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 / 밀밸리 등 일부지역 주민들
어둡고 추운 난민생활
다른 곳으로 피난하거나 모텔생활도
=====
물이 여기저기 낮은 땅을 집어삼켰다. 수십년 수백년을 꿋꿋이 버틴 거목들이 뿌리를 드러내며 맥없이 쓰러졌다. 간신히 버틴 나무들도 가지들이 꺾여져 흐느적거렸다. 옭아맨 지붕이 날아갔다. 쓰러진 나무에 깔려 집들이 주저앉았다. 축대며 언덕이며 속속 무너졌다. 물에 잠기거나 빗길사고로 수많은 도로들이 도로구실을 못했다.
지난 4일(금)부터 주말 이틀동안 베이지역 등지를 할퀴고 간 한겨울 기습 폭풍우의 위력은 실로 위협적이었다.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의 힘이 얼마나 미약한지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폭풍우였다.
특히 마린카운티와 소노마카운티 등 상습적 수해취약지역을 중심으로 베이지역 51만여 단위(주택 및 건물)에 전기공급이 끊기면서 일대는 순식간에 아주 오랜 과거로 회귀한 듯했다. 전기공급 중단은 개스공급 중단을 동반, 단전지역 일대 수십만 주민들은 어둠과 추위에 고통스런 주말을 보내야 했다. PG&E측은 4일 이른 새벽부터 인력을 총동원, 긴급복구에 나섰으나 피해지역이 워낙 광범위한데다 5일 오전까지 폭풍우의 위력이 매우 강해 애로를 겪었다.
긴급복구에도 불구하고 6일(일) 낮 현재 밀밸리 등지의 5만가구(업소 포함) 이상이 사흘째 전기 없이 지냈다. 이 바람에 이 일대 주민들은 일회용 개스를 이용한 버너 등으로 식사를 짓거나 전기공급이 재개된 지역의 식당에서 외식을 해야 했다. 상당수 주민들은 복구작업이 늦어진다는 전망에 아예 다른 도시의 친지집 등지로 대피하거나 모텔 등지에서 묵기도 했다. 한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밀밸리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인 C씨 가족들은 산라몬의 지인 집으로 가 5일 온종일 보냈다. 같은 아파트의 인도계 가족은 아예 주말을 딴곳에서 보내기로 하고 일시이사를 했다. 또 상당수 주민들은 티뷰론 등지 이웃 도시의 식당이나 도서관을 찾아 시간을 떼우기도 했다.
촛불이나 플래시 등으로 간신히 어둠을 쫓는 등 임시피난처를 방불케 하는 장면들이 속속 연출됐다. 버클리에서는 촛불취급 잘못 때문으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 1명이 숨지고 1명이 중화상을 입었다. 새크라멘토 북쪽 유바 카운티의 50대 공무원은 지난 4일 밤 도로복구작업에 나섰다가 폭풍우에 부러진 가로수의 가지에 깔려 숨졌고, 남가주 샌버나디도 카운티 치노시의 20대 여성이 범람한 도로에서 픽업트럭을 몰다 급류에 휩쓸리는 바람에 숨지는 등 사건사고가 잇달았다.
주말 단전피해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약 3,700가구, 샌프란시스코를 제외한 페닌슐라지역 약 1만5,000가구, 밀밸리 등 노스베이지역 약 2만2,000가구, 사우스베이지역 1만가구, 이스트베이지역 4,700가구로 잠정 집계됐다. 데이빗 아이젠하워 PG&E 대변인은 6일 “우리는 대부분 단전지역에서 오늘중 복구작업이 이뤄지기를 희망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일부지역에서는 피해가 워낙 심해 (완전복구까지) 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SF항 오클랜드항 소살리토항 등 베이지역 곳곳을 연결하는 페리연락선 운항이 전면 중단된 가운데 SF공항 등지에서의 항공기 연발착 또는 운항취소사태는 6일까지 계속됐다. 항공기 결항 및 지연에 따라 많은 승객들이 공항에서 장시간 대기하느라 공항로비가 북새통을 이뤘다.
한편 주정부 및 시정부 등 행정당국은 물론 주의회와 시의회 등 입법당국은 풍수해 피해를 긴급복구하고 향후 재난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대책마련을 위해 추경예산을 투입키로 하는 등 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일단 재난이 가라앉으면 다시 개발론자들의 입김이 커져 근원적 대응책이 실행에 옮겨질지 여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들이 적지 않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전깃불 고마움 새롭게 알았어요”
=====
이번 폭풍우가 꼭 재앙만으로 남을 것 같지는 않다. 전기와 개스 공급이 끊긴 상태에서 짧게는 몇시간, 길게는 사나흘을 보낸 많은 사람들이 평소 소홀하게 여겼던 부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도 됐다. 5일 오전 10시쯤, 티뷰론의 한 맥도널드. 전기가 끊기는 바람에 ‘매서운 어둠’의 밤을 지새운 인근 밀밸리 등지의 손님들이 늦은 아침 식사를 위해 장사진을 쳤다. 거의 모두들 ‘전기불 없는, 따라서 온기도 없는 간밤’의 경험을 인사로 나누고 화제로 이었다. 밀밸리중학교에 다니는 한 어린이는 “밤새 깜깜하고 컴퓨터도 못하고 전화까지 안되니까 친구들한테 연락도 못해서 힘들고 무서웠다”며 “(전구를 발명한) 토마스 에디슨과 (전기를 발명한) 벤자민 프랭클린에게 감사편지를 써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곳의 영세민용 비영리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바로 맞은편 아파트에는 불이 들어오는데 여기는 안들어오니까 더 어둡고 추운 것 같다”며 “전기가 들어와도 평소에 히터를 거의 틀지 않는데도 못쓴다니까 더 춥게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다른 한인주민은 “힘은 들었지만 이번에 이런 것들(전기나 개스)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생각해볼 기회가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