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정치인들에 대한 기사를 읽고 있노라면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으로 마음 한 구석이 어두워지고 사람에 대한 실망으로 입안이 씁쓸해지곤 한다.
자기가 불리해지면 상대방의 약점을 들춰내고 경쟁자를 내려 쳐서 자기 점수를 올리려는 노력들. 보이지 않는 것까지 다 들춰내고 없는 것까지 거짓으로 만들어서라도 적수를 쓰러뜨리고자 하는 행동들. 다 듣고 나면 그게 그것인 것을 갖고 자기 것이 더 낫다고 국민들 앞에서 목청 높여 외치는 모습들. 이기는 것만이 지상목표라는 의식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들이다.
자기 모습이 뭇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의식조차도 결여되어 있는 듯 싶다.
내가 월등하길 원하면 상대방을 공격하는 대신 자기 실력을 월등하게 키워서 그 특수성으로 국민을 감동시켜 줄 수는 없을까. 진심으로 국민을 앞세우는 인격 있는 정치인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그 사람을 떠올릴 때 국민들의 마음이 밝아지고 즐거워질 수 있는 그런 정치인은 불가능 한 것일까.
“왜 그렇게 순진하세요.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사람은 정치세계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한 분이 내게 짜증난다는 듯이 대답했다.
나이가 60 가까이 되어 가면서도 난 왜 아직도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저 버릴 수가 없는 것일까. 왜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고 또 찾고 싶을까. 더 나아가서 그래도 우리 모두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난 사람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잘 아는 사람이다. 매일 마음 아픈 사람들과 만나 상처투성이인 아픈 마음을 치유하려고 애쓰는 사람으로서 사람이 사람에게 주는 상처가 얼마나 크고 무서운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미안해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인격을 짓밟으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인간의 모습인지를 피해자의 고통에 참여하면서 알게 됐다. 간접경험도 우리의 행동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다. 사람은 보는 대로 변화하게 되어 있다. 어떤 모습을 오래 보며 경험하면 그 모습이 우리 뇌 전두엽에 찍히게 된다. 그리고 우리도 그와 비슷한 상황에 들어갈 때 그와 똑같은 행동을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내 주위 사람들이 공격하고 내리치고 하는 것을 오랜 세월 동안 보고 들으며 살다 보면 그 땐 그 행동들이 그렇게 싫었을지라도 그와 비슷한 상황 속에선 나도 모르게 그와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매를 맞고 자란 사람이 자기 자식을 또 때리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도 크고 작게는 다 정치인들이 아닌가. 온 국민의 스팟라이트를 받지는 않지만 내 활동반경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다. 크고 작은 회사 안에서도, 그리고 사회단체 안에서 자기 목적을 위해 다른 사람을 밟고 일어서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서로를 가장 보호하고 사랑해야 하는 가정 안에서 까지도 자녀의 고통은 아랑곳 않고 이기기 위해 부부가 서로의 약점을 들추고 공격하면서 싸우는 부모들도 있지 않은가.
목적을 위해 네거티브한 싸움을 마다 않는 정치 세계를 보면서 우리는 이들보다는 좀 더 현명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소한 인생을 사는 이유가 목적 달성이 아니고 어떤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내 모습이 어떠하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삶의 과정을 즐기며 함께 가는 옆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힘을 넣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느냐가 더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60이 다 되어서야 인생은 한 문제를 해결하면 또 해결할 다른 문제가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산을 몇 개를 넘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인생이라는 산을 넘어 가는 과정에서 내 모습이 얼마나 진실 되고 다른 사람을 향해 얼마나 여유 있는가, 또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행복한 순간들을 선사하면서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남기고 가는 것은 나의 이미지뿐이다. 특히 내 자녀들의 머릿속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느냐는 정말로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자녀도 내가 심어준 것과 똑 같은 모습으로 그들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살아가는 내 모습이 내 자녀들의 미래의 행복지수를 이미 결정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믿는다. 그러면서 시인 천상병 선생의 글을 다시 한번 떠 올린다.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다.”
이순자
상담 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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