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스에 6대5 진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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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 어릴리야 등 노장들 맹타
9회말 2점홈런등 아찔위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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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연일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근거가 몇 있다. 연봉 40만5,000달러의 신인투수 팀 린시쿰(사진)이 단연 희망목록 넘버원 아니면 넘버투다. 소년티 물씬한 앳된 얼굴에 호리호리한 체격(5피트11인치/170파운드), 게다가 유난히 하얀 피부, 그래서 상(모습)에 집착하는 이들에겐 위압적인 승부사의 풍모가 덜하다는 느낌을 주기 쉽지만, 그의 어깨에서 뿜어나오는 공은 강력하고 부드럽다. 시속 96, 97마일짜리 패스트볼은 거의 언제나 마음먹은 곳에 박힌다. 80-90마일대 체인지업과 브레이킹볼은 위에서 아래로, 동시에 K존 안팎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타자들을 농락한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인 덴버의 쿠어스필드는 투수들의 무덤으로 불린다. 로키산맥 중턱, 해발 1마일의 높디 높은 곳에 터잡은 쿠어스필드에서는 기압차이 때문에 평지 같으면 평범한 플라이로 처리될 공이 공기저항을 덜 받아 은근슬쩍 담장을 넘어가버리기 일쑤다. 이런저런 감안해 외야수들은 대개 깊숙한 수비를 펼친다. 그 틈에 단타도 잘 터진다. 투수들이 쿠어스필드라면 고개를 가로젓는 이유다. 90년대 후반 시즌 22승을 거두며 메이저리그 최고투수로 이름을 날렸던 마이크 햄턴은, 적어도 기록만 보면, 콜로라도 로키스로 옮긴 뒤 커리어를 망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20일 오후 이곳에서 벌어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콜로라도 로키스의 경기. 6연패 늪에 빠진 자이언츠가 선발투수로 내보낸 린시쿰도 이날은 린시쿰다운 위력을 보이지 못했다. 6이닝동안 5안타를 맞고 4볼넷을 내주며 3실점을 했다. 삼진아웃은 6차례. 경기를 보지 않고 기록지만 봤다면 그만하면 잘했다고 말할 수 있는 성적.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첫 3이닝동안 타자들과 정면승부를 제대로 못해 걸핏하면 불리한 카운트에 몰렸고 용케 볼카운트가 유리해도 거의 매번 주저하는 듯했다. 이날 솎아낸 삼진 6개 중 적어도 두세개는 나쁜 공에 타자들이 헛스윙을 해 거저 주운 것이나 다름없었다(물론, 노련하고 실력있는 투수들은 타격의 신이라도 못쳐낼 압도적인 공으로 승부하는 게 아니라 지나고보면 그걸 왜 쳤나 싶은 유인구로 공으로 타자를 골탕먹이는 법이지만). 린시쿰 자신도 경기 뒤 인터뷰에서 내가 생각해도, 지금까지 최악의 게임 중 하나였다며 정말 애먹었다고 실토했다.
자이언츠의 마무리투수 브라이언 윌슨은 더 헤맸다. 초반에 진 경기는 아예 지고 초반에 이기는 게임도 뒷심이 달려 끝물에 뒤집히기 일쑤였던 자이언츠가 4대3으로 아슬아슬 1점차 리드를 유지하던 9회초 2점을 보탰다. 3점차 리드. 자이언츠 덕아웃에 8, 9회에 여유로운 웃음꽃이 번진 것은 근래 보기 드문 장면이었다. 9회말. 팀 린시쿰(1-6회, 3실점) 케이치 야부(7회, 0실점) 타일러 워커(8회, 0실점)에 이어 4번째로 마운드에 오른 브라이언 윌슨에게 주어진 임무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탈없이’ 타자 3명 아웃, 그것이었다.
