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하원의원 톰 탠크레도는 롤링스톤지가 선정한 ‘최악의 의원’ 톱10에 오를 만큼 악명 높은 반이민의 대표주자다. 이태리 이민의 손자이면서도 불법이민 추방은 물론 합법이민 중단도 촉구하며 미국의 모든 문제를 불법체류자 탓으로 비난한다. 그가 공화당 대선후보 지명전에 출마했다가 지난 달 도중하차 했다. 도중하차의 배경분석이 기막히다 : “다른 공화당 후보들이 모두 탠크레도가 되었기 때문에…”
모두가 앞 다투어 강경대책을 제시하는 마당에 반이민이 유일한 출마이유였던 그가 남아있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는 “진짜 탠크레도인 나보다 더 탠크레도들 같아요”라고 말하며 씩 웃었다.
차기 대통령이 직면할 최대 난제 중 하나가 ‘불법이민’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점은 두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 앞으로 불법이민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기존 불법이민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지 않다. 이들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미국경제와 이들의 복지를 떠안은 로컬정부의 부담을 비롯한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얽히고 설켜있다.
대체로 민주당은 친이민, 공화당은 반이민으로 분류되지만 이민은 각 당내에서도 잦은 분쟁을 부르는 골치 아픈 이슈에 속한다. 소수계를 끌어안는 민주당은 확실히 친이민이지만 민주당의 지지세력인 노조는 불체자의 값싼 노동력을 비난하며 자주 반이민의 입장을 보인다. 공화당도 다르지 않다. 극우보수파의 아우성을 들으면 분명히 반이민인데 공화당 지지기반 기업들은 불체자의 노동력 없이는 돌아가기 힘드니 친이민도 되어야한다.
이래서 정치적 제스처가 아닌, 행정적 대책이 필요한 게 현 미국의 이민 현황이다. 그러나 이번 공화당 경선에서 이념논쟁의 대표이슈로 떠오른 것이 불행하게도 ‘이민’이다. 누가 가장 보수적인가를 가늠하는 단골이슈였던 낙태나 안락사 등은 웬일인지 금년엔 구경조차 하기 힘들다.
공화후보들의 이민 공약은 강경 일변도로 치닫고 있다. 이민이 조명되면 토론다운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의 아우성 - ‘강화하겠다’ 밖에는 들리는 게 없다. 국경도 강화하고, 단속도 강화하고, 처벌도 강화하고…그러나 국경을 높이고, 방위군을 파견하고, 밤낮없이 집과 일터를 기습해 단속을 벌인다 해도 현재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솔직하게 시인하는 후보는 없다.
보수진영에 잘 보이려는 미트 롬니가 강경론의 선두에 선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마이크 허커비의 180도 입장 돌변은 아무리 선거라 해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아칸소 주지사 재임시 불체학생 장학금 신청허용을 제안한 것에 대해 롬니에게 공격을 당했을 때 “미국은 부모의 잘못에 대해 아이들을 처벌하는 나라가 아니다”라고 질책하듯 대응한 허커비에게선 리더의 품위가 느껴졌었다. 그게 불과 두 달 전이다. 그동안 허커비는 변해도 정말 많이 변했다. 120일내에 1,200만 불체자 전원을 추방하겠다는 플랜을 제시하는가 하면(실현가능성 여부는 차치하고) 과격한 반이민단체 서약에 공식서명도 마다하지 않았다. 가장 ‘탠크레도스러운’ 후보로 등극한 셈이다.
공화당에도 등불은 있다. 아직 합리적 이민관을 고수하는 존 매케인 후보다. 2006년 의회에서 죽어버린 포괄적 이민개혁안의 공동제안자였던 그는 ‘불법체류자 사면 지지자’로 비판당하며 거의 출마를 포기할 정도로 매도당했었다. 그래도 굽히지 않고 ‘단속과 함께 신분합법화 길을 마련해야 한다’고 의연하게 소신을 밝혀온 그가 현재 공화당의 선두주자로 부활한 것은 이민자들 뿐 아니라, 본선을 생각한다면 공화당에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민표밭은 이제 무시해도 좋을 초라한 규모가 아니다. 히스패닉만 해도 1,600만이다. 지난 대선에선 그중 절반만 투표에 참여했지만 금년의 투표율은 훨씬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히스패닉 뿐 아니라 아시안도 마찬가지다. 선거전 자체도 흥미 있어졌지만 날로 강경해지는 반이민정책 역시 투표율을 부채질 할 것이다. 지난 대선에선 친이민적인 부시가 히스패닉 표의 40%를 얻었었다. 공화당 후보로는 최고기록이었다. 금년엔 많이 달라질 것이다. 민주당이라고 밝힌 히스패닉이 2년전의 49%에서 57%로 껑충 뛰었다.
캘리포니아와 뉴욕, 애리조나 등 22개주의 경선이 열릴 ‘수퍼두퍼 화요일’이 이제 2주도 채 남지 않았다. 아이오와나 뉴햄프셔 등 백인만의 표밭과는 분위기가 좀 다른, 꽤 널찍한 이민 유권자들의 표밭이 기다리고 있다. 불법이민에 대한 백인 유권자들의 분노만 뜨거운 것이 아니다. 기본인권과 현실을 무시한 일방적 강경책에 대한 이민 유권자들의 반발도 부글부글 끓고 있다. 이 사이에서 공화당 후보들의 ‘이민 공약’이 어떻게 균형을 잡으며 이성을 되찾아갈 것인지 눈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박 록
주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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