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모임에서 ‘시인과 촌장’의 가수 하덕규씨를 만나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첫 눈에도 그의 노래에 부합되는 사색적인 분위기의 맑은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영혼을 울리는 그의 노래 ‘가시나무’를 좋아해, 노래방에서 시도했다가 끝내지 못한 무모함을 보인 적도 있다. 많은 사람이 아는 것처럼,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자아로 가득 차 내 안에는 하나님의 자리가 없음을 고해성사처럼 고백한 노래다.
이해인 시 ‘날마다 조금씩 내가 죽지를 못해 내 안에 그대로 죽어 계신 분이여’를 연상시키는 이 노랫말이 떠오른 것은, 지난 주의 ‘건강교회 포럼’을 반추하면서였다. LA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주최한 이 행사는 여러가지로 생각거리를 남겼다. ‘교회임직 문화’가 주제였다. ‘良藥苦口利於炳’(양약고구이어병·좋은 약은 입에는 쓰나 병을 고치는 데는 유익하다)을 몰라서일까. 기윤실 관계자들을 빼면 참석자들은 별로 많지 않았다.
교단별로 제도가 좀 다르긴 하지만, 장로, 안수집사, 권사 등의 임직은 다툼과 분열을 불러오는 대표적 불씨다. 이로 인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선거운동과 서명운동이 벌어지기도 하고, 마음에 안 맞으면 교회를 옮기는 ‘철새’들도 생겨난다.
남의 나라에서 이민자로서 살면서 분출되지 못하고 갇혀 있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커서일까. 이민사회에서는 한국보다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 같다. 하지만 대형 교회는 대형 교회대로,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문제 해결의 길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의 기윤실은 이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 교회들이 참고할 수 있는 ‘모범 정관’을 만들기도 했다.
진정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믿는다면 이제 교계는 문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눈물의 기도 속에서, 교인들의 지혜를 모아 정관과 제도를 시비가 없도록 수정해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수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라고 했든 말든 꼭 한 자리 해야겠다는 사람들이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 자신이 ‘종’이라는 자실을 망각한 채 직분을 ‘계급’이나 ‘감투’로 착각하는 사람도 회개해야 한다.
고대 유럽의 켈트(Celt)족에게는 ‘가시나무새’의 전설이 있다. ‘알에서 깨어나 둥지를 떠나는 날부터 가시나무새는 숙명처럼 아무도 원치 않는 험한 가시나무를 찾아다닌다. 가시나무를 발견하면 그 새는 가시덩굴 속을 날아다니다 가장 날카로운 가시를 찾아 자기 가슴을 찌른다. 그리고는 붉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그 순간, 모든 고통을 참으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운다. 가시나무새가 숨지면서 내는 처절한 소리에 감동해, 천지만물은 침묵 속에 귀 기울이고, 하늘의 하나님도 미소 짓는다.’ 가장 큰 희생을 통해 가장 고귀한 인류구원을 이룬, ‘손과 발을 못 박히고 가시관 쓴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를 연상시키는 내용이다.
요한복음 6장은 ‘오병이어’의 기적 후 예수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그리스도의 길은, 왕관을 피해 가는 십자가의 길이었다. ‘No Cross, No Crown’의 실천이었다.
임직문제에 있어서 교회가 예수의 이 마음을 품을 수는 없을까. 아무리 힘들어도 예수를 닮기 위해, 교역자와 교인 모두 자아를 죽일 수는 없을까.
옛날 문제가 없는 교회를 찾는 젊은이에게 찰스 스퍼전 목사가 했다는 말 “혹시 자네가 완전한 교회를 찾으면 내게도 알려주게. 그러나 자네는 절대 그 교회에 등록하지는 말게. 자네가 끼는 날부터 그 교회의 완전은 깨질테니까”를 떠올리며 생각해 본다.
김장섭 종교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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