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한인성당 2007 백일장 장원작>
남편을 잃은 서러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사랑하는 딸 제인마저 이 세상을 떠나고 나니 내가 버젓이 살아 있다는 것조차 부끄러웠다. 잠깐 왔다 가는 인생에 웬 슬픔이 이다지도 엄청난지 모르겠다. 나에게 끊임없이 닥치고 있는 이 고통의 의미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노라고 가슴을 치며 울부짖었으나 시원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내가 애송하던 롱펠로의‘인생송가’도 귓전에서 메아리 쳐 나갈 뿐 그 어떤 것도 나에게 위로가 안되었다.
예전에는 잘 웃던 나였으나 웃음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삶의 기쁨이 없어졌다. 기도 한마디 제대로 안 나오는 처절한 심경으로 한동안 혼자웅크리고 지냈다. 내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허물어졌고 삶에 좌표를 잃었다.
제인과 함께 여름을 재미나게 지내야겠다고 계획을 짜며 대학원 보낼 준비로 들떠 있던 때를 떠올렸다. 혼자 계획하고 주관하는 삶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절실히 느꼈다.
지난 해 초여름 제인의 실종 소식을 듣고 곧 보스턴으로 날아가 낯선 고장에서 경찰서장, 수사반장, 그리고 수많은 도우미들과 함께 수색에 나섰다. 희망과 절망이 엇갈리는 가운데 맏딸과 서로 위로하며 하느님께 매달리기 시작했다. 마침 그해 여름에 뉴저지에서 열리는 성령대회에 참석하게 되어 가늠하기 어려운 나의 슬픔을 승화시켜 보려고 애썼다.
예전에는 별로 관심조차 없던 방향으로 내 발길이 저절로 옮겨졌다.
믿음은 두려움과 절망을 이겨내는 힘이라 했다. 비록 내가 기도한대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지만 기도를 통하여 깨달음이 왔고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본당 성령기도회에 입회하여 매주 찬미와 기도를 올리는 새 삶이 시작되었다. 나 혼자 드리는 기도는 가냘프게 펄럭이는 촛불과도 같지만 여럿이 모여 함께 바치는 기도는 강한 불길이 되어 타오름을 실감했다. 지난 가을에는 성령 세미나에 참석해서 천상의 소리인듯한 찬양가운데 안수 기도를 받아 나는 내적 치유가 이루어졌다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인간은 어쩔수 없이 죄성에 놓여있고 나약한 존재인지라 실종된지 7개월만에 제인의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 나는 또 다시 절망하고 깊은 허무감에 빠져 들어갔다.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는 축제일에 제인의 시신을 안겨 받은 나와 맏딸은 보스톤 시내가 떠나갈듯 통곡했다. 제인의 그 보드라운 볼이며 첼로를 치던 고운 손과 날씬한 몸매는 온데간데 없었다. 아무리 소리쳐 불러봐도 대답은 아니 들리고 빈 들녘처럼 적막하기만 했다. 이 세상에서 다시는 제인을 만날 수 없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절망과 쓰라림만 가득했다.
겨울바람이 세찬 날, 이곳 본당에서 마지막 거룩한 장례미사를 거행하고 차가운 땅에 제인을 묻고 돌아섰을 때 내 인생도 함께 땅에 묻힌것 같았다.
새해에 접어들면서 제인이 걸었던 발자취를 더듬어 따라 다녔다. 대학 졸업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1 년동안 영어교사로 일했던 제주도 서귀포중학교 졸업식에 때 마추어 갔다. 제인과의 만남을 소중히 생각하는 교사들과 전교생,특히 제인과 함께 생활했던 호스트 가정의 넘치는 사랑을 잊을 수 없다.
초봄에는 매릴랜드 MCYO 오케스트라 지휘자들의 배려로 7 년전 수석 첼리스트였던 제인의 추모 연주회가 있었다. 제인의 모교 웰슬리 대학에서도 제인의 삶을 기리는 추모회가 아름답게 열렸다. 제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교수님들과 전국에서 모여든 친구들을 만나보고 제인은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고 사랑하는 사람들 가슴속에 풋풋한 모습 그대로 살아 있음을 보았다. 그뿐인가. 삼 년 전에 제인과 함께 한국에서 활동했던 풀브라이트 장학생들이 전국에서 모금운동을 해서 제인 이름으로 삼성 고아원에 기증했다는 밝은 소식도 전해 들었다.
어떤 벗은 손수 만든 진주 목걸이와 함께 “초겨울의 첫눈처럼 아름답고 순수한 모습으로 사뿐히 왔다가 날개를 달고 떠나간 사랑하는 딸 제인이 그리울 때마다 이 목걸이를 걸고 마음을 위로하고 평안을 찾기를 기원한다”라는 글을 보내 나에게 큰 힘을 주었다. 그동안 수많은 분들이 베푸신 사랑에 보답하는 삶이고 싶다.
나의 사랑하는 딸 제인은 짧은 생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사랑을 심어주었고 지워지지 않는 발자취를 남기고 갔다. 그래서 나는 제인이 살았을 때 씨 뿌려논 텃밭을 잘 일구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고 지금 이것을 조금씩 실천하는 중이다. 땅으로 잦아드는 듯한 절망의 심연에서 내가 휘청거리며 서서히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제인에게 못다한 사랑의 숙제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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