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창 주택 매물이 쏟아질 때의 일이다. 라우든 카운티의 일부 지역 주민들이 특별 한 모임을 가졌다. 공지사항을 전하고 타운 발전을 의논하기 위해 매달 열리는 홈오너들의 회의가 아니었다.
결정 사항은 단 한가지. ‘For Sale’ 간판을 함부로 뜰에 내걸지 말자는 것이었다. 한 집 건너 집을 판다는 간판이 걸리니까 동네가 ‘고스트 타운‘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고 그러면 주택 가격이 더 떨어질테니 서로 자제하자는 자구책이었던 셈이다.
부동산업계와 융자업계의 반성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워싱턴 지역 부동산 거래가 줄기 시작한 시점이 2005년 여름부터라는 견해도 있고 그해 말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2006년부터는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다.
그 때부터 부동산 에이전트와 융자업계 종사 한인들 가운데 6개월 동안 한 건도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한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주택 경기 붐을 타고 갑자기 늘어나 한 때 1,000명을 넘기도 했던 한인 부동산 중개인들에게 돌아갈 파이는 이미 제한돼 있었다.
부동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돈을 너무 쉽게 버니까 너도 나도 달려들었으나 솔직히 무자격자도 많았다”고 고백했다.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이 한글로 된 시험 문제를 외워서 찍기식으로 면허증을 취득한 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올바른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줬을 리 없고 그저 한탕 크게 해서 목돈을 만져 보자는 생각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는 뼈아픈 반성이다. 이런 에이전트들은 영어를 못하고 정보도 없으니 주변 가족이나 인맥을 상대로 거래를 할 수밖에 없고 그마저 거래가 없어지자 실업자 신세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융자업계 내에서도 이런 사태가 되기까지 책임이 없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예상 외로 부동산 붐이 오래 가고 대출 조건도 과거 보다 쉬워 웬만한 사람이면 집을 살 수가 있긴 했지만 시스템을 너무 편의적으로만 이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이다. 심한 말로 “강아지도 융자를 받을 수 있다”는 농담이 돌 정도였다.
한 관계자는 미국 융자업계도 마찬가지였다면서 “주택을 구입할 때 소비자가 알아야 할 적절한 정보를 전달하고 조언을 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부추긴 점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월 페이먼트가 소득의 3분의 1 수준이 될 때 적당한데 단기 시세 차익만 내다보고 과욕을 부리는데도 서로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한국식 부동산 투기는 안된다
그러나 결국 모든 책임은 투자자 자신에게 있다는데 이견이 없다. 땅 좁고 인구 많은 한국에서 소위 ‘재테크’라는 미명 아래 몇 번씩 집을 굴려 떼돈을 번 경험을 살려 여기서도 한 번 성공해 보려했던 계획이 여지없이 깨져버린 것이다.
메리필드 타운센터 288개 유닛 가운데 반 이상을 한인들이 구입했을 것이라는 얘기는 인종간 비율을 따져볼 때 많아도 너무 많다고 혀를 내두르게 하고 있다.
심지어 매입자들 가운데는 미국에 잠시 여행 왔다가 즉석에서 집을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
부동산전문가들은 80년대 말 이번과 비슷한 일이 벌어진 적이 있었지만 한인들이 별로 교훈을 얻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무리한 투자로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 가운데는 그 당시 이미 쓴맛을 본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한인들이 판단이 흐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미 주류사회를 포함한 전문가 집단의 장밋빛 전망도 큰 원인이 됐다. ‘워싱턴 지역은 소수계 유입이 많고 인구가 계속 증가하는 지역이다. 연방 정부가 있어 고용 시장이 튼튼하다’ 등등 쏟아지는 정보들을 보면서 한인들은 주택 시장에 투자를 하지 말아야할 이유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숏세일·은행과 협상 방법도
한인 부동산 에이전트 C씨는 90년대 초보다 더 강력한 부동산 경기 침체를 몇 년 째 겪고 있지만 과거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되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투자에 나서주길 당부하고 있다.
메리필드 콘도 사태에 대해서도 그는 “빌더 입장에서도 억울한 면이 있겠으나 앉아서 계약금을 떼일 수는 없는 일이니 집단 소송도 나쁘지는 않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계약금을 잃더라도 그나마 다행인줄 알고 새롭게 시작하자고 말하는 것은 덜컥 큰 건물을 사놓고 페이먼트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날 신세에 처한 사람에 비하면 처지가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던 집에서 에쿼티를 뽑아 2채, 3채를 더 산 사람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매달 버는 돈이 고정돼 있는 상황에서 엄청난 페이먼트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C씨는 “숏세일 등을 통해 처분할 것은 과감히 정리하되 그래도 어려우면 적극적으로 은행과 협상을 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며 “도움이 별로 안되는 말이지만 길은 찾는 사람에게 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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