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이 도살용 스턴트 건을 들고 사람을 해치러 가고 있다.
제80회 오스카 남우조연상 스페인
범죄 스릴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아카데미 작품, 감독, 각색상)에서 무표정하고 과묵한 킬러 안톤 치구르로 나와 제80회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을 탄 스페인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38)과의 인터뷰가 지난해 9월 토론토 국제영화제 기간에 토론토의 포시즌스 호텔서 있었다. 늠름한 모습에 간편한 차림을 한 바르뎀은 간혹 문법적으로 틀리긴 했지만 유창한 영어로 꾸밈없고 진지하게 질문에 답했다.
“폭력 증오하는 내가 킬러가 되다니…”
악역 돋보이려 여자 단발형 머리로 잘라
‘노인을…’에선 폭력의 무의미 표현 애써
-조엘과 이산 코언 형제 감독과 일한 경험은.
▲전연 두 사람과 일한다는 느낌을 갖지 못했다. 그들은 완벽하게 상호 교감, 마치 한 사람이 감독하는 것 같았다. 그들과 일하기가 정말 편했다
-여자 단발머리 같은 당신의 헤어스타일은 누가 만들었는가.
▲코언 형제가 처음에 내게 어떤 모습의 킬러가 되고 싶으냐고 묻기에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헤어드레서인 폴이 날 자기 쪽으로 부르더니 내 머리를 순식간에 그렇게 잘라버렸다. 거울을 보고 너무 흉측해 충격을 받았다. 코언 형제는 내 머리를 보고 배꼽을 잡고 웃었지만 내내 그 헤어스타일을 유지해야 했던 나로선 보통 일이 아니었다.
-킬러 역에 발탁됐을 때의 소감은.
▲코언 형제는 순전한 미국적 영화만 만드는 감독이어서 스페인 배우인 내가 역을 맡은 것은 기적이다. 난 각본을 읽고 완전히 사로 잡혔었다. 뉴욕으로 코언 형제를 만나러 가 운전도 못하고 영어도 서툰데다가 폭력을 증오하는 내가 적역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더니 그들은 “그래서 우리가 당신을 원한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난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칠 수 없다고 다짐했다. 난 이 영화가 단순한 폭력의 얘기가 아니라 그 폭력 너머로 폭력에 반대하는 뜻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문제는 난 영화일지라도 살인을 하거나 총을 드는 것을 싫어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 역을 통해 폭력은 사실로 고통과 비참을 낳고 폭력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영화의 원작인 소설의 작가 코맥 매카시에 관해 알고 있었는가. 요즘 무슨 책을 읽는가.
▲그에 관해선 잘 몰랐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서 그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아주 좋은 사람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사람한테서 이런 공포가 나올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해 했다. 내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은 철학적인 ‘공포의 분석’으로 이 책은 인간과 공포의 관계를 고찰한 것이다. 나는 밤에 전화를 끊은 뒤 독서한다.
-당신은 살면서 무언가를 결정할 때 운에게 맡기는 수가 있는가.
▲난 생의 결정을 운과 연결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난 내 직업적 삶에 있어서는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나는 코언 형제와 밀로쉬 포먼과 우디 알렌 등과 같은 사람들과 일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어두운 인물을 연기하기가 재미있었는가.
▲아니다. 그러나 세트의 분위기는 정말로 좋고 평화롭고 또 우습고 침착했는데 이는 코언 형제가 그런 분위기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난 살인과 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놀란 것은 미국 문화가 총에 대한 지식과 매우 가깝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안 것이다. 세트에 있는 사람들 거의 전부가 총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유럽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가 살인과 총에 관해 또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폭력에 둘러싸여 살고 있지만 이 영화는 결코 그것을 미화하고 있지 않다. 이 영화는 폭력의 무의미를 강변하고 있다.
