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유~”
충청도 사투리 같다. 그런데 발음이 영 어설프다.
“제가 천안시에 대해서 소개하겠어유~” 오리지널 충청도 사람으로 믿어지지 않는다. 발표자는 천안시에 대해 얘기하다가 살짝 코믹터치를 시도했다. “비행기가 가유~” 그러다 하늘을 보는 시늉을 하더니 “비행기가 없어졌어유~” 하고 말했다.
천안이 유관순 누나의 고향이란 설명을 더하고는 그를 프랑스의 혁명가 잔 다르크에 견주는 역사관도 드러냈다. 그리고는 학생들을 향해 “질문 있어유~?” 하며 충청도 사람들의 느림을 희화화했다.
한국어를 배우는 미군 학생들이 얼마 전 캠퍼스 밖에 마련된 교육시설에서 이틀간 합숙하면서 한국의 실제상황에 푹 빠져들도록 하는 이머션(immersion)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여러 명이 한 팀을 이뤄 팀별로 한 도시씩 맡아 소개했다. 천안 팀은 특유의 사투리를 적절히 구사해 폭소를 자아냈다.
경주 팀도 질세라 신라 고도에 대해 ‘천착’했다.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질문공세가 펼쳐졌다. 그 중 “왜 경주에는 유적지가 많은가?”란 물음에 신라시대의 도읍지란 점을 언급하면서 역사 실력을 뽐냈다. 평택 팀은 “왜 지금 평택이 유명해졌는가?”라는 질문에 “미군기지 이전 뉴스가 많이 나와서”라고 간단명료하게 답했다.
남북문제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보였다. 목포 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 지역 출신이며 노벨평화상을 받았음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 노벨상을 받았나?” 하는 질문에 “햇볕정책 때문”이라고 답했다. “햇볕정책이 뭐냐?”고 묻자 “북한과 남한이 가까워지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은 사전에 한국의 각 지역에 대해서 인터넷 공부에 들어갔었다. 관련 웹사이트를 접속해 기본적인 정보를 입수하고 역사와 특징 등을 연구했다. 여행안내서, 지도를 들여다보며 도시 홍보대사 예비훈련을 받았다.
도시 홍보대사 프로그램이 큰 박수와 함께 막을 내리고 이내 흥을 돋우며 배우는 백만장자 게임으로 넘어갔다. 미국에서 인기를 끈 ‘Who wants to be a millionaire?’다. 한 학생이 도전장을 냈다. 문제는 한국과 관련된 것들이다. 한국에 대한 상식 테스트다. “북한의 수도?” “한국에서 가장 큰 섬?” “한글을 만든 사람?” 등 질문은 비교적 가볍게 맞췄다.
그런데 “남한 관광객들에게 허용된 북한의 산?” “중국과 일본 등지에 한국의 문화가 소개돼 인기를 끄는 현상?” 등 문제에서는 쉽사리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원래 게임 방식대로 방청객(학생)들에게 자문을 구했다. 다행히 정답 ‘금강산’과 ‘한류’를 알아냈다.
하지만 상금이 커지면서 문제의 난이도가 더 높아졌다. “결혼식 전에 준비하는 물건?”에서는 문제를 푸는 학생이나 이를 지켜본 동료 학생들도 ‘벙어리’였다. 하는 수 없이 게임 규정에 따라 캠퍼스에서 강의 중인 한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수의 도움으로 정답 ‘혼수’를 맞춰 ‘백만달러의 상금’을 거머쥐었다.
또 다른 학생은 백만장자에 도전해 승승장구하다 막판에 “남한에 있지 않은 도시?”에서 말문이 막혔다. 다시 캠퍼스의 다른 교수에게 ‘구호’를 요청했다. 이 학생은 전화를 끊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정답 ‘함흥’을 들은 것이다. 또 한 명의 ‘백만장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점심시간이다. 간단하게 요기를 한 학생들은 자그마한 운동장에서 농구를 즐겼다. 한 학생이 공을 잡고 골밑으로 돌진해 들어가는 상대 학생을 향해 세 발짝을 연달아 디뎠다며 “트레블(treble) 반칙이에요” 했다. 영어금지구역에서 영어를 썼다. 이 말을 들은 학생은 “여행(travel) 반칙이라구요?” 하며 되받았다. 영어 사용을 지적한 것이다. 한국말 발음이 거의 같은 점을 들어 ‘트레블’을 ‘여행’으로 소화해 냈다.
이머션 교육 동안 학생들은 영어를 사용할 수 없다. 쉬는 시간이나 식사시간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학생들은 원칙에 충실하려 애썼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이틀간의 집중교육이었지만 그만큼 한국을 배웠다는 데 뿌듯해 하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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