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망의 대상이 되는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통용되는 생존법칙이 있다. 우선 공부하는데 투자하는 시간에 비례하여 전공자들의 경쟁 대열에서 탈락하는 비율이 좌우된다는 법칙이다. 어려운 공부를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한 그룹이 해당 전문 분야에서 자리 잡을 확률이 더 높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10~15년을 공부하는 의사들의 경우는 100명 중에서 10~15명 정도가 낙오하여 다른 길을 가고, 5~6년 정도 공부를 하는 미국 변호사들은 20~40% 정도가 중간에 다른 업종으로 방향을 바꾼다. 회계사나 펀드매니저 등 첨단 전문직도 공부한 기간에 비례하여 그 탈락률이 좌우된다고 보면 크게 그르지 않다.
부동산 브로커나 에이전트도 성공하면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대체적으로 쉽게 라이선스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생존율이 희박하다. 부동산 브로커로 일을 시작한 사람 가운데 10~15%가 경쟁을 뚫는다. 그리고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 중에 7~8%의 소수 정예가 전체 거래 물량의 85~90%의 부동산을 움직인다고 보아도 된다. 내 입으로 말하기 뭐하지만, 미국의 부동산업계에서 뉴스타부동산 그룹이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매출 규모가 30억달러에 이른다는 사실은 그래서 큰 의미가 있다.
우리 뉴스타부동산 그룹은 알다시피 미국의 메이저 부동산 그룹인 ‘ERA’의 프랜차이즈 회사다. 최근 수년 동안 ‘ERA’ 프랜차이즈 소속 부동산회사 중 3위권 내에 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2005, 2006년에는 하늘에서 별을 딴다는 4.000여개의 지사 중 당당히 1등을 했다 .
주변에서는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ERA’를 떠나 독자적인 글로벌 부동산 브랜드로 거듭나는 문제에 대해서도 거론을 하는데, 아직은 시기상조다. 한국계로서 갖는 태생적인 한계가 분명히 있다. ‘ERA’나 ‘센추리21’ 같은 메이저 부동산회사로 키워내고 싶은 욕심도 있고, 그럴 능력이 된다고도 생각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계 부동산회사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기운칠삼’이든 ‘운칠기삼’이든 나에게 행운이 있었음을 우선 시인한다. 한인 커뮤니티의 성장과 한국의 국제적 위상 제고 역시 내 비즈니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후광이었다. 그것이 아니고서는 내 성공을 이야기하기 어렵다.
나는 그레이트 웨스턴사의 헌팅턴비치 오피스에 적을 두고 처음 에이전트 업무를 시작했다. 사무실 출입구 앞의 번잡한 곳에 내 책상이 놓였으나 개의치 않고 에이전트 ‘크리스 남’을 광고하는 문제에 집중했다. 새내기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출입구 곁의 자리라도 활용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했다. 나같이 처음 시작한 에이전트가 임자 없이 방문하는 고객들을 가장 먼저 만나 상담할 가능성도 많았기 때문이다. 광고를 해서 알려진다면 사무실에 방문한 고객이 가장 먼저 나를 발견하고 더욱 반가워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광고에 심혈을 기울였다. 돌아보면 무모하달 정도로 광고에 몰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업무를 시작한 첫 한 달 동안 나는 8,000달러를 광고비로 지불했다. 이것은 내가 청소업을 하며 번 돈 전부를 건 큰 도박이었다. 나중에 그 돈이 얼마나 큰지를 셈해보니 내가 미국에 와서 4년간 뼈 빠지게 청소를 하면서 저축한 돈의 5분의1에 달했다. 1988년 당시의 8,000달러는 지금의 원화 800만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목돈이었고, 어쩌면 2,000만원 정도의 가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돈이 얼마나 가치가 있고 모으기 힘이든 줄은 살아본 자만이 안다. 임금의 대부분을 각종 할부금으로 지불하여 거의 저축을 못하는 미국인들의 기준으로 보아도 상당히 큰 액수였다.
다른 부동산 에이전트와 비교해도 내가 그때 쓴 광고비는 엄청나게 많은 돈이었다. 그 당시 “제법 한다”하는 부동산 업자들도 한 일간지에 일주일에 1회 정도 3단 ½짜리(신문 전면은 15단임) 광고를 하는데 그쳤다. 그런데 나는 한인 교포사회의 양대 일간지인 한국일보와 중앙일보에 각각 주 6회 광고를 내보냈다. 다른 에이전트에 비해 최소한 10배 이상 광고비를 쏟아 부은 셈이었다.
신문 광고뿐 만이 아니다. 버스 정류장 벤치에도 골프장 스코어 카드에도 내 사진과 이름이 새겨진 광고를 내붙였고 각종 판촉물을 만들어 내 이름을 알렸다. 아무튼 ‘남문기’라는 이름 석자를 알릴 수 있는 곳이라면 장소와 구조물을 가리지 않고 붙였다. 나중에 대형 빌보드 광고도 하게 됐는데, LA 한인 중에서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버스 정류장 벤치와 빌보드에 광고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었다. 광고 문구는 이 한 마디였다.
“잘하겠습니다.”
혹자는 이것을 파상적인 공세라고도 하는데, 나는 에이전트 초보자가 겁도 없이 시도한 대공습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광고 분야의 혁명이라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때까지 아무도 그렇게 광고하는 사람은 없었다. 광고계에서도 이것은 신선한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태풍으로 받아들여졌다. “잘하겠습니다”라는 광고 카피는 에이전트를 새로 시작하는 나를 알리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이보다 더 확실하게 에이전트로서의 의지를 보여주는 말은 없었다. 말하는 내 쪽에서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고, 듣는 쪽에서는 공손하고 겸허하게 들리는 구호였다.
광고 전략은 적중했다. 속된 말로 대박이었다. 업무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나는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잘하겠습니다”란 말은 그 당시 한인사회에서 유행어가 되었다. 그리하여 내가 나중에 활동하게 되는 오렌지카운티의 가든그로브 지역에서 남문기, 미국명 ‘크리스 남’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됐다.
LA서 남쪽으로 30마일 정도 떨어진 가든그로브는 당시 안정 주택지로 한인들의 관심이 높은 요지로 꼽혔는데, 광고를 통해 이 지역 사람들의 인식에 남문기를 심어놓을 수 있었다. 또한 일간지를 통해 남가주 한인들이 내 얼굴과 이름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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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기
<뉴스타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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