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수사는 일정 수확...경영권승계.떡값 의혹은 안갯속
(서울=연합뉴스) 안 희 기자 = 삼성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 중인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기본 수사기간(60일) 종료 시점인 오는 9일을 앞두고 수사기간을 한차례 연장했다.
최장 105일까지 수사가 가능한 특검팀은 5일 출범 56일째를 맞으면서 이미 반환점을 돌아선 상태다.
특검팀은 차명계좌 1천300여개를 찾아내는 등 비자금 의혹 분야에서 다소간 성과를 냈지만 두달이 다 되도록 불법 경영권 승계 및 로비 의혹과 관련해서는 뚜렷한 결실을 얻지 못하는 등 여전히 `안갯속 주행’을 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차명계좌 확인..비자금 수사 속도 = 특검팀은 첫 한달간 검찰로부터 넘겨받은 차명의심 계좌 추적 내역을 토대로 금융계좌 명의자인 삼성 임ㆍ직원들을 불러 조사를 벌였지만 당사자들이 대부분 차명 의혹을 부인하면서 애를 먹었다.
두번째 달, 수사진은 명의자들의 진술이 없어도 금융계좌가 차명 관리됐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금융계좌 압수수색을 통한 물증 확보에 주력했다.
특히 지난 10년간 그룹 전ㆍ현직 임직원들 3천453명 중 삼성증권에 개설한 계좌들을 모두 찾아내 구체적인 거래내역을 확보하는 `정면승부 전략’을 구사해 1천800여명의 차명의심 계좌 3천800개를 찾아냈다.
최근 특검팀은 이 계좌들 중 1천300여개는 비밀번호가 단순하거나 거액이 한꺼번에 인출되는 등 여러 조건에 비춰 명의자가 부인하더라도 확실한 차명계좌라는 점을 확인하는 수확을 거뒀다.
이에 따라 600여개는 특검팀 자체적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거래내역을 확보하고 나머지 700여개는 금융감독원에 특별검사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계좌에 담긴 돈의 흐름을 쫓아가고 있다.
많게는 수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차명계좌 속 비자금이 어디서 조성됐고 어떤 용도로 사용됐는지를 따라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향후 수사진의 자금 추적 과정에서 계열사 분식회계 등 비자금 조성 방식이 밝혀지고 돈의 용처가 고가 미술품 구매나 뇌물 살포 등이었던 것으로 규명되면 그 파장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경영권 승계ㆍ떡값 의혹은 여전히 `안갯속’ = 특검팀은 삼성 사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출범 둘째 달부터 그룹 핵심 관계자들의 소환에 나섰다.
에버랜드 사건과 서울통신기술ㆍ삼성SDS 관련 고소ㆍ고발 사건은 기본적으로 이재용 전무에게 계열사 지분이 싼값에 넘어가 탈법적인 경영권 승계가 이뤄졌다는 내용을 골격으로 하며 e삼성 사건은 이 전무가 주도했던 인터넷 기반 사업이 부실화하자 계열사들이 관계사 지분을 떠맡아 손실이 발생했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 특검팀은 의혹의 `수혜자’로 지목된 이재용 전무를 소환하고 그룹 심장부로 일컬어지는 전략기획실 1ㆍ2인자인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도 특검 사무실로 불러냈다.
에버랜드 사건의 피고발인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까지 최근 소환되면서 수사의 칼날이 발 빠르게 그룹 핵심 인사들에게 접근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그룹 핵심 관계자들은 이미 치밀한 대응전략을 짜고 수사에 임했기 때문에 특검팀으로서도 기소 대상자를 가려내고 유죄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차 수사기한 내에 `의혹의 정점’인 이건희 회장까지 특검팀에 출두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국 소환이 미뤄진 점도 경영권 승계 의혹 분야에서 신속한 승부를 내지 못하는 수사진의 속사정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러 의혹들 중 가장 진척을 못 보고 있는 분야는 정ㆍ관계 로비 부분이다.
이 의혹은 아직 이렇다할 관련자 소환 조사마저 진행되지 않고 있는 상태로, `누가 누구에게 돈을 줬다고 들었다’는 식의 단순 첩보로는 범죄 증거가 못된다는 한계 때문에 수사진도 섣불리 조사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김용철 변호사가 로비 의혹 수사의 부진을 지적하면서 새 정부의 고위직 인사가 포함된 뇌물수수자 명단을 공개할 지 여부를 이날 결정키로 해 수사의 기폭제가 될 지 주목되고 있다.
검찰의 지난 대선자금 수사에서 용처가 밝혀지지 않았던 삼성채권 관련 수사의 경우, 특검팀이 불분명했던 12억원 상당의 채권 유통 경로를 최근 새로 파악하고 흐름을 쫓고 있는 등 서서히 진전을 보이고 있다.
특검팀이 2차로 연장할 수 있는 수사기간 15일은 사건을 마무리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작업에 쓰일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1차 연장기간인 향후 한달이 사실상 특검팀에게는 `마지막 기회’가 된다.
prayer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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