함께 출연 주역들과 공연않고 각자 연기
약해진 남성들, 아름다운 여인의 희생자
-사람들은 당신을 전형적인 스페인 남성상이라고 말하는데 당신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요즘 남자들은 여자보다 약한 성에 속한다. 우리는 모두 수퍼우먼이 되고자 하는 아름다운 여인들의 희생자들이다. 난 나 자신을 스페인의 전형적 남성상이라고 생각 안 한다. 물론 라틴 남자들은 때로 다른 남자들보다 더 감정적이요 정열적이긴 하다. 그러나 종국에 우리는 모두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서로 관계를 맺는 것 아니겠는가.
-당신은 스페인 배우로서 미국 및 외국 영화에 더 많이 나온다. 소위 크로스오버 배우로서의 소감은.
▲모든 스페인 배우들은 제일 먼저 짐을 싸들고 미국에 와 고생 끝에 성공한 안토니오 반데라스(멜라니 그리피스의 남편)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가 나를 비롯한 후에 미국서 활동하게 된 우리들을 위해 문을 열어줬다. 어떤 미국 영화들은 내 타입이 아니고 나는 마드리드에서 스페인 영화에 나오고 싶지만 작품 찾기가 쉽지 않다. 국내에서보다 외국에서 더 많은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 내가 외국 영화에 보다 많이 나오는 것은 내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것이다.
-나쁜 역하는 것의 좋은 점은.
▲역을 한 뒤 마침내 내가 나쁜 것에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를 인식하는 점이다. 하루 촬영이 끝난 뒤 호텔로 돌아와 내가 그 나쁜 자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느낄 때 기분이 좋아진다.
-총을 들고 쏠 때의 느낌은.
▲난 사격을 배워야 했다. 그래서 사격장에 가 한 눈을 감고 사람 모양의 표적을 향해 쐈는데 너무 잘 쏴 코치가 놀랄 정도였다. 총을 잡을 때 느끼는 것은 힘인데 폭력과 힘은 같은 수준의 것이다. 그러나 난 총을 잡았을 때 오히려 연약함을 느꼈다. 사람이 총을 든다는 것은 결코 자연스런 일이 아니다.
-과거 누군가 당신에게 잘못했을 때 보복을 생각한 적이 있는가.
▲난 잘 잊지는 않지만 용서는 잘 한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자기를 용서하는 행위다.
-당신이 주연한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처럼 불가능한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당신은 무슨 일을 하겠는가.
▲불가능한 사랑을 하다 보면 때로 자신의 존엄성을 잃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셈인데 누군가를 얻기 위해 자신을 잃는다면 설사 상대방의 사랑을 얻게 된다 한들 그가 사랑할 사람은 이미 없어진 셈이다. 그것은 결코 좋은 일이 못된다.
-어떤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는가.
▲평범하고 나이스 한 여자면 된다. 돈과 짧은 스커트라면 더 좋고.
-당신의 성공으로 젊은 스페인 배우들이 모두 하비에르 바르뎀이 되기를 바라게 될지도 모르는데.
▲모두가 다 하비에르 바르뎀을 원한다면 그것은 대재난이 될 뿐이다. 그들은 스페인 배우들과 함께 일한 스티븐 소더버그와 밀론쉬 포만 그리고 우디 알렌 같은 사람들이 미국에 돌아와 스페인에는 정말로 재능 있는 배우들이 많다고 감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열등감을 버려야 한다.
-공연한 타미 리 존스와 친구가 됐는가.
▲타미 리와는 딱 한번 저녁을 먹고 분장 트레일러에서 10초간 그를 본 것이 전부다. 전 영화를 통해 우리는 서로 쫓고 쫓길 뿐이지 딱 한번 그가 모텔에 왔을 때를 제외하곤 함께 연기한 적이 없다.
이것은 조시 브롤린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타미 리 존스와 조시 브롤린 및 나 등 3인의 3개의 영화라고 해도 되겠다. 우리는 각자 연기를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를 몰랐다. 처음 영화를 보고 나서야 전체 이야기가 상호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영화 속 킬러는 무언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가.
▲그는 아무 것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다. 전적으로 사랑이 결여된 자로 그가 하는 일조차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순전히 의무감에서 행동하는 자다. 그 점 때문에 내가 킬러 역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됐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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