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시 주의 스모키 마운틴 국립공원에서 서남쪽으로 약 2시간 떨어진 곳에 스윗워터(Sweetwater)라는 곳에 동굴이 하나 있다. 미국 동남부지역에서 가장 넓은 이 동굴은 미국에서 가장 넓고 세계에서는 두 번째로 큰 지하호수가 있다. 그 호수의 이름을 ‘로스트 씨’(lost sea)라고 불려진다. 이 동굴호수를 큰 유리로 바닥을 볼 수 있도록 설치한 배를 타고 호수를 일주하게 된다. 호수를 다니는 동안 배 밑바닥에서 송어가 움직이는데 그 송어들은 눈이 있어도 빛을 보지 못해 눈을 감고 살고 있다.
빛이 세상에 있어도 빛을 보지 못하면 구태여 눈을 뜨고 살 필요가 없다. 그래서 필요한 눈도 필요 없는 눈으로 도태되어 눈을 감고 살아도 불편하지 않는 고기로 변해 버리고 만다.
옛날 그리스에 해가 비치는 낮에도 손에 등불을 켜서 골목골목을 누비면서 “사람을 찾는다”고 외치며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철학자 디오게네스였다. 그를 보는 사람들은 거의 다 거지요 미친 사람이라고 했을 것이다. 거지처럼 남루한 디오게네스는 거짓이 없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아 참 어둡구나! 너무도 캄캄하구나! 태양은 중천에 떠 있는데도 양심과 진리는 보이질 않는구나. 어디 좀 보자, 어디 좀 보자!”했던 것이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 6개월 먼저 태어나 활동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세례요한이었다. 세례요한은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았지만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은 사람과 함께 살았으나 그는 단지 소리로 살았기 때문이다. 그 소리는 헛소리가 아니었다. 입술의 소리만이 아니라 삶의 소리였다. 그 소리는 진실의 소리였고, 빛의 소리였고, 정의의 소리였다.
유대 땅을 다스리던 헤롯 안디바 왕은 이복동생 헤롯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을 하였다. 버젓이 빌립이 살아 있는데도 동생의 아내를 취했으니 분명한 위법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헤롯 안디바 앞에서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바로 그것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의 지혜(?), 처세술이었던 것이다.
세례요한은 그런 사람들과 달랐다. 그는 광야에 외치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에 살지 않았다. 그는 광야에 살았다. 음식도 광야에서 나오는 메뚜기와 석청(石淸)을 먹고 살았고, 약대털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띠를 했다. 사람이었지만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입은 날카롭고 거칠었다. 듣는 사람은 그랬지만 그의 말은 진리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했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독사의 자식들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하지 말라”(마태복음3:7)고 했다. 그것은 독선이요, 어떤 면에서는 교만이요, 욕설로 보였다. 그 어느 누구가 이 사람을 감당했겠는가?
정말 그는 세상의 풍운아였다. 미련하고, 둔하고, 자기만 알고, 남과 타협하지 못하고, 오직 스스로만 올바르다고 말하는 자기도취의 사람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진리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빛이었고, 희망이었다. 그의 말과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소리가 그냥 바람이 아니라 빛으로 알고 자신의 마음을 찌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자복하고 하늘의 소리를 듣기 위해 마음을 여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소리를 들은 그들은 밝은 낮에도 어둠 속에 살면서도 그 어둠을 깨닫지 못하다 빛을 발견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어둠 세상 속에서 가느다란 참 빛을 비추는 등대를 세우는 사람들이었다.
공자는 위정편에서 참된 지식은 “아는 것을 안다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세상은 아는 것도 모르는 척해야 하고, 또 때로는 모른 것도 아는 척해야 한다. 안다고 나설 때 교만하게 되고, 모르는 것이 알려질 때 무지한 자가 된다. 그렇지만 아는 것을 말하고, 모른 것을 모른다고 고백할 때 신뢰와 진실이 존재하게 된다.
신석정님의 ‘껍데기는 가라’에서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기로운 흙 가슴만 남고 그 모든 쇠붙이는 가라”고 했다. 혼자 의로운 척 청렴결백을 드러내면 사람이 모여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있으면 비난을 받게 된다. 혼자서 거센 바람에도 소리를 내며 겨울을 견뎌내는 나무처럼 자신만의 소리를 내는 광야의 소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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