곽으로 길게 띄어주자 카윗이 헤딩으로 안쪽으로 연결했고, 쇄도하던 스나이더가 몸을 날리며 오른발로 터닝발리슛, 공은 달려나온 부폰 골키퍼를 살짝 피하고 니어포스트를 스칠 듯 골문 안으로 감겼다. 마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아르헨티나-잉글랜드의 준준결승 때, 아르헨티나의 땅딸이 축구신동 디에고 마라도나가 ‘신의 손’ 헤딩골을 터뜨린 뒤 훗날의 논란을 씻어내려는 듯 센터서클에서 문전까지 환상의 드리블로 수비수 대여섯명을 제치고 쐐기 결승골을 빚어냈던 것과 같은 멋진 골이었다. 이날까지 6게임에서 나온 유로2008 최고걸작골로 손색이 없었다.
궁지에 몰린 이탈리아의 반격도 거셌다. 둘째골까지 볼점유율에서 54%46%로 밀리던 이탈리아는 빗장을 풀고 공격모드로 전환, 볼점유율의 균형을 되찾았다. 도나도니 감독은 07-08시즌 세리에A 득점왕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를 투입(후반 19분)하는 등 최소한 무승부를 위해 총력전을 폈다. 그러나 아주리군단 주장이자 세계최고 중앙수비수 파비오 카나바로의 부상결장으로 가뜩이나 헐거워진 이탈리아 수비그물은 더욱 헐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수비수 파누치 등은 공격에 가담하느라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다. 젊고 빠르고 영리한 네덜란드의 양날개는 그 틈을 여지없이 후볐다.
이탈리아의 교체멤버 파비오 그로소의 결정적 슈팅을 에드윈 반 데사르의 선방으로 막아낸 네덜란드는 곧바로 허허벌판 오른쪽 공간을 타고 번개역습을 개시, 카윗의 크로스의 문전크로스에 이은 브롱크호르트스의 방아찧기 헤딩으로 세 번째 골을 완성했다(후반 34분). 허겁지겁 달려든 잠브로타는 슬라이딩을 하며 걷어내려 했으나, 그것은 골문 왼쪽아래 구석으로 향하던 볼의 방향을 약간 안쪽으로 돌려놓는 구실밖에 못했다(1994년 미국월드컵 때 콜롬비아의 수비수 안드레아스 에스코바르가 미국전 자책골 때문에 귀국 뒤 살해당한 사건을 계기로, 수비수의 몸에 맞고 들어간 골이라도 해당수비수의 ‘상당한 자책성’이 없으면 슈터의 득점으로 인정된다).
사실상 상황끝. 축구실력 못지않게 준수한 용모에다 긴 머리 치렁치렁 그라운드를 누볐던 도나도니 감독은 여전히 멋있는 중년이 돼 아주리군단을 이끌었으나 3골이나 얻어먹은 것이 믿어지지 않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달 21일 맨U-첼시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첼시의 마지막 키커 아넬카의 슈팅을 막아내며 맨U우승의 수호신으로 떠올랐던 반데사르 골키퍼는 이날 7차례나 골 같은 슈팅을 선방했다. 이탈리아의 부폰 골키퍼도 비록 3골을 먹기는 했지만 6차례 세이브를 기록했다. 피터 프로이펠트 주심을 이탈리라 선수들의 피해과장 할리웃액션(다이브)에 속지 않기로 작심한 듯 여간해서는 휘슬을 불어주지 않았다.
한편 이 경기에 앞서 스위스 취리히에서 벌어진 같은 조 프랑스와 루마니아 경기는 0대0 무승부로 끝났다. 미셸 플라티니(현 유럽축구연맹 회장)가 이끌던 1984년, 지네딘 지단이 지휘했던 2000년에 이어 3번째 우승을 노리는 프랑스는 경기초반 강하게 압박했으나 루마니아의 두터운 수비벽에 거듭 막혔고, 행여 뚫더라도 마무리가 서툴렀다. 리베리는 왕성한 체력으로 시종 그라운드를 누비고 몇차례 결정적 득점기회를 만들기도 했으나, 지단처럼 경기의 완급을 조절하고 단번에 수비망을 무력화하는 킬러패스가 덜 다듬어져 득점빚기에 실패했다. 프랑스의 최고골게터 티에리 앙리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출장하지 않았다.
반면 루마니아는 수비에 치중하다 역습기회가 생기면 투톱 아드리안 무투와 바넬 니콜리타에게 연결해 득점을 노렸으나 골문 이전에 마켈렐레, 말루다 등 지독한 미드필더들이 버티는 중원을 넘기도 벅찼다. 이따금 중원을 통과해도 튀랑, 사뇰 등 수비라인에서 걸려들기 일쑤였다. 그러나 루마니아도 중원싸움에서는 매우 거칠고 세밀한 면모를 보였다. 이 때문에 양팀은 전반전에는 유효슈팅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치열한 허리싸움과 빗나간 문전노크로 일관했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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