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리는 목소리가 매력적인 ‘검은 머리 솔새’(warbler)는 ‘불법이민 철새’이다.
매년 봄이면 먹이를 찾아 남미지역을 떠나 캐나다 북부지역까지 국경을 넘어 2,500마일의 대이주를 감행하면서도 비자도, 이민서류도 없는 검은 머리 솔새는 이민서류를 갖추지 않은 ‘서류미비’ 이민철새, 즉 ‘히스패닉 철새’인 셈이다.
조류학자들은 조류를 세 가지로 분류한다고 한다. 이동을 하지 않은 채 태어난 곳에서 붙박이로 살아가는 텃새, 600~ 1200마일을 이동하는 단거리 이동철새, 2,000마일 이상을 이동하는 장거리 이동철새로 구분하는데 대체로 1/3이 텃새에 해당되며 2/3가 철새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조류의 2/3가 이민 철새인 셈이다.
2003년 동남아시아 지역에 H5N1조류 독감이 확산돼 100여명이 사망했던 당시 철새들은 조류 독감 확산의 주범으로 지목돼 철새들의 국경을 넘나드는 이동문제가 심각한 국제문제로 떠오른 적이 있다.
조류학계에는 이들의 이동경로와 번식행태에 대한 연구조사가 진행됐고 국제적으로 철새 이동에 대한 경보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사실상 철새들의 이 불법이민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가 논의됐다. 연구결과 조류독감 확산의 주원인이 철새보다는 가금류의 수출입에 더 큰 원인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결국 이 문제는 유야무야되고 말았지만 불법이민 철새들에게 ‘비자심사’나 ‘이민심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1,300여만 명으로 추산되는 불법이민자, 소위 서류미비 이민자 문제가 미국의 가장 큰 사회 현안 중 하나이지만 사실 이민문제는 더 이상 미국만의 문제라 할 수 없을 만큼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21세기 들어 이민문제로 소요사태까지 경험한 바 있고 이민자를 송출하는 국가였던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 역시 이민문제가 국가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1세기 들어 전 지구적 문제로 떠 오른 이민문제는 20세기 끝자락부터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다.
FTA(무역자유화 협정)니 WTO체제니 하는 현재 진행형의 이 세계화가 전 지구적 규모의 대규모 이주, 특히 불법이민 현상을 낳고 있다는 말이다. 세계 각국 정부들의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자본 중심의 세계화로 자본의 국경은 이미 허물어졌는데도 사람이 국경을 넘나드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는 반쪽짜리 세계화의 부조화가 근년 들어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각국이 몸살을 앓고 있는 불법이민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다.
자본의 세계화 진전과 맞물려 전 세계 노동자들의 지구적인 이주 수요와 욕구는 증가했으나 ‘이민장벽 더 높이 쌓기’로 세계화에 역행한 것이 현재 목도하고 있는 미국 등 각국의 불법 이민 문제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거대 자본과 정부 사이에 이뤄지고 있는 세계화는 WTO, FTA 등 각종 국제조약과 협약 등으로 자본의 국경은 없앴지만 국경장벽을 더욱 높이 곧추세우는 모순이 가속화되면 될수록 이민문제를 해결한 방법은 더욱 찾기 힘들다.
불법이민자를 실체로 인정한 다음에야 바로 이민문제의 해결책을 찾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했던 것이 좌절된 ‘포괄이민개혁안’의 정신이었다.
이 이민개혁안이 좌절된 후 미 전국에서 반 이민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민노동자들이 일하는 일터에서는 경찰이 가세한 저인망식 이민 단속 작전이 횡행하고 이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법안들이 봇물 터지듯 하면서 이민자 사회가 우려를 금하지 못하고 있다.
안토니오 비아라이고사 LA시장은 최근 연방정부에 일터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이민 노동자 단속을 자제해줄 것으로 간곡히 요청했다고 한다. 이들 불법 이민노동자들을 미 경제를 움직이는 실체적인 존재로 인정해달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전 지구적인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반세계화에 대한 목소리도 점차 더 높아지고 있는 것도 바로 자본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한 세계화를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경을 넘는데 필요한 이민서류가 미비된 상태 일 뿐인 이들 서류미비 이민자들을 단지 법을 어긴 범죄자로 규정할 수만은 없는 것이 세계화가 진전되는 지구적인 현실이다. 이들에게 미비 이민서류를 갖춰줄 수 있는 포괄적인 이민개혁법안 재시도가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검은 머리 솔새에게 이민서류를 요구할 수는 없지 않는가.
김상목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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