첫 타자 오마 퀸태닐라. 방망이는 큰 원을 그리며 허공으로 치솟았다. 큰 것을 노리는 스윙이었다. 방망이 살짝 걸린 공은 회전각이 달랐다. 퀸태닐라의 방망이 속도보다 느리게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향하며 땅에 크게 튕겼다. 바운스도 컸다. 3루수가 잡으려다 못잡고 달리던 관성에 투수쪽으로 더 달렸다. 그러나 자이언츠 유격수는 오마 비스켈. 바운스된 공은 느려터진 속도로 꾸물거리지 3루수는 시야를 가리지, 그 고약한 상황에서도 11차례 골드글러브에 빛나는 비스켈은 어느새 3루수가 놓칠 걸 예상하고 공이 빠져나갈 길목을 지키고 있다 침착하게 잡아내 해프스탭을 밟으며 1루로 송구, 몇인치 차이로 같은 이름의 타자주자를 솎아냈다. 1루심의 손이 올라가는 순간 로키스 팬들은 아우성을 쳤지만 두세차례 보여준 리플레이는 족집게 판정이었음을 거듭 확인시켰다.
한숨을 돌린 윌슨은 2번째 타자 잔 베이커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보냈다. 주자없이 2아웃. 이제 스트라익 3개만 던지면, 그게 아니라 땅볼이든 플라이볼이든 뭐든 타자 1명만 잡으면 되는 상황. 그러나 숱한 명언을 남긴 전설적 포수 요기 베라(전 뉴욕 양키스)의 말처럼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이 야구다. 한국에선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라고 했던가.
다음타자 스캇 포세드닉의 중전안타가 터졌다. 해설자는 포세드닉이 안쪽 높은 공을 잘치는데 하필 그곳으로 공이 갔다면서 다음타자 클린트 바메스도 굿-하이볼 히터라고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런데 바로 그 직후 윌슨의 손을 떠난 공은 정확히 몸쪽 K존에 걸리고 거의 겨드랑이 높이로 바메스를 향했다. 이날 4타수 무안타로 부진했던 바메스의 방망이가 여지없이 돌아갔다. 맞는 순간 큰것(2점홈런)임을 직감한 로키스 팬들은 늦바람 신바람이 났다.
산 넘어 산. 강타자 맷 할러데이가 1볼2스트라익에서 역시 약간 높은 직구를 통타, 오른쪽 담장을 맞히는 2루타를 쳤다. 전광판 때문에 우측펜스가 더 높았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군말없는 동점홈런이었다. 다음타자는 로키스의 상징 타드 헬튼. 불펜투수가 거의 바닥난 자이언츠 코칭스탭은 걸려보내라는 사인을 보냈다. 2사 1, 2루.
마지막 타자는 개럿 앳킨스. 초구는 바깥쪽 스트라익. 2구는 더 바깥쪽에 더 낮은 볼. 거의 같은 코스에 던진 3구는 파울볼. 윌슨은 서둘지 않았다. 앳킨스도 속지 않았다. 4구 볼. 그렇게 불안했던 윌슨이 회심의 승부구를 던졌다. K존에 걸치는 듯 꼬리를 흔들며 바깥으로 휘어나가는 스트라익. 큰 원을 그리며 허공을 가른 앳킨스의 헛스윙과 함께 자이언츠를 괴롭혔던 연패악몽은 끝났다.
결국 승리를 지키긴 했지만 워낙 애를 먹인 터라 좋아라 표시도 못내고 어정쩡한 표정을 짓는 윌슨을 대선배 비스켈이 다가와 툭툭 쳐주며 격려했다. 7회부터 덕아웃에서 조마조마 지켜봤던 린시쿰은 또다시 놓칠 뻔한 6승째를 챙겼다. 자이언츠 공격선봉 랜디 윈은 이날도 안타를 생산해 15게임 연속안타 행진을 이었고, 리치 어릴리야는 2회 기선제압 솔로홈런을 포함해 4타수3안타로 이날 공격을 주도했다. 자이언츠는 18승29패가 됐고, 지난해 내셔널리그 챔피언답지 않게 올시즌 초반농사가 엉망인 로키스는 18승28패가 됐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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