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생각의 꼬리를 잘라 본다. 언제부터인지 잊고 살았던 그 텃 밭 끝자리에 앉아 본다. 버릇같이 그냥 그리해 본다. 마음이 무엇인데 비운다고 비워질리 있고, 자른다고 뿌리 뽑힐리 있겠는가? 오고 가는 인연이 그렇게 칙칙하고, 가고 오는 인연은 저렇게 살벌한데 말이다. 누구는 생각때문이라고 옷자락 당기며, 이름 불러 일깨우겠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은산철벽(銀山鐵壁)에 갖힌 몸이라 해도 한 생각 멈추고 쉴 수 있다면 ‘도랑 하나쯤’은 건너 뛸 수 있다고 말들 하지만, 쉰다는 그 “쉼”인들 어찌 그리 쉽겠는가.
4월을 보내며, 시인 도종환 형제(진길, 본명; 아우구스티노, 53)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아픈 몸과 지친 마음을 추수르려 지난 4년전, 훌쩍 산으로 올라 간다. 자연에 묻혀 쉰다. 시간을 붙드려 매고 고요속에 잠긴다. 어쩌면 그는 장님(盲人)처럼 보고, 귀머거리(聾者)처럼 듣고, 벙어리 (啞子)처럼 말했을 것이다. 그의 몸과 마음이 되 살어 난다.
새 살도 돋아 난다. 시집 “해인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모습을 드러 내고,“축복”의 노래는 우리들 마음을 적신다. “이른 봄에 내 곁에 와 피는/봄꽃만 축복이 아니다. /내게 오는 건 다 축복이었다./ 고통도 아픔도 축복이었다.”시인은 내 한 몸에서 이웃으로 축복의 나래를 편다.”뼈저리게 외롭고 가난했던 어린 날도/내 발을 붙들고 떨어지지 않던/스무 살 무렵의 진흙덩이 같던 절망도/생각해보니 축복이었다.” 한 세대가 격어야 했던 시대의 아픔까지도 용서한다.
거인같은, 바위같은 편견과 어리석음과 탐욕의/ 방파제에 맞서다 목숨을 잃은 이가 헤아릴 수 없거늘/이렇게 작게라도 물결치며 살아 있는 게/복 아니고 무엇이랴”
시인의 앉은 자리가 부럽다. 삶과 사랑이 하나되어 춤 춘다.사랑을 함께 가꾸는 마음. 하느님의 은총만을 믿고, 축복에 감사하는 그 마음 자리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감사가 영그는 “축복”은 이렇게 다짐하며 끝 맺는다.”육신에 병이 조금 들었다고 어이 불행이라 말하랴/내게 오는 건 통증조차도 축복이다/죽음도 통곡도 축복으로 바꾸며 오지 않았는가/ 이 봄 어이 매화꽃만 축복이랴/내게 오는 건 시련도 비명도 다 축복이다”(시집46쪽)
이제 5월을 맞으며, 시인의 ”돈오의 꽃”을 살핀다.올 해는 불기 2552년.오는 12일은 아기 부처님이 오신 날이다. 연꽃을 뿌리고 연등을 밝혀 우리곁에 오심을 함께 반기며 기린다.
시인은 “화엄을 나섰으나 아직 해인에 이르지 못하였다.”(해인으로 가는 길 12쪽)고 말 문을 연다. 돌고 돌다 지친 시인은 “바다의 그림자가 비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눕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지금은 바닥이 드러난 물줄기처럼 삭막해저 있지만/언젠가 해인의 고요한 암자 곁을 흘러/화엄의 바다에 드는 날이 있으리라/그날을 생각하며 천천히 천천히 해인으로 간다”고 속삭인다.시인은 꼭그리 할 것이다.그 길목에서 “돈오의꽃” (해인으로 가는 길32쪽)도 보고, 마음자리에 허공만 남는 입질도 맛 보았을 것이다.시인은 말한다.
“…../연꽃 들고 미소짓지 말아라/연꽃 든 손 너머/허공을 보지 못하면/아직 무명이다.”
세존께서 빙그레 미소짓는 마하가섭존자에게 이른 말이 어떠했던가.”나에게 있는 정법 안장(正法眼臧),열반묘심(涅槃妙心),실상무상(實相無相),미묘법문(微妙法門),불입문자(不立文字),교외별전(敎外別傳)을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이로써 가섭존자는 불가의 전통 제1조사가 된다.
그렇다면 가섭존자는 무엇을 물려 받었던가.”이심 전심(以心 傳心)”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주는 “그 무엇”을 얻었을 뿐이다. 세존을 시봉하기 20년, 가섭을 모시기 20년. 총명다문하기로 이름 높았던 70세의 ‘아난존자’께서도 얻지 못했던 “그 무엇”이 과연 무엇인가. 시인은 “버리고 죽어서/허공 된 뒤에” 만나는 ‘큰 허공’과 ‘우주’를 내 세운다. 참으로 비고 빈 그것. 그냥 텅 빈것인가. 무엇인가로 꽉 차 있는”참 빈 것”인가?
‘버리고 죽어서’치룰 수 있는 잔치라면 오즉 좋겠는가. 그러나 “버리겠다는 것은 어떻게 버리고, 죽겠다는 그 것은 어떻게 죽일 것인가” 참으로 어렵고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시인도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비오고 바람 분다”고 이르고,”매일 별똥이 지고/어둠 몰려 올 것이다”라고 말문을 닫었을 것이다.신수(神秀)대사가 들으시면 뭐라 하실까? 성철 큰
스님께서 들으시면 또 뭐라 하셨을까? “쉬어라”, 생각의 머리를 끊고 들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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