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품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최근 회자되고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1923~1997)의 작품 ‘행복한 눈물’을 보았을 것이다. 예술적 가치뿐 만 아니라 상업적 가격이 상당히 관심을 갖게 하는 이 작품을 보면서 이 작품이 왜 그렇게 비싸고 훌륭한 그림인가를 알게 된다. 만화 같은 그림이면서도 무엇인가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에 더욱 더 관심을 갖게 한다. 사람은 울면서도 웃고, 웃으면서도 웃고, 행복해 하면서도 불행하고, 불행해 하면서도 행복해 하는 것이 우리 사람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조각가 로댕(Fransois Auguste Rene Rodin)이 조각한 지옥의 문을 보면 인간의 여러 가지 희로애락의 감정들을 통해 인간 삶의 어려움과 죄악들을 보여 준다. 시동생과 형수와의 사랑, 배고파서 자기 아들을 먹고자 하는 아버지의 고통 들을 통해서 인간 삶의 모습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 준다.
정호승 님의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의 시를 보면 이런 시어가 있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하여 단 한 번도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어느 누구나 자기 인생에 대해서 늘 호의를 베풀고 살고 있다. 배부르게 해주고 싶고, 옷을 사 주고 싶고, 맛난 것을 사 주고 싶다. 그러나 인생 그 자체는 나에게 후하지 않는다. 얼마나 인색한지 모른다. 그럴지라도 유쾌하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프레시안 플러스의 대표인 이근영의 ‘막시무스의 지구에서 인간으로 유쾌하게 사는 법’이란 책을 보면 인생의 과정에서 누구나가 삶의 문제를 당하게 된다. 하지만 유쾌하게 사는 사람은 인생을 비극이 아닌 희극으로 볼 줄 알았고, 자신을 괴롭히는 주변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기보다 그들과 더불어 살아갈 방법을 찾아냈으며, 남의 단점보다는 자신의 단점을 먼저 돌아보며 인생의 문제들에 대해 유쾌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라고 했다. 유쾌하게 사는 사람은 내가 세상을 보고 웃으면, 세상도 나를 보고 웃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유쾌(愉快)하게 사는 사람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의 흐른 땀을 씻어준대요” 이것이 자연이 부는 상쾌함이다. 자연은 늘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다. 사람은 변해도 자연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산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 변화는 의도적인 변화가 아니라 세월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자연의 순리인 것이다. 상쾌함을 알게 되면 세상의 오염과 세속 속에서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순수 모습을 갖게 된다.
자연의 상쾌(爽快)한 순리를 알게 되면 사람을 터득하게 된다. 사람은 자연과는 다르다. 사람은 자연보다는 더 지혜롭고 현명하다. 하지만 자연은 오래 있지만 사람은 오래 살 지 못한다. 그 짧은 세월을 살면서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깨닫기도 전에 시간의 쳇바퀴 안을 돌면서 인생의 달리기를 마치게 된다. 자연은 모든 것을 감싸고 받아 준다. 자연의 상쾌함은 사람에 대하여 흔쾌(欣快)하게 된다. 사람에 대해 애정을 갖고 사람을 존중하며 사람의 말을 들어주게 된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태복음5:41-42)
어려운 제안이고, 결정하기 쉽지 않은 것이지만 이런 것과 같은 작은 일들에 대해서 흔쾌하게 받아 줄 때 어떤 일이나 작업도 경쾌(輕快)하게 할 수 있다. 글렌 밴 에케렌(Glenn Van Ekeren)의 ‘즐겁게 일하라’를 보면 일을 할 때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일을 하라고 했다. 음악의 리듬처럼 경쾌하게 살고 경쾌하게 일을 할 때 통쾌(痛快)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다산 정약용이 쓴 한시 不亦快哉行(불역쾌재행-이 어찌 통쾌한 일 아니겠는가)라는 시의 한 부분에서 이렇게 읊는다. “타향 땅 귀양살이 대궐 생각 그지없어 등잔불 앞에 앉아 잠 못 이뤄 하는 때에 홀연히 금닭(金鷄) 울어 기쁜 소식 전하려나 집에서 보낸 편지 내 손으로 뜯어보네 이 어찌 통쾌한 일 아니겠는가”
유쾌함, 상쾌함, 흔쾌함, 경쾌함, 통쾌함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부러운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을 막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행복한 눈물과 웃음을 함께 소유한 사람인 것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