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이 풀리기 시작한 것일까. 민주당 경선 후보 버락 오바마가 다시 악재에 부딪쳤다. 인종문제에 얽힌 ‘갓 댐 아메리카’ 논쟁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은 지 한 달도 채 못돼 또 발목을 잡힌 것이다. ‘서민을 내려다보는 우월한 엘리트 오바마 ?’ - 어떻게 보면 선동적인 제레마이어 라이트목사와의 관계보다 더 파괴적일 수 있는 고약한 악재다.
한두주 잠잠하던 경선 주변이 지난 주말부터 벌집 쑤신 듯 시끌시끌해졌다. 허핑턴포스트라는 웹사이트의 대선취재 블로그 ‘오프더버스’에 눈길을 끄는 기사가 올라온 것은 금요일 오전 6시30분 이 좀 넘어서였다. 웅변의 대가 오바마의 실언이라는 뜻밖의 횡재를 발견한 힐러리 진영은 이 기사를 사방으로 퍼 날랐고 몇 시간 만에 조회 수는 25만 건을 넘어섰다.
오바마 지지자인 시민기자 메이힐 파울러가 ‘개인의 입장과 기자의 본분’ 사이에서 갈등하다 올린 기사의 배경은 열흘 전 샌프란시스코의 한 저택에서 열린 기금모금 파티였다. 1인당 1천달러, 당연히 부유한 기부가들이 모인 자리였다. ‘사건’은 정말 사소하게 시작되었다. 한 참석자가 22일 펜실베니아 예선에 맞춰 캠페인 자원봉사를 가려는데 그곳 분위기가 어떠냐고 물었다. 펜실베니아와 미중서부 소도시의 근로계층 주민들은 지난 25년동안 실직만 늘어난채 형편이 좋지 않다고 전한 오바마는 그만 이렇게 덧붙이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좌절감에 대한 표현으로 그들이 적의에 차있고(bitter), 총기와 종교에 매달리거나(cling) 자기들과 다른 사람들을 싫어하고 반이민과 반무역의 정서를 갖게 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닙니다”
정치해설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는 오바마의 기본 실수는 단어의 선택이다. 가혹하고 모질고 적의에 차있다는 뜻을 가진 bitter는 부정적이고 무기력한 단어다. 차라리 분노한다거나, 좌절하고 있다는 단어를 썼더라면 훨씬 나을 뻔 했다. 오죽하면 이번 구설수가 ‘비터게이트’로 명명되었겠는가.
게다가 cling 이라는 단어를 써서 가난하기 때문에 총과 하나님에 매달린다고 분석하며 주민들의 생활 중심인 종교, 즐기는 사냥의 도구인 총기와 반이민, 인 종차별을 동일선상에 묶어버린 셈이 되었다.
보수신문 월스트릿저널은 미국 서민의 불안과 고뇌를 내려다보는 ‘하버드 엘리트 오바마의 우월한 시각’이 부지불식간에 드러난 것이라며 ‘미국인들은 오바마에 대해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고 경고했다. 진보신문 워싱턴포스트도 오바마의 진의야 근로계층에 대한 공감표현이었겠지만 ‘후보는 유권자를 분석하는 해설가의 역할을 해서는 안되며, 부유층 앞에서 저소득층의 심리를 분석하지 말라는 가장 기본적 캠페인 전략을 어기는 실수를 했다’고 지적했다.
힐러리는 마지막 일 수도 있는 이 호기를 놓칠 새라 맹공을 가했고 오바마는 해명과 사과를 번갈아가며 발 빠른 조기진화에 나섰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비터게이트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이다. 오바마가 럭키하다면 교황방문 등 큰 뉴스에 묻혀 그럭저럭 가라앉을 수도 있지만 점점 확대되어 ‘또 다른 오바마’에 대한 의구심으로 번질 수도 있다.
가장 간단한 진단은 여론조사인데 금년 여론조사는 그리 믿을 만하지 못하다. 이번 주 나온 펜실베니아 주민 대상 조사만 해도 ARG의 경우 힐러리 지지율이 57%로 오바마의 37%를 압도적 누르며 급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터게이트의 영향이다. 그러나 LA타임스의 조사에선 46% 대 41%의 힐러리 약간 우세로 비터게이트 전과 별 차이가 없다. ARG조사의 신뢰도는 하위권에 속하고 LA타임스 조사 역시 이번 예선의 유권자가 아닌 무소속까지 조사대상에 포함시켜 정확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비터게이트에 대한 시각은 저마다 다르다. 필라델피아에서 압승을 거두고 그 여세로 인디애나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기를…은 힐러리 진영의 전략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해설가들은 그건 희망사항에 가깝다고 일축한다. 이들은 오바마의 비터게이트가 경선고비는 성공적으로 넘길 것이라고 진단한다.
문제는 그 이후다. 만약 오바마가 민주당 후보가 된다면 ‘갓 댐 아메리카’ 논쟁과 사기횡령범 토니 레즈코와의 친분에 더해 비터게이트의 망령은 가을 본선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힐러리의 공격이 심하다지만 경선에서의 검증은 연습게임에 불과하다. 본선에서 공화당이 가해 올 공격과 검증은 무자비할 만큼 가혹할 것이다. 그 시험대 앞에 섰을 때 백전노장 매케인에 비해 신참 후보 오바마의 어떤 면모가 드러날 지 민주당 내의 우려가 쌓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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