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다. 그러니까, ‘거의 다’란 표현도 가능하다. 미국인들 ‘거의 다’가 각자의 삶에 상당히 만족해 있다. 2007년 12월31일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 결과다.
이보다 두 주 앞서 발표된 같은 갤럽 여론조사는 아주 상반된 결과를 내놓았다. 70%의 응답자들이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참 알 수 없는 민심이다. 표면과 바닥의 흐름이 달라서다. 그 서로 다른 물굽이를 제대로 헤쳐 나가지 못하면 좌초의 운명을 맞는다. 그런 여론의 흐름이 반영된 것인지, 두 차례 치러진 2008년 대통령 선거 예선전은 그 종착점이 어디가 될지 예측을 불허하게 하고 있다.
첫 라운드는 예상대로였다. ‘변화의 바람’을 몰고온 주자들이 일제히 승점을 올린 것이다. 민주당에서는 버락 오바마가, 공화당에서는 마이크 허커비가 그 주인공이다.
세컨드 라운드에서 상황은 변전한다. 힐러리 클린턴이 예상을 깨고 부활했다. ‘눈물을 비친 끝에 컴백에 성공한 힐러리’- 그 스토리에 온 시선이 집중됐다. 결과론이지만 화제 선점에 성공한 셈이고 레이스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노병도 되돌아왔다. 공화당에서는 존 매케인이 선두로 부상한 것이다. 이 ‘돌아온 노병’에 게는 그러나 화려한 조명이 따르지 않는다. 역전극으로써 반전의 묘미가 부족한 탓인가.
‘매케인 부활’은 그렇지만 정치적으로 더 큰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여론의 흐름이 여러 갈래다. 바닥 민심 파악이 어렵다. 그 2008년 미국 대선 레이스에서 ‘돌아온 노병’은 뭔가 한 가닥 여론의 방향성을 알려주고 있다는 점에서다.
‘매케인 호는 완전 침몰했다’- 6개월 전 내려진 판정이었다. 인기가 말이 아니다. 그런 부시를 옹호한다. 그러면서 이라크 주둔 미군 증강을 홀로 찬성하고 나섰다.
이라크전은 공화당에서도 꺼리는 단어였다. 그 마당에 이라크 전쟁 승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당연히 정치적 기피인물이 됐다. 대선주자로서 매케인의 존재가 희미해졌던 것이다.
추수감사절 이후였다고 한다. 유권자들이 다시 관심을 보인 게. 그리고 마침내 예선 2라운드에서 선두주자로 화려한 컴백을 했다. 이라크 상황이 호전되면서 매케인의 정치적 운명도 반전된 것이다.
캐릭터가 중요하다. 대통령선거 때면 나오는 말이다. 대통령의 자질을 논한다. 그러면 먼저 거론되는 게 캐릭터다. 정의가 어렵다.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캐릭터는 그만치 복잡해서다.
용기, 소신, 결단력, 고결성. 이런 것들이 다 합쳐진 게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캐릭터다. 다른 말로 하면 위기관리 능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국내 아젠다가 중요하다. 미국의 대통령에게는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다. 해외정책이다.
이 캐릭터와 해외정책 이슈가 언제부터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사라졌다. 2008년 대선도 마찬가지다. ‘믿음’의 대권주자 허커비가 부상한다. 실체를 알 수 없는 ‘희망’이란 단어만 반복하고 있는 오바마가 바람을 일으킨다. 그 와중에 캐릭터와 해외정책 이슈는 실종됐다.
‘매케인 부활’은 2008년 대선에서 캐릭터와 해외정책이 다시 주요 이슈로 부활할 수도 있다는 신호다. 왜 매케인을 선택했나. 전시 군통수권자로 가장 믿음직하다는 게 그 답이다. 공화당 유권자들은 여전히 이라크 전쟁을, 테러 전쟁을 선거의 주 이슈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란의 핵무장 가능성에 미국인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그보다 더 위험한 상황은 이미 핵을 지닌 파키스탄이 이슬람이스트 근본주의 세력의 수중에 떨어지는 사태다. 부토 암살로 그 악몽의 시나리오는 한층 더 구체화됐다.
“전쟁에 지기보다는 차라리 대통령선거 패배를 감수하겠다.” 반전의 물결이 백악관 문턱까지 넘실댈 때 매케인이 한 발언이다. 여론 때문에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여론이 무서워 말을 바꾸지 않는다.
‘되돌아온 매케인’- 이것을 가능케 한 또 다른 요인은 바로 이 소신과 원칙고수의 입장이다. 월남전 포로시절에도 그랬다. 매케인의 아버지가 현직 미 해군 제독임을 알고 월맹측은 조기 석방을 제의했다. 그러나 거부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긴 세월을 포로로 지냈다.
말에 책임을 지는, 오늘날에는 정치풍토에서는 ‘희귀종’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정치인, 매케인의 그 용기와 소신에 유권자들은 보답을 한 것이다.
2008 대선 레이스는 이제 막 시작된 데 불과하다. 이 장기 레이스가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도 장담을 못한다. 그 전망은 별도로 치고, 미국적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온 몸으로 보여주며 대선가도를 달리고 있는 이 노병에게 갈채를 보내고 싶다.
옥 세 철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