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관광단 일행이 북경의 명릉 사당에 도착한 것은 교통 혼잡 때문에 늦어져 관람시간 마감인 5시 직전이었다. 20대의 중국인 여자 관광 안내인에게 미국인들이 불평을 터트리자 그는 잠깐 기다리라면서 그 관광명소 경비대원에게 접근해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차창에서 보였다. 우리에게 뛰어온 안내인은 들어갈 수 있게 되었으니 빨리 내리라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웬걸 경비대가 일렬로 도열한 가운데 안내원이 우리 일행에 앞장서서 들어가니까 경비대원들이 일제히 거수경례를 해서 우리들이 놀라게 되었다. 한 시간 가량인지 잘 보고 나와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관광 안내원이 고백할 게 있다는 말이었다. 자기가 경비대장에게 “저 사람들은 올림픽 개최장소 선정 시찰단원들로서 특히 키가 큰 사람은 한국의 전 수상 이수성 씨인데 내일은 다음 나라로 가게 되었으니까 오늘 꼭 이곳을 보고가야 한다”라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 거짓말이 통할 정도로 당시엔 올림픽 유치에 온 나라가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인 2001년 8월 북경이 2008년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된 다음 중국은 올림픽 준비에 열을 올려왔다. 경기장들의 건설, 도로 확장, 그리고 선수촌 아파트 건축 등 북경의 면모가 달라져오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1988년도 올림픽 개최 때문에 세계 속의 한국으로 국위와 유수기업들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왔던 것을 본받고자 하는 속셈이 있을 법하다. 19세기 초부터 중국은 잠자는 사자인 줄 알았더니 기껏해야 잠자는 돼지 정도였다고 구미 강국들의 깔봄과 천대를 받아 절치부심해왔었는데 이제는 세계 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되었다는 민족적 자존심이 팽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올림픽 건설 붐으로 토지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잃은 수많은 북경 시민들이 울부짖는 데모는 공산당 독재 아래 보도될 리가 없는 어두운 구석이다. 또 민주주의나 인권 신장을 요구하는 젊은이들이 데모를 하거나 인터넷에 정부 비난 글을 게재하기만 해도 공안 당국이 들이닥쳐 체포 구금되는 게 예사다. 특히 티베트 문제에 대해 중국은 민감하다. 티베트 독립은커녕 달라이 라마 등이 주장하는 티베트 자치권 내지 그의 귀국조차 거론되지 못하게 원천봉쇄를 하고 있다.
얼마 전에 티베트에서 일어난 승려들 등의 데모를 유혈 진압한 때문에 중국의 올림픽 불꽃계주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애당초 130일 동안에 8만5,000마일의 거리에 올림픽 불꽃을 돌리겠다는 발상 자체가 중국 사람들이 세계의 감정에 둔감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티베트 독립 내지 자치권을 옹호하는 티베트 사람들과 동조자들이 런던, 파리 등지에서 소위 ‘올림픽 성화봉송’을 방해한 것은 TV로 보도된 바 있다. 사실은
남선우 칼럼
올림픽 聖火奉送 이란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표현이다. 영어로는 Light, Flame, Torch로서 거룩하다는 의미가 전혀 없지만 중국 올림픽 당국, 아니 중국 정부와 미디어가 Sacred란 말을 수식어로 쓴 것을 한국 신문들이 무비판적으로 성화라 번역해서 쓰는 모양이다. Relay 에도 하나님께 봉사한다는 의미가 전혀 있을 수 없어 봉송이란 말 자체가 외람되며 계주(繼走)라 번역해야 마땅할 것이다.
올림픽 불꽃계주를 마치 고대 올림픽에서 유래한 전통처럼 설명하는 것도 틀린 일이다. 사실 그 전통은 히틀러와 그의 선전상 괴벨스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개최에 앞서 나치 독일의 국위와 나치주의를 선양하기 위해 독일 유명 영화감독에게 명령해서 만들어진 행사라는 게 정설이기 때문이다. 워낙 불꽃 자체는 올림피아에서 태양열로 거울을 이용하여 발화시킨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계속시키기 위해서는 건전지를 사용한 화학적 불꽃일 수밖에 없다니까 결국은 가짜 올림픽 불꽃이라야 맞다. 그리고 계주라고 하지만 특별 점보 비행기로 나라와 도시 사이를 잇게 되니까 진정 뜀박질도 아니다. 그리고 ‘중국 인민경찰의 성화 보호조’라는 건장한 체구의 젊은이들이 불꽃 경비 임무를 맡고 있다. 파리에서 데모대에 의해 불꽃이 꺼질뻔한 다음 중국 국민의 반응도 너무 지나친 것 같다. 미국 듀크 대학 중국 유학생이 티베트 학생들과 중국 학생들의 화해를 자청하고 나섰다가 그 자신만 살해 위협을 받은 게 아니라 그의 부모들의 성명 주소가 인터넷에 게재되는 바람에 집을 버리고 도망한 예가 대표적이다.
올림픽 후에 중국에 민주화의 기미가 보일까? 일당 독재 아래서는 어림도 없지만 소련 제국의 붕괴를 회고해보면 무슨 격변이 있을 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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