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몬교 이탈파 일부다처 집단으로부터 400명 이상의 미성년자들을 텍사스 주 정부에서 데리고 나와 보호 중인 사건은 아직 계류 중이다. 자식 양육에 있어서 부모의 친권이 존중되어야 하는 게 원칙이지만 자식들을 성폭행 등의 학대로 위태롭게 하는 경우 국가의 ‘부모권’이 발동되어 부모의 자식 양육권을 박탈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국민을 보호해야할 국가 또는 정부가 인종말살, 인종청소 등의 범죄나 인류에 대한 다른 범죄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위태롭게 하는 경우는 어떠한가. 미얀마의 이라와디 삼각주 지역이 5월2일 태풍 나기스에 의해 강타 당한 나머지 10만 이상이 목숨을 잃은 비극에 더해 200만 명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당장 안전하게 마실 식수가 부족하고 먹을 게 없어 아사할 지경인데다 방치된 시체들 때문에 콜레라 등이 창궐해서 더 많은 희생자들이 속출할 위기인 상황에서 미얀마 군사정부의 행동은 모든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보도된 것처럼 군사정부는 유엔이나 국제민간단체 구조요원들의 비자를 신속히 내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미국, 영국, 불란서 등 여러 나라의 원조 제의를 거절하거나 선별적으로 받아들여 이재민들의 생존 가능성을 더욱 위태롭게 하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인도주의적인 구조 활동에 있어서의 심각한 위기”라면서 미얀마 군사독재자들의 태도 변화를 촉구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유엔이 미얀마 정부의 의사를 무시하고 이재민 구호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가? 이론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개념이 있다. 유엔 창설 60주년인 2005년 9월에 유엔 총회는 많은 국가 원수들이 참여한 전체회의를 통해 인종말살, 전쟁범죄, 인종청소 및 기타 인류에 대한 범죄로부터 (국민을)보호해야할 책임에 관한 문서를 채택했기 때문이다. 각 국가가 그렇게 할 책임이 있는데 미얀마 군사정부처럼 어느 국가가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유엔은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평화로운 방법으로 그 나라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그 문서에 나와 있다. 그러나 그런 고상한 개념이 있다고 해서 쉽게 실천으로 옮겨지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미얀마 정부의 비인도적인 처사 때문에 희생자들이 더 생기기 전에 그 정부의 동의가 없이 인도주의적인 원조를 그 나라에 투입하자는 발의를 불란서 정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했지만 상임이사국들 중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비상임이사국들 중 남아연방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중국은 또한 미얀마 정부로 하여금 외국의 원조 제공을 받아들이고 국제자선단체들의 구호작업을 허용하도록 촉구하는 결의문조차 반대하고 나섰다.
중국의 반대 이유는 자명하다. 미얀마 군사정부의 결정에 대해 왈가왈부하며 그 결정에 반대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그 나라 국가 주권에 대한 침해이며 내정간섭이라는 이유다. 유엔이 초국가적인 세계정부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170여 개 주권국가들의 연합체일 뿐이라는 현실로 보면 그럴싸한 이유다. 사실 2005년 9월의 ‘보호할 책임’이라는 유엔 문서의 채택 배후에는 12년 전 르완다에서 유엔군의 증파만 있었어도 방지되었거나 인명피해가 줄어들었을 것이지만 세계정부가 아니라는 제약과 아울러 강대국들의 수수방관 때문에 인종말살 사건으로 확대되어 80여 만이 참혹한 죽음을 당한 대참사에 대한 회한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문서가 거의 유명무실에 가까운 것은 수단의 다프르 지역에서 지난 몇 년 동안 벌어져온 인종청소작업, 살육과 강간과 약탈의 계속으로도 알 수 있다.
중국으로서는 수단이나 미얀마에 국제 개입을 반대하는 것이 티베트나 인권 탄압사태로 중국에도 국제적 간섭을 불러올까봐 그리 하는 것이리라. 또 중국, 미얀마, 그리고 아프리카의 거의 모든 나라들은 19세기 전후에서 20세기 중엽에까지 이른 소위 선진국들의 가혹한 식민지 시절에 대한 역사적인 기억이 있기 때문에 전 식민세력이 제공하는 원조나 조언을 일단 배척하거나 의심하는 경향도 있을 것이다.
소위 민주주의 국가에도 문제가 많지만 미얀마의 군사독재, 북한의 김 씨 세습왕조나 중국 공산당의 독재 같은 상황에서 민초들이 겪고 있는 고생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최근 5만 명 이상이 죽은 중국 산서성에서의 지진 피해에 대한 중국 당국의 신속한 대응은 아마도 8월 8일의 올림픽 때문에 의식하는 국제적 시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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