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과 실패, 성공의 밑바탕
강요는 오히려 부작용 초래
학생시절에 생물실에서 뱀이 껍질을 벗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벗어놓은 껍질 눈 부분에 말간 플래스틱 렌즈 같은 것이 있는 게 너무나도 신기했다. 그런데 더 신기했던 것은 PBS TV에서 본 바다가재다. 바다가재도 일 년에 한 번씩 껍질을 벗는데 매년 그 때가 되면 마치 무거운 오버코트를 벗어 놓듯이 들썩들썩하면서 몸통과 머리 전체의 껍질을 한 조각으로 벗어놓는다. 그리고는 계속 움직이는데 껍질을 벗어놓은 후 약 10분 동안에 속살의 바깥 부분이 굳어지면서 새로이 껍질로 변하는데 그 때가 바다가재가 외형으로 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한다. 버리는 것이 자라는 것의 필수조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다.
얼마 전에는 한 신실한 집사님이 곧 결혼할 자녀들과 드린 가정예배를 자랑스럽게 얘기하시는 것을 듣고 순간적으로 장난기가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십여년을 해오던 가정예배를 애들이 자세가 흐트러져서 폐지시켰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해보았다.
그분은 자녀의 결혼을 목전에 두고 그동안 아들과의 시간들을 회상하면서 잘 커준 아들이 대견하고 고마워서 하신 말씀일 터인데 필자의 짓궂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다소 조심스럽다. 부디 감옥에서 사역하는 목사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고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 말은 감옥에서 사역하면서 인생에 실패하고 들어온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해주는 말은 결코 모범 답안을 제시해 주기보다는 실패했을 때에라도 그것이 나의 연약함을 아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으로만 이어진다면 그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다는 말이다.
필자가 처음 하나님과 만나게 된 것도 큰 성공의 자리에서가 아니고 뼈아픈 실패 속에서 좌절해 있을 때였다. 마침 업무상 방문한 손님의 요청으로 어느 교회를 찾아갔었는데 그 때 그 교회에서 들은 말씀이 “시련을 기쁘게 여기라”(야고보서 1:2)라는 말씀이었고, 이어서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야고보서 1:9-10)라는 말씀이었다.
그 말씀이 어떻게 큰 위로가 됐는지 성경에 있는 다른 말씀들을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성경이 말해 주는 복음의 말씀으로 얼마나 큰 힘을 얻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차후에 깨닫게 된 것은 성공만으로는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것, 즉 실패 없는 삶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은 삶이라는 생각이었다.
그 이유는 실패는 손실이 크고 아플 수도 있지만, 실패는 우리의 삶의 하나의 매듭을 지어주고 우리 삶에 꼭 필요한 쉼을 얻게 해주는 계기도 된다는 것이다. 삼국지에서 보아도 지장은 병사를 혹사시키며 전진만 시키는 것이 아니고, 병사들이 언제 쉬어야 하는 것을 알아서 적시에 쉼을 줄줄 아는 장수이다. 미군이 주축을 이룬 연합군이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로 전진해갈 때도 가장 궁금했던 것은 공격도 공격이지만 언제 어디서 그 대군이 대소변을 보고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할까 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마음이 급하고 임무가 중해도 쉼이 없이는 그 대장정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부모로서 자녀가 아직 슬하에 있을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모든 학과도 중요하고 건강한 몸과 마음을 단련하게 하는 것, 또 학우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사회성을 갖추어 주는 것 등, 이런 모든 것이 필요하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언제 쉬는 틈을 갖는가 이다. 그리고 또 성공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기회에 조그만 실패의 예방주사를 맞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뇌리를 울리는 것은 어렸을 때 입시지옥의 피곤함에 못 이겨 할머니 할아버지 방에 잘 들어가곤 했는데 하루는 아랫목에서 곤하게 낮잠을 자고 있는 내 모습을 보시고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에그, 저 크는 것 봐라, 애는 자면서 큰다고”하신 말씀이었다. 혹 부모님 중에 “공부해야 할 놈이 공부는 하지 않고 낮잠만 자고 있어!”라고 나무라는 잔혹한 부모님은 없으리라고 믿는다.
그런데 우리 부모로서 유의할 것은 학과와 체력은 계획을 세워놓고 그 계획에 따라 가르칠 수 있으나 충분히 쉬게 하는 것이나 실패와의 만남은 오로지 평상시 유념하고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그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사에 유념하고 대비를 하되 너무 불패의 환경과 조건을 마련해 주느라 노력할 필요는 없다. 음식도 너무 깨끗한 것만 먹고 너무 위생적인 곳에서 자란 아이들은 면역성이 없지 않은가! 아직 못 잊는 것은 1967년 처음 미국에서 맞은 겨울이다. 온 학교가 감기 때문에 휴교를 하고 기숙사도 병실로 전환하다시피 한 적이 있었는데 필자는 막 한국에서 와서 “아니, 감기도 무슨 병이라고 이 소동을 피우나?”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아직 열악했던 한국에서 자란 필자는 온 학교를 알아 눕힌 감기도 전혀 문제가 아니었지만 똑같은 피를 받은 우리 애들은 어쩔 수 없이 감기 하나만 걸려도 약을 코에 달고 다니는 약체 ‘미제’가 되어 있지만 말이다.
꼭 기억할 것은 숨도 내쉬어야 들이킬 수 있고 바닷가 파도도 썰물이 있어야 밀물이 있듯이 자녀들의 성장에도 적절한 휴식과 또 때로는 실패도 유익이 된다는 사실이다. 마찬가지로 공부도 신앙도 또 가정예배도 다 그러한 갈구가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고 강요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항상 굴곡이 없는 삶은 오히려 메마르기가 쉽고 자칫 위선의 늪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때로는 밀고 때로는 밀리되, 항상 부족함도 긍정적으로 받아줄 수 있는 아량을 얻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마치 우리 할머니의 대견해 하시기만 한 말씀같이.
(213)210-3466, johnsgwhang@yahoo.com
황석근 목사 <마라선교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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