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 / 수필가, 환경엔지니어
=====
퇴근길에 주유소 앞을 지난다. 보통유, 탈납유, 특별유의 가격이 연일 치솟고 있다. 건너편에 물 배급소(water station)란 간판이 보인다. 사람들이 지친 표정으로 물통을 들고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표지판을 보니 탈염수(脫鹽水) 갤런 당 $4.99, 재생수 $5.99. 천연수 $6.99로 적혀있다. 나도 하루치를 빨리 사려고 허둥대다가 인심사납게 생긴 뒷사람에게 떠밀려 넘어진다. 뒤통수를 깨고 일어나니 꿈이다.
목마른 가뭄이다. 2008년 여름이 채 오기도 전에 가뭄이 선포되었다. 지구 반대편 미얀마에선 폭우가 몰아쳐 십수만명이 생명을 잃는 수재를 당했는데 이곳 북가주엔 지난 석 달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 2년째 계속된 가뭄이 악화되고 있다. 지난 주, 이스트베이 수자원국(EBMUD)은 가뭄비상을 선포하고 강제(mandatory) 절수령을 발표했다. 조만간 캘리포니아 다른 지역 수도국들도 뒤따를 것이다.
북가주의 강제 절수는 근 20년 전, 7년 가뭄에 시달렸던 1991-93년이래 처음이다. 2년 연속 극심한 한발로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적설량이 평년의 1/3도 안 된다. 게다가 눈이 녹는 봄철이면 저수지의 수량이 늘어야하는데 오히려 줄고있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눈 속의 수분함유량이 적은데다 증발이 가속화되기 때문이다.
이번 가뭄비상으로 이스트베이 가정집들은 19% 절수해야한다. 골프장 잔디나 나무 등에 주는 물은 30%이상 줄여야한다. 당장 집 주위를 물로 청소하는 것, 잠금 밸브 없이 세차하는 것, 일주일 사흘이상 연거푸 잔디에 물주는 것 등을 금지하고 있다.
이런 절수령 시행을 점검키 위해 수자원국은 순찰대까지 배치하고 있다. 초기엔 홍보에 주력하겠지만 지나친 낭비자들에겐 벌금을 물리고 심한 경우 단수조치도 취하게 된다. 7월중 공청회를 열어 수도세 10% 인상도 단행할 계획이다. 수도세를 더 내지 않으려면 지난 3년 평균 사용량보다 10% 절수해야한다.
이런 규제들 때문에 가뭄이 올 때마다 인심이 각박해짐을 느낀다. 이웃과 이웃끼리 서로 물을 낭비하는지 감시하게 된다. 부주의로라도 잔디 물을 장시간 주면 고발정신이 강한 미국인들은 서슴지 않고 당국에 알린다. 한 사람의 물 낭비로 전체 커뮤니티가 손해볼 수 없다는 공공의식 때문이다.
지역과 지역간의 갈등도 심하다. 우선 버클리 언덕을 경계로 동서지역이 나뉜다. 해안을 낀 버클리나 오클랜드시는 내륙지방인 월넛크릭이나 산라몬 보다 훨씬 서늘하다. 오래된 도시들이라 정원크기도 작다. 그런데 내륙의 신흥도시들은 너른 정원과 수영장까지 갖춘 대저택들이 즐비하다. 이들과 똑 같이 19%절수 적용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허나 수도당국은 같은 수도권 구역 내에서의 선별적용은 부작용이 더 크다고 주장한다.
물 때문에 나라와 나라간의 갈등은 더 큰 문제다. 제일 큰 화약고가 이스라엘과 시리아다. 요단강의 상류수원인 티베리아스 호수의 물 사용권이 평화협상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기후 변화와 오염 때문에 2025년까지 20억 인구가 마실 물이 없어 고통받게 될 것이라고 한다. 3차 세계대전은 물 분쟁으로 시작할 것이란 예측은 우리를 섬뜩하게 한다.
내년에도 북가주에 가뭄이 계속된다면 초비상이 걸릴 것이다. 긴 한발에 대비해 적극적인 절수운동과 함께, 바닷물을 이용한 탈염 정수시설. 폐수를 재활용하는 재생수 시설에 대한 연구가 진행돼 왔다. 아직 실용화는 멀었지만 물 값이 더 치솟으면 꿈에서 본 물 배급소가 생겨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게 아니리라.
가뭄에 대처하는 일은 좀더 절수하는 일이다. 우선 집안에 물새는 데가 없는지 살펴보자. 불편해도 샤워를 좀 짧게 하고 정원물도 밤에만 주도록 고쳐야할 게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인심마저 피폐해 지지 말자는 게다. 살림이 어렵고 가뭄에 시달릴 지라도 여유와 감사를 잃지 말자는 거다. 엄청난 재난을 당한 미얀마의 수재민들, 중국의 지진 피해자들의 고통을 돌아보며 인정이 담긴 손길을 펴 보이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