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 정치 영향력 증대
군이 반공의 기치 아래 사상적 자세를 정립하고 숙군을 가시화하기 시작한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경비대가 국군으로 재탄생한 1948년 8월15일 이후부터이다. 초대 대한민국 국방장관으로 취임한 이범석 장군은 중국에서 국공간의 갈등을 경험한 광복군 출신 장성이다. 그는 군의 반공 목표를 뚜렷이 하였을 뿐더러 공산군의 계속적인 사상적 선전활동으로부터 군을 계몽하기 위해 미 군사 고문단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정훈부 편제를 군내에 도입하였다. 숙군과 공비 소탕전도 가속화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도 계속되었던 소위 공산 게릴라 소탕전은 주로 제주도 지리산 덕유산 오대산 태백산맥 일대였으며 토벌작전과 치안 유지를 위해 대도시를 제외한 방대한 작전지구가 계엄 하에서 토벌작전 사령관인 군의 지휘 관할을 받게 됨으로써 민도가 얕았던 국민 위에서 군인들이 정치적 관계를 가지는 기회가 주어졌던 셈이다.
한국군은 6.25 전쟁을 거치면서 그의 전투력의 급속한 발전뿐만 아니라 수적으로도 전쟁 전 10만 미만의 병력이 전후 60만 대군이 되었다. 그리고 UN군과 연합작전을 위해 장비도 신형화 돼갔다. 신형화 된 장비를 사용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고 방대해진 군사력과 장비를 유지하기 위한 군수 지원제도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교육과 행정제도가 필요했다. 이런 기술들은 그 당시로서는 국내 지원이 불가능해 결국은 육해공군의 많은 장교들이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고 각종 기술학교가 군 내에 설치되었다. 당시의 지휘관들의 고충이 교육된 기술자가 좋은 보수를 따라 민간으로 유출된다는 사실이었다. 군의 각급 지휘관은 지속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하며 스스로 교육관이자 관리를 위한 행정관이 되어야했다. 이것은 전쟁을 위해 민간 분야 발전에 앞지르는 군사원조의 결과이며 장교들로 하여금 군의 행정능력이 당시의 민간 능력을 앞서고 있다고 생각케 하였다.
방대해진 군사력은 정치를 위한 표밭이자 당시로 보아서는 국내에서 가장 큰 재원조달의 소스가 되어 정치인들의 유혹이 되며 반대로 군인들이 정치가를 이용하려는 유혹을 준 것도 사실이다. 부정 선거에 군이 개입되고 군이 실은 부패에 앞장 서 있었다는 말도 듣게 되었다.
미 육사 출신 대령 고문관을 불러 숙제를 주었다. 그 숙제는 다음과 같았다. 남미에 건국된 지 15년 밖에 되지못한 한 신생국가 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나 민도가 얕아서 정당간의 싸움이 정치부패로 인식되며 정당간의 싸움은 경찰 치안 선을 넘어 군의 개입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에 개입된 군이 어떤 상황에서 비상시국을 슬기롭게 수습하여 정치가 다시 정치가에게 되돌아가며 반대로 어떤 상황들이 군으로 정치를 농단하게 만들 것인지를 구체적인 가정을 넣어 설명할 수 있도록 요청하였다. 요청을 쾌히 승낙했던 그는 2주후 나를 방문, 자기에게는 너무 어려운 숙제라 풀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나는 그가 정치적 문제임으로 고문단장에게 보고했으며 그들의 결론이 개입해서는 아니 될 문제로 결정한 것으로 짐작 하였다. 나는 군이 정치에 개입할 가능성은 생각할 수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스스로가 정치적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 후 내가 취한 입장은 첫째는 군대에서 평이 나쁜 장성들이 군을 떠나는 일에 반대치 아니하며, 둘째로 정훈학교를 강화하여 정훈계통 장교들의 미국 유학에 우선권을 주도록 노력하였다. 건전한 장성들이 군에 있다면 국가 유고시에 야욕에 따르거나 국가 이익에 배치되는 행동을 막을 수 있는 힘이 되리라는 막연한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또 정훈학교의 창설과 정훈장교의 유학은 다음과 같은 나의 생각에 기초한 것이었다. 나는 한국 전쟁을 통해 미군이 작전지대 주민 관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노력함을 배우고 보아왔다. 일본군에 종군하며 중국과 만주 국경 지대에서 중국 8로군(중국 공산군)과 싸운 경험을 통해 미군과 일본군의 차이를 적 주민의 후생을 생각하는 미국과 그렇지 못한 일본의 차로 인식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북진했을 때의 반성이 적 주민의 후생에 관심을 갖는 민사 군정 교육 노력은 결국에 가서는 국가 소요사건으로 군이 자기 국민 관리에 개입하게 될 때에 민간에 대한 장병의 정신과 태도를 옳게 유지시켜주는 기초가 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생각이 결국에는 5.16에 대한 반대 입장에 서게 한 정신자세를 심어 준 셈